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과 인권] 제2의 참사를 막아야 한다
상태바
[개발과 인권] 제2의 참사를 막아야 한다
  • 이원호(용산범대위)
  • 승인 2009.12.17 13: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용산참사 이후 재개발 제도개선의 문제점
용산참사가 발생한지 1년이 다 되어 가지만, 여전히 수많은 뉴타운 재개발지역에서 철거민들이 눈물과 분노로 저마다의 망루를 쌓고 있다. 참사 직후 정부와 서울시, 여야정치권은 참사의 근본원인이 무분별한 재개발정책에 있다며 재개발 제도의 개선을 이야기했다. 일부 법․제도를 세입자 대책 강화라는 이름으로 개정했지만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실효성 없는 대책에 머물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오히려 2010년부터 집중될 정비사업 관리처분인가로 2008년 대비 3배나 증가되는 강제철거와 개발사업의 진행은 제도 개선을 방패삼아 더욱 빠르게 추진될 것으로 보여 우려스럽다.

알맹이 없는 정부의 세입자 보호 대책

정부가 세입자 보완책으로 개정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정법‘)은 시행규칙 포함 총 11가지 내용의 개정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내용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실효성 없고 형식적인 세입자 대책들이 대부분이다. 오히려 세입자들을 대책 없이 쫓아내는 구체적인 제도에서는 개악되고 말았다.

예를 들어 정부가 개발사업시 세입자들의 의견을 반영하도록 하였다고 하는 대책을 보면, 시행령 개정을 통해서는 구역지정 공람대상을 기존 “‘토지등소유자 또는 조합원 그 밖에 정비사업과 관련하여 이해관계를 가지는 자’는 ‘주민’으로 본다”에서, ‘…주민(세입자를 포함한다)’으로 개정하여, 괄호로 세입자를 넣어 준 것에 불과하다. ‘정비사업과 관련하여 이해관계를 가지는 자’, ‘주민’에, 세입자는 당연히 포함되는 것 아닌가? 세입자는 엄연히 주요 이해관계자요 주민인 것을 괄호로 추가표기하면서까지 세입자 대책 마련이라고 포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그 동안 세입자들을 ‘주민’으로 조차 대해오지 않았던 것을 시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또한 관리처분계획서에 ‘기존 건축물의 철거 예정시기’를 표시하게 하였다. 이를 정부는 철거들이 이주를 준비할 수 있게 했다고 하고, 서울시는 이를 근거로 동절기 철거를 막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관리처분인가 후 빠르면 1~2개월 안에 철거가 개시되는 것을 볼 때, 세입자의 이주 준비를 위한 대책이 되지 못한다. 참사가 발생한 용산 4구역의 경우도 2008년 5월 30일에 관리처분인가를 득하였고 동년 7월 16일부터 이주 및 철거가 시작되었다. 또한 법 개정 이후에, 관리처분인가가 된 ‘제기 4구역’의 경우 2009년 10월 29일에 관리처분인가를 득하였는데, 인가서에 철거 예정시기를 ‘2009년 11월 이후’로 표시했다. 불과 인가 며칠 후부터 철거를 시작하고 동절기 철거도 하겠다고 한 것이나 다름없음에도 아무런 문제없이 인가되었다.

그리고 정부가 자랑하는 대책 중 하나가 ‘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분쟁조정위는 정부가 전형적으로 사회적 문제를 봉합하는 방식에 불과하다. 이미 여러 사안과 관련한 분쟁조정위원회가 있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가동되는 것을 볼 수 없었다. 정부의 조정위원 구성 규칙을 봐도, 개발사업의 주요 이익 분배자들로 구성될 가능성이 높으며, 법에 조정안 수락의 경우는 명시되어 있지만, 수락되지 않았을 경우 즉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어 형식적인 대책에 불과하다. 결국 분쟁조정위원회는 분쟁의 주요 당사자인 세입자들의 의견 대변자도 없고 아무런 강제력도 없어 기존의 수많은 조정위와 같이 형식적인 사문화된 위원회로 전락될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보장’은 없고 ‘보상’만, 반쪽짜리 세입자 대책

특히 용산참사와 관련하여 정부는 상가 세입자를 위한 보상을 현실화 하는 대책을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상가 세입자들에게 개발 이후 일부의 ‘상가 분양권’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가 세입자들이 요구한 것은 세입자들에게 그림의 떡인 분양상가의 소유가 아니라, 저렴하게 세를 내며 장사할 수 있는, (공공)임대상가를 원한 것이다. 10억 여 원이 넘는 도심 상가 분양가를 내고 장사를 계속할 세입자가 얼마나 있겠는가? 세입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특히 세입자에 대한 분양권의 제공은 이미 용산4구역 같은 도시환경정비사업의 경우 구청장이 권장할 수 있는 권리로 되어 있었던 제도이다. 때문에 (공공)임대상가 마련 대책 없는 상가 세입자 재정착 대책은 요원할 뿐이다.

또한 정부는 상가 세입자들의 휴업보상금을 3개월분에서 4개월분으로 상향하여 세입자 보상을 현실화 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보장’은 없고, ‘보상’만 얘기하는 기존의 세입자 대책의 근본 문제를 반복하는 것이다. 특히 기존 투자금의 상당액을 날린 상태에서 4개월분의 휴업보상금 만으로 동일한 조건의 영업을 4개월 안에 재게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기존 수준 영업의 ‘휴업’이 아닌 ‘폐업’ 상태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이는 생존권을 박탈당해 죽음에 이른 이들에게 1개월만 더 생존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준 것에 불과하다.

그 외에도 최근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해 준 ‘세입자 순환용 주택 제공’ 역시 그 시행령에서는 사업 시행자가 요구할 경우 제공하는 것으로 한정해 놓았다. 또한 주거 세입자를 위한 임시주거인 순환주택 공급만 언급할 뿐 상가 세입자를 위한 임시상가 대책은 없어 용산 4구역과 같은 도심의 도시환경정비사업 지구의 경우 반쪽짜리 순환정비 대책에 불과하다.

세입자 대책, 오히려 ‘후퇴’

문제는 세입자 보완책에 우겨넣은 심각한 ‘개악’이 있었다는 것이다. 먼저 시행규칙 손실보상 항목의 개정으로 주거이전비를 보상받는 세입자 기준일을 앞당겨, 대상 세입자 수를 대폭 축소하도록 개악하였다. 때문에 이번 개정으로 사업시행인가 이전 구역지정 이후 이주해 온 세입자들을 비해당자 상태로 전락시켜 대책 없이 쫓겨나게 만들었다.

더 큰 문제는 또 있다. 세입자를 둔 조합원의 감정평가에서 세입자 보상비를 빼고 손실보상을 하는 것으로 개악되었다(도정법 48조 5항 2호). 정부는 이를 조합과 세입자간의 분쟁 원인을 없앤 개선책으로 포장하였다. 그러나 이는 기존에 조합-세입자간의 분쟁을 없앤다면서 분쟁을 집주인(조합원)-세입자간의 분쟁으로 바꿔치기 한 것이다. 특히 단순히 분쟁대상이 바뀐 수준이 아니라 오히려 집주인들에게 세입자들을 더욱 빨리 대책 없이 쫓아내게 만든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제 개발지역 집주인들은 자신의 평가금 손실을 우려하여 사업시행인가 전에 세입자들에게 재계약을 거부하며 적극적으로 쫓아내게 될 것이다.

양치기? 뻥튀기? 소년, 오세훈 서울시장의 세입자 보호 대책

정부에 앞서 서울시가 먼저 재개발 제도 개선을 다짐했다. 특히 참사 이전인 작년 총선 이후부터 뉴타운․재개발의 문제를 지적했고 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언론을 통해 연일 홍보하였다. 그리고 몇 차례의 자문위 활동 결과 발표 이후 지난 7월 1일 오세훈 시장의 취임일에 맞춰, ‘공공관리자 제도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정비사업 프로세스 혁신안’을 발표하였다. 오 시장은 공공관리자 제도의 도입에 대해 “40여년의 절차와 관행을 과감하게 철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주류 언론들도 ‘재개발 공공역할 강화’, ‘세입자 대책 강화’라는 제목들로 오세훈 표 ‘착한 척’ 주거정책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발표된 혁신안을 살펴보면 ‘요란한 빈 수레 혁신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시는 이번 혁신안을 통해 재개발사업 문제의 핵심을 민간에게만 맡겨놓은 것에 있다고 봤다. 문제의 근본에 대한 진단은 정확했다. 그러나 서울시의 처방은 전혀 근원적 처방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혹자는 ‘수술이 필요하다고 진단하고서는 빨간약만 처방했다’고 평했다.

특히 서울시의 혁신안은 애초 자문단이 구성된 주요 원인이자, 개발현장에서 가장 큰 문제로 드러나는 원주민 재정착과 관련해서는 전혀 대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서울시의 공공관리자제도는 공공이 업체선정 등에만 개입할 뿐 재개발사업의 가장 큰 문제점인 주민 이주대책 및 철거, 세입자 대책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민간에게 떠맡긴다. 결국 지역 주민이던 세입자들을 ‘떼잡이들’이라 비난하던 36억 부동산 부자 박장규 용산구청장은 ‘공공관리자’의 신분을 얻었다. 세입자 대책에는 여전히 무심한 채 공공관리자가 개발이익 발생의 중앙에 자리를 잡게 된 꼴에 불과하다.

제2의 참사를 막아야 한다

이처럼 정부와 서울시의 용산참사 이후 제도 개선책들을 보면 긍정적으로 나아진 개선 내용들은 하나같이 실효성이 부족한 형식적인 언급에 머물고 있다. 오히려 세입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적용에 있어서는 심각하게 후퇴한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돌아가신 용산 철거민들의 외침은 고작 1개월분의 보상금 추가와 심각한 세입자 대책 후퇴라는 암담함으로 돌아왔다. 한 철거민은 다섯 명이 죽어 나갔는데도 세입자대책이 달라진 것이 없는 현실에서 이제 개발세력들은 더욱 자신 있게 활개를 치며 밀어붙일 것이라고 절망하기도 하였다. 이런 현실은 제2, 제3의 용산참사를 불러올 것이 자명하다.

때문에 당장 닥쳐올 참사를 막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먼저 상가 세입자를 위한 생존권 대책인 개발기간의 임시상가와 개발 후 입주할 공공임대상가의 마련에서 시작해야 한다. 정부와 서울시가 의지만 있다면 제도 개선에 앞서 당장이라도 용산에서 시행 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을 선례로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그것이 돌아가신 철거민들의 외침이었으며 용산참사 해결의 해답이다.


※정부/서울시의 제도 개선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과 평가는 용산범대위 홈페이지(mbout.jinbo.net) 자료실, [용산참사 이후 개발관련 제도의 문제점과 대응방안]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