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사찰 간 데 없고, 대학생만 희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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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사찰 간 데 없고, 대학생만 희생양?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10.01.05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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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운대생 '보복수사' 논란... 기무사 "경찰, 검찰이 안씨 구속한 것일뿐"
▲ 광운대 부총학생회장을 지낸 안중현씨. ⓒ 광운대 대책위 제공
광운대 전자물리학과에 재학 중인 안중현(27)씨는 지난해 10월께 경찰서로부터 출두 요구서를 받고 두어 차례 조사를 받았다. '공무집행 방해 및 치상' 혐의 때문이었다. 이어 경찰 측은 "마지막 조사를 받으러 나오라"고 통보했고, 11월 20일 조사를 마친 뒤 안씨를 긴급 체포했다.

안씨는 체포 석 달 전인 8월 초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주변에서 열린 집회 현장에서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소속 신근섭(35) 대위를 폭행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신 대위는 경찰 조사에서 "폭행 당시 안중현씨를 보았다"고 진술했고, 대질심문에서도 안씨를 폭행 당사자로 지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안씨가 신 대위를 폭행했다는 증거로 제시된 것은 신 대위와 동료 직원의 진술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져 '무리한 보복수사'라는 지적도 일고 있다.

신 대위 폭행 등과 관련된 안씨의 첫 재판이 내일(5일) 오전 10시 40분 의정부 지방법원에서 열린다.

쌍용차 노조 관련 집회에서 붙잡힌 기무사 신 대위

안중현씨는 지난 2008년 광운대 부총학생회장을 지낸 현역 학생운동가다. 학생회에서 활동한 이후에는 광운대 교육운동본부에서 재단 정상화를 위해 노력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노동계 최대 현안 중 하나였던 쌍용차 노조 파업 지원투쟁에도 참여했다.

신 대위가 안씨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지난해 8월 5일, 경찰의 폭력적인 쌍용차 노조 진압작전에 항의하기 위한 집회가 평택역 앞에서 열렸다. 그런데 이날 기무사 소속인 신 대위가 집회 현장을 몰래 촬영하다가 일부 집회 참석자들에게 붙잡혔다. 신 대위는 당시 기무사 소속을 숨기려고 했는지 집회 참가자들과 비슷한 하얀색 라운드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당시 신 대위는 'WORK BOOK'이라고 적힌 남색 수첩을 가지고 있었고, 그 수첩 안에는 '군 작전 차량증' 복사본 4장과 그의 주민등록증이 들어 있었다. 특히 수첩에는 사찰대상자들로 보이는 인사들의 행적이 날짜별, 시간대별로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신 대위가 가지고 있던 수첩 등 사찰의혹 자료들은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에게 건네졌다. 그리고 1주일 뒤인 8월 12일 이 의원은 국회에서 '기무사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폭로했다.

하지만 기무사측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있는 장병들이 쌍용차 시위에 가담하는 것을 막기 위해 평택역에서 예방활동을 하던 신아무개 수사관을 40~50명의 시위대들이 20분간 억류했고, 신 수사관이 성명과 소속, 계급을 밝혔는데도 폭행을 가하고 소지품을 빼앗아 갔다"고 반박했다.

이렇게 민간인 사찰 의혹을 부인하던 기무사측은 한발 더 나아가 "사건에 관련된 관계자들을 공무집행 방해 및 특수폭행죄로 수사의뢰하겠다"고 압박했다. 이후 안씨를 신 대위 폭행 당사자로 지목한 뒤 '특수공무방해 및 강도 상해' 혐의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기에 이르렀다.

"중현 오빠는 신 대위가 붙잡힌 장소에서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렇다면 신 대위의 주장대로 안씨가 그를 폭행하고 수첩 등을 빼앗은 것은 사실일까?

신 대위가 폭행당했다는 지난해 8월 5일, 안씨가 평택역 집회에 참석한 것은 사실로 확인됐다. 신 대위가 촬영한 동영상에도 그가 다른 집회 참가자들과 함께 집회 현장 근처를 지나가는 장면이 찍혀 있다.

하지만 신 대위가 집회 현장을 촬영하다 붙잡힌 장소로부터 좀 떨어진 곳에 안씨가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당시 안씨와 함께 평택역 집회에 참석했던 전진희(서울여대 4학년)씨는 "신 대위가 붙잡혔을 때 그 근처에 제가 있었는데 중현 오빠는 저보다 더 멀리 있었다"며 "중현 오빠는 신 대위 얼굴도 잘 기억 못했다"고 증언했다.

전씨는 '시위대에 폭행을 당했다'는 신 대위 주장과 관련해서도, "사람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고 신 대위의 양팔을 잡고 있었다"며 "손발로 때리는 일은 없었고 힘으로 제압하는 정도가 전부였다"고 반박했다.

"집회가 다 끝났는데도 신 대위가 동영상과 사진을 찍고 있었다. 집회 참가자들이 이상하게 생각해 '누구냐?'고 물어봤는데 신 대위가 도망가려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 대위를 붙잡아 집회 현장 쪽으로 데려왔다. 신 대위는 자신이 '일반 시민'이라며 도망만 가려고 했다. 그래서 신 대위의 소지품을 확인해볼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문제의 사찰 의혹이 담겨 있는) 수첩이 나왔다."

또한 신 대위가 집회 참가자들에게 붙잡혔을 당시 찍힌 사진에도 안씨는 없었다. 안씨의 변론을 맡고 있는 서보열 변호사는 "신 대위와 동료 기무사 직원의 진술 외에 폭행과 관련된 직접적 증거는 없다"며 "신 대위의 목을 잡고 있는 학생도 안씨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신 대위는 당시 자신이 본 사람의 인상착의를 바탕으로 몽타주를 작성했는데 그와 가장 비슷한 인물로 안씨를 지목했다"며 "이정희 의원이 기무사 민간인 사찰 의혹을 폭로하니까 거기에 대응하기 위한 차원에서 안씨를 구속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서 변호사는 "기무사측은 안씨가 집회에 참가하는 사진과 각목을 들고 있는 사진 등을 증거로 제시했는데 이것이 구속에 영향을 끼친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불법사찰 확산 차단하기 위한 것"... 기무사측 "검경이 조사해 구속한 것"

또한 황규철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연대사업국장은 "왜 안씨가 기무사에 찍혔는지는 이해할 수 없다"며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의혹이 확산되고 있는 것에 보복하기 위한 성격이 짙다"고 주장했다.

광운대 대책위측도 "기무사의 불법 사찰을 폭로한 것에 대한 '앙갚음'"이라며 "'공권력의 위협'을 통해 불법 사찰 문제가 더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씨의 어머니 이명숙씨는 "아들은 자신이 신 대위를 폭행한 사실은 없다고 분명하게 얘기하고 있고, 신 대위가 폭행당했다는 자리에 아들은 없었다고 한다"며 "폭행을 하거나 절도를 할 성품도 아닌데 참으로 억울하다"고 울먹였다.

한편 윤여협 기무사 공보관은 4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피해자가 폭행당했다고 고소했고, 경찰과 검찰이 사건을 조사해서 안씨를 구속한 것일 뿐"이라며 "기무사가 안씨 수사에 관여한 바 없다"고 말했다.

다만 윤 공보관은 '안씨가 신 대위를 폭행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피해자가 폭행당했다고 고소했을 뿐 증거에 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답변했다.

▲ 지난해 8월 12일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기무사 민간인 사찰 증거의 하나로 제시한 신근섭 대위의 '사찰메모수첩'. ⓒ 이정희 의원실 제공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
10.01.04 19:28 ㅣ최종 업데이트 10.01.04 21:44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94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