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특공대 공명심이 사건 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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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특공대 공명심이 사건 유발했다"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10.01.15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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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용산 '미공개' 수사기록 2160쪽 공개...경찰 과잉 진압 시인
▲ 용산참사의 변론을 맡은 김형태 변호사가 15일 오후 서울 역삼동 법무법인 덕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참사현장의 망루 모형을 가리키며 화염병이 직접적 발화 원인이 아니라고 주장한 진압대원의 진술도 나왔다며 발표하고 있다. ⓒ 유성호


"화염병이 던져져 터지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용산참사 당시 망루에 들어갔던 경찰특공대원)

"현장 상황을 잘 전달받았으면 중단도 시켰을 텐데 특공대원들이 작전을 성공시키겠다는 공명심에 이런 상황을 유발한 것 같다. 어쨌든 우리 지도부가 역부족이라서 이런 일을 초래한 것이 안타깝다." (이송범 당시 서울지방경찰청 경비부장)

'용산참사'에 관한 미공개 수사기록 2160쪽 내용이 15일 공개됐다. 발화 원인이 화염병이 아니었다는 일부 경찰들의 진술들이 담겨 있었다. 당시 지휘라인에 있던 경찰 수뇌부들이 "상황을 보고받았으면 중단시켰을 것"이라고 진압의 문제점을 시인한 대목도 나왔다.

이날 오후 1시 법무법인 덕수 사무실에서 기자들을 만난 김형태 변호사(철거민 측 변호인)에 따르면, 망루 안에 있던 경찰특공대원 2명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참사 당시) 화염병을 못 봤다"고 밝혔다. 바깥에 있던 경찰 1명도 망루 틈새를 타고 흐르던 불길에 대해 "화염병으로 붙은 것과 다른 큰 불길"이라고 진술했다.

경찰 수뇌부는 진압 상황을 잘 몰랐다는 주장을 반복하면서 일선 특공대로 그 책임을 떠넘겼다. 이송범 전 경비부장은 "다른 기관과 관계, 시간적 부족함 때문에 제대로 (준비를) 못했다"면서 "특공대가 민첩하고 대담한 것은 맞지만 너무 용맹하다보니 보고없이 진행한 것이 아쉽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진술들은 참사 당시 경찰 진압이 적법하지 않았다는 변호인단 주장을 뒷받침한다. 

책임 떠넘기는 경찰 수뇌부... 변호인단 "치사상도, 특수공무집행방해도 무죄"

▲ 용산참사의 변론을 맡은 김형태 변호사가 15일 오후 서울 역삼동 법무법인 덕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용산참사에 대한 검찰의 미공개 수사기록 2000여 쪽을 검토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유성호
이러한 진술이 1심 선고를 뒤집고 무죄 석방까지 끌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하지만 핵심 쟁점이기도 한 진화 원인과 관련한 직접적 증거나 진술은 나오지 않았다.

이에 대해 변호인단은 "철거민과 경찰들이 대치하던 망루 계단이 비좁기 때문에, 화염병 투척으로 화재가 났다면 현장 경찰대원들이 이를 못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변호인단은 망루 내에 들어차 있던 세녹스 유증기가 발전기의 열이나 진압장비 마찰 등으로 인화됐을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다.

1심 재판에서도 이와 유사한 진술은 이미 제시된 바 있다. 진압 당시 선두에 섰던 경찰특공대원이 공판에 나서 "화염병은 보지 못했고 발화원인을 알 수 없다"고 증언한 것이다.

당시 재판부는 "(대원들마다) 망루 내 위치나 머문 시간 등이 다르고 소화기 분말 등으로 시야가 흐려졌기 때문에 (진술이) 오히려 일치하지 않는 게 자연스럽다"면서 검찰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이번 수사기록에서 참사 당시 화염병 투척을 보지 못했다는 진술이 추가됐고, 새 재판부가 사건을 맡은 만큼 발화 원인에 대해 사실관계를 다툴 여지는 더 커졌다.

이번 수사기록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경찰 고위 간부들의 진술이다. 경찰 지휘부가 과잉진압을 인정하는 듯한 진술이 나왔고, 준비 없이 치러진 작전의 정황도 드러났다.

신두호 당시 서울경찰청 기동본부장은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경찰특공대원이 진압에 앞서) 밤늦게라도 교양을 했어야 했다"고 진술했다.

전철연 측이 "경찰력이 철수하면 화염병을 투척하지 않겠다"면서 6자대화를 요구했지만, 용산구청이 이를 거부한 사실도 밝혀졌다. 진압 전 농성자를 설득하는 과정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검찰은 "망루 안에 화염병이나 식수가 소진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 아니냐" "농성자들이 일반 시민에게는 화염병을 투척하지 않는데 (경찰이나 용역업체 직원들이) 불법행위를 유도해서 화염병을 던진 것 아니냐"고 따져물었다.

그러나 경찰 간부들은 "대로변에 망루가 있어서 교통이 방해된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진압 이유를 밝히지 못했다. 신두호 당시 기동본부장은 "망루 안에서 시너를 투척하고 화염병을 던지는 것을 보고받았더라면 제가 결정권자라면 중지시켰을 것"이라고 검찰에 진술했다.

변호인단은 이러한 기록들을 토대로 구속된 철거민들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철거민 9명은 '특수공무치사상'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데, 화재 원인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치사상' 죄를 물을 수 없고 경찰 강경진압이 적법하지 않기 때문에 '특수공무집행방해'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말 용산참사 협상이 타결된 것도 긍정적이다. 재판부가 정치적 부담을 덜었기 때문이다. 변호인단은 "협상을 통해 용산 문제가 정리되면 형법적 시각으로만 재판할 수 있을 것이다, 순수한 형사소송이라면 이기는 사건이다"고 주장했다.

용산 범국민대책위 역시 "정당하지 못한 공무집행이라면 철거민들이 뒤집어쓴 특수공무집행방해죄는 성립하지 않게 되며 당연히 무죄"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진압이 적법한 절차를 무시한 채 이루어진 일이라면 경찰에게 살인죄를 물어야 하고 이를 집단적으로 은폐하려고 한 검찰과 관계당국 또한 처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생활 보호" 외치던 검찰, 기록 공개되자 재판부 기피신청

▲ 용산참사의 변론을 맡은 김형태 변호사가 15일 오후 서울 역삼동 법무법인 덕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경찰이 증거 자료로 제시한 동영상을 가리키며 화염병에 의해 불이 났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었다며 설명하고 있다. ⓒ 유성호


그러나 2심 재판은 공판을 시작하기도 전에 파행을 겪고 있다. 검찰이 수사기록 공개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14일 재판부 기피신청을 낸 것이다. 이에 따라 오는 18일 열릴 예정이던 항소심 심리도 중단됐다.

검찰은 재판부가 수사기록 공개를 결정한 다음날인 14일 "모든 조처를 취하겠다"면서 즉시 항고했으며, "불공정한 재판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재판부 기피신청을 냈다.

그동안 검찰은 사회적 여론은 물론 법원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수사기록 공개를 거부해왔다. "조사했던 관계인들의 사생활에서 비밀, 생명·신체의 안전, 생활의 평온을 침해할 수 있고, 수사에 장애를 가져오고 정치적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 검찰이 내세운 이유였다.

당시 1심 재판 도중 일부 수사기록은 공개됐지만, 2000여 쪽은 공개되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그로 인해 변호인단이 재판부 기피신청을 내고 변론을 거부하면서 재판이 파행을 겪었다. 그러나 검찰은 지난해 12월 용산 유가족들이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해 낸 재정신청과 관련해서는 형사5부에 수사기록 전체를 제출했다.

이번에 수사기록이 공개된 것은 지난 11일 법원이 용산철거민 항소심을 맡고 있는 형사7부에 재정신청 사건을 재배당했기 때문이다. 미공개 수사기록을 넘겨받은 새 재판부는 13일 용산참사 변호인단에 이를 공개하기로 했다.

검찰은 재판 기피 신청을 하면서 "다른 사건을 통해 보유하는 사건기록을 재판부가 직접 내주는 것은 위법하다"면서 "기록을 내줄지 판단할 권한은 검사에게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변호인단이 14일 이미 관련 기록 일체를 등사했기 때문에 검찰의 대응이 재판에 영향을 끼치기는 어렵다.

김형태 변호사는 "실제 보고서를 봤더니 국가 안보나 사생활을 조사한 내용은 전혀 없고 사건 진상규명에 필요한 증거가 있었다"면서 "오히려 알아서 기록을 내놓았어야 할 검찰이 재판을 기피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오마이뉴스> 권박효원, 유성호 기자
10.01.15 20:12 ㅣ최종 업데이트 10.01.15 20:12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01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