[정보와 인권] ‘좀비들의 사회’ 만들 외국인 지문날인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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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와 인권] ‘좀비들의 사회’ 만들 외국인 지문날인제도
  • 윤현식(진보신당 정책위원)
  • 승인 2009.11.25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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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류 소설

2005년 5월 26일, 헌법재판소는 6:3 다수의견으로 “전 국민 열손가락 지문날인제도”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바가 있다.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전 국민 강제지문날인제도를 합헌이라고 결정한 헌재의 인식수준은 돌이켜봐도 어이가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합헌의견을 낸 다수 재판관이 설시한 견해 중 특히 눈길을 끄는 논리는 ‘국가안보’를 위하여 지문날인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의견을 받아들일 경우 지문날인제도가 국가안보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하나는 국내에서 암약하는 간첩(불순분자)을 일망타진하는데 지문이 활용될 수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전시상황에서 지문날인제도가 무력사용에 버금가는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 후자는 말이 되지 않는다. 날아오는 대포동 미사일이나 장사정포의 포탄은 지문으로 막아낼 수 없다. 간첩 역시 마찬가지다. 적국 공안기관에게 지문조회로 색출되는 스파이가 제대로 된 스파이겠나? 논리적으로 전혀 타당하지 않은 논리가 적용되는 현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쓴 웃음을 짓게 만든다. 이런 논리로 무장한 헌재의 결정문은 법리에 입각한 유권해석이라기보다는 상상의 나래조차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삼류 소설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런 터무니없는 논리가 그럴싸하게 인식되어 유포된다는 것. 여기에서 지문날인이라는 제도는 국가안보와 사회안녕을 위한 주문(呪文)이 된다. 전 국민의 지문을 경찰이 가지고 있을 때, 간첩은 준동하지 못할 것이며 사회불안세력은 뿌리까지 색출될 것이고 급기야 세상은 아름답게 남으리라. 제도의 숨은 뜻이 행정편의와 공안기관의 강화를 위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주술에 걸린 국민들은 결계의 부조리를 인식하지 못한 채 자발적으로 지문을 날인한다. 인식하고 있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결계의 울타리를 넘고자 하는 순간 주체는 국민이길 거부당하며 국가로부터 버림받는다. 한국 땅에서 살기 위한 최초의 순종서약은 지문날인에서 출발한다. 기본권 보장을 위한 전제조건은 기본권을 포기하는 것이다.

결계의 확장

급기야 이 순종의 서약은 내국인을 넘어 외국인에게까지 적용된다. 한국 땅을 밟고자 하는 자, 주술의 포섭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출입국 심사대에서 지문을 찍지 않는 한 이 땅은 그대들에게 한 발자국의 내디딤도 허용하지 않는다. 2009년 3월에 법무부가 입법예고를 하고 지난 11월 3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에 따라 2010년부터 시행이 예상되는 새로운 출입국관리시스템에 따르자면 앞으로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법무부가 밝힌 입법취지는 불법입국의 외국인 신원관리시스템 구축을 통한 법질서 확립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입국 외국인의 지문날인제도가 폐지된 것이 불과 5년 전의 일이라는 것. 2003년 연말 국회를 통과해 2004년부터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는 출입국관리법은 그 이전까지 시행되고 있었던 외국인 입국 시 지문날인제도를 폐지한 것이었다. 입국 시 강제적인 지문날인제도가 방문한 외국인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다면 불과 5년 만에 폐지되었던 제도를 부활하려는 이유는 뭘까? 여권위변조 기술이 진보하고 있어 동일인 여부 확인을 위해서 생체정보의 수집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테러 등 불순 외국인의 입국을 방지하여 국가안보를 견고히 하고” “외국인 범죄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여 안전한 사회를 구현”하는 것이 외국인 입국자 지문날인제도를 부활시키는 목적이라고 법무부는 밝힌다. 더불어 미국과 일본이 이미 이와 유사한 제도를 시행중이며 EU와 대만이 향후 시행 예정에 있으므로 외국사례와 비교해도 “현실에 부합하는 시기적절한 정책”으로서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 법무부의 입장이다. 법무부가 제시하는 이유 중 실소를 터뜨리게 하는 한 가지는 전면적인 외국인 입국자에 대한 지문날인이 “국민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모두 주민등록 시 지문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과 비교하여 형평성을 갖추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차별을 없애고자 하는 법무부의 노력이 가상하다고나 해야 할까.

침해, 차별, 망상

외국인 지문날인제도가 부활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 우선 입국하는 모든 외국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것은 만17세 이상 전 국민을 대상으로 10지 지문을 채취하는 현행 주민등록제도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과 동일하다. 공공연하게 법무부가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이 제도는 ‘범죄예방 및 수사’에 지문정보를 활용하기 위한 제도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입국 외국인의 지문정보는 한국 공안기관에 의해 언제든지 수사용도로 활용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신체의 자유, 프라이버시권은 물론 무죄추정의 원칙 등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 제도는 ‘국가안전보장’이라는 명목 하에 내국인과 외국인을 차별하는 제도가 된다. 입국심사과정에서 내국인들에게는 지문확인이 이루어지지 않는 반면 외국인들은 일일이 지문을 날인하고 신원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것은 국적에 따른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고착시키는 행위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것은 ‘국가안전보장’을 위한 합리적 시스템의 구축이 아니라 적대와 모멸이다. 이미 한국 사람들이 미국이나 일본을 방문할 때 충분히 겪고 있는 사실 아닌가? 우리가 당한 적대감과 모멸감을 우리도 그대로 갚아줘야 한다는 천박한 보복심리 이외에 이 제도가 가지는 합리적 근거는 없다.

또한 제도를 시행한다고 해서 ‘국가안전보장’이라는 환상적 이상이 달성된다는 가능성 역시 제로에 가깝다. 우선 시스템 자체가 이를 보장하지 않는다. 9·11 테러 이후 2004년부터 미국이 도입한 입국시 지문확인시스템은 쓸 데 없는 짓이었다는 보고가 계속되고 있고, 2007년부터 열 손가락 지문확인으로 범위를 확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천문학적인 비용만 투하되고 있을 뿐 그 효과는 실패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또한 시스템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국가안전보장’이라는 결과는 국가 자체의 구조에 의해서 확보되는 것이지 지문날인제도라는 생체확인절차 하나로 담보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외국인 지문날인으로 ‘국가안전보장’이 가능하다는 발상은 자국민의 지문으로 ‘북한괴뢰도당’의 남침야욕을 억제할 수 있다는 식의 판단을 하는 2005년 헌재의 다수의견 재판관들의 사고와 다르지 않다.

좀비들의 사회

전 국민 열손가락 지문날인제도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으로 계류되어 있을 당시, 법무부가 추진한 입국 외국인 지문날인제도 폐지와 관련하여, 경찰은 법무부의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이 계류 중인 헌법소원에 불리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개정안 철회를 요청한 바가 있다. 이후 출입국관리법은 개정되었고 헌법소원은 합헌결정을 받았다. 그에 따라 시민단체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외국인의 인권은 보호하고 자국민의 인권은 팽개치는 것이 한국 정부냐며 강력한 비난을 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약 5년이 흘러간 지금, 한국 정부는 외국인과 자국민을 똑같이 대우하기 위해 출입국관리법을 다시 개정한다. 형식적으로는 차별을 없애는 것이지만 내용상으로는 인권침해의 범위를 국제적으로 확대한다는 것에 이번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의 본연적 의미가 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다. 몽환의 주술로 이루어지는 ‘국가안전보장’의 결계는 여전히 그 경계 안에 우리를 가둔다. 살아있는 자들을 좀비로 만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