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처벌과 인권] 나의 삶 그리고 KAL858기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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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처벌과 인권] 나의 삶 그리고 KAL858기 사건
  • 신성국 신부(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
  • 승인 2010.01.27 22: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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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을 활동을 시작한지 벌써 7년의 세월이 흘렀다. 2003년 4월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기 위해 ‘인간 방패’로 참여하고 돌아온 뒤 KAL858기 가족회 임원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해 5월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한 소설 ‘배후’(서현우 저)를 읽고 많은 부분에 공감을 가지면서부터이다.

나의 결심

이미 2001년경에 천주교인권위원회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공동으로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성명서를 발표한 적이 있다. 그때에도 작은 관심은 있었지만 깊이 참여하지는 못했고 ‘배후’ 소설을 읽은 뒤부터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하게 되었다. KAL858 가족회 임원들과 만나면서 평소에 내가 의혹을 품고 궁금했던 문제들에 대하여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나를 분노케 한 것은 전두환 노태우 안기부가 피해자 가족들에게 저지른 비인간적 행태였다. 피해자 가족들은 이 사건으로 인하여 사랑하는 남편과 자식을 잃고 가족의 입장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알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과 지극히 당연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오히려 안기부는 이들에게 수모를 주고 협박, 무시하고 인권을 짓밟으며 진상규명 활동을 방해하였다는 말을 듣고 나는 그들의 행동에 적극 가담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국민들과 함께

2003년 11월 3일에 천주교 사제 115명의 이름으로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선언’을 발표하였다. 그 이후 나는 전국 성당을 돌면서 강연을 하고 많은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사람들은 다시 이 사건을 상기하고 의혹에 대하여 많은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하였다. 사건이 발생할 당시 한국 사회는 전두환 정권 말엽에 민주화 열기가 최고조에 달한 시점이었고, 김대중과 김영삼 양김 분열로 인하여 매우 어수선한 13대 대선 정국을 치루는 과정이었다. 안기부는 혼란과 혼미한 시대적 상황에서 모든 방송과 언론을 동원하여 연일 KAL858기 사건 거짓 보도를 쏟아내고 있었다. 내가 ‘거짓 보도’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이 사건 관련 언론 기사를 수집하고 검토하면서 당시 방송과 신문기사들이 사실과 전혀 다른 근거도 없는 소설을 썼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들은 KAL858 사건 조작 주체인 전두환 안기부가 보내준 거짓 정보를 받아 상상력과 추리력을 가미하여 부풀리고, 짜깁기하여 안기부의 의도대로 국민들에게 이 사건을 세뇌시켜놓는 일에 협조하였다. 그러나 2003년 115인 사제들의 선언 이후 국민들의 관심사는 더욱 높아졌고,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대책위원회와 가족회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특히 방송 3사에서 진실을 알리려는 프로그램들을 제작하여 방영하였고 각종 언론들이 가족들의 목소리를 전해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어머니들의 메마르지 않는 눈물

내가 이 사건을 만나면서 안기부(국정원 전신)와 국정원 직원들은 눈물도 피도 없는 비열하고 비정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피해자이고 억울한 사람들인가? 피해자 가족들의 주장은 딱 한가지이다. 사고기 탑승자 115명 중에 시신 한 구 조차 보여준 적이 없으니 시신 한 구 만이라도 가지고 오면 안기부 수사 발표대로 항공기 폭파사고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기부는 단 한 개의 증거도 없이 무조건 믿으라고 강요하니 상식적으로 양심적으로 누가 믿을 수 있는가? 내가 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끈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어머니들의 마르지 않는 눈물’ 때문이다. 22년간 그분들의 가슴에 맺힌 한을 누가 풀어줄 것인가? 그분들의 울부짖는 고통스런 신음과 피맺힌 외침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 사제의 심정으로 그들 곁에서 서성거리며 기도할 뿐이다.

이 사건 안에 담긴 뜻은 분단 국가에서 복음을 전하는 천주교 사제에게 주어진 숙명적 과제가 아닐까 묵상한다. 분단국이 아니면 도저히 생겨날 수도 없는 사건이건만 분단이 가져온 죄악이며 고통의 산물이 아닌가. 분단을 이용하여 기득권을 누리는 군부권력과 그들의 하수인 정보기관 안기부가 합작한 사건이 바로 KAL858기 조작 사건이다. 진실을 밝히려는 가족들, 양심적 국민들과 진실을 숨기려는 국정원(안기부), 거짓 세력과의 팽팽한 다툼이 이 사건 안에 담겨져 있다.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 반드시 진실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인혁당 사건, 수지김 사건, 수많은 간첩 조작 사건들이 이미 만천하에 드러났다. 중정과 안기부가 저지른 범죄 만행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하나하나 밝혀지고 있다.

진실의 힘

나는 약 4년간 미국 생활을 하면서 이 사건 관련한 자료들을 수집하였다. 내가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기 때문에 어려움도 많았지만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작은 성과를 거두었다. 미국 국무부 자료를 받아냈다. 자료를 분석한 결과 주목할 만한 내용이 두 가지 나오는데 하나는 한국 정부가 사고 수색을 매우 소극적으로 시도하였음이 발견된다. 한국 정부는 미국에 PC-3 정찰기를 보내달라고 요청을 하였다. 그러나 한국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이 요구를 철회하였다(문건 E28). 다른 하나는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에게 ‘북한이 저지른 항공기 폭파 테러 사건으로 여론 조성을 시도해달라’는 요구를 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문건 E42).

▲ 미 국무부에서 공개한 문건 E28과 E42


안기부는 철저한 사고 수색과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수사를 했다고 했지만 사실은 엉터리 수색이었고, 대선 활용 후에는 곧바로 수색팀을 철수하고 사건을 조속히 마무리한 흔적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진상규명 대책위에서는 금년 상반기에 검찰 수사기록을 검토한 결과물을 발표할 것이다. 검찰 수사기록에 대한 분석 결과가 나오면 당시 안기부와 사법부가 얼마나 거짓으로 수사했는지 그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국정원은 스스로 착각에 빠져있다. 진실을 완벽하게 감출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더구나 이명박 정권하에서 이 사건은 절대로 밝혀질 수 없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진실은 어떤 강력한 힘으로도 억누를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인류의 역사는 진실의 힘이 가장 강력함을 우리에게 입증한다. 나는 믿는다. 하느님은 어머니들의 피 맺힌 한과 눈물을 닦아주시는 사랑과 정의의 하느님이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