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의 꿈, 찰리 채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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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의 꿈, 찰리 채플린
  • 김지현(유스티노, 천주교인권위원회 이사)
  • 승인 2010.02.22 14: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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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영화사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가인 찰리 채플린은 약한 자, 가난한 자, 소외된 자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갖고, 가진 자와 높은 자의 위선과 부패에 대하여 날카로운 해학과 풍자를 통해 희극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시대와 국적과 계층을 뛰어넘으며 흠모를 받고 있다. 채플린의 영화에서 주인공은 언제나 보잘 것 없는 존재로 나온다. 그러나 채플린은 더없이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희극적으로 그려낸다. 1925년에 발표된 ‘황금광시대’라는 영화를 보면 경찰에 쫓기던 주인공이 산속에서 배가 고파 구두를 삶아 뜯어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이 너무 우스꽝스러워 측은지심의 실소를 터뜨리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한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모던타임즈'에서는 인간이 물질문명에 종속되어가는 모순과 문제점을 서늘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채플린은 빠르게 움직이는 컨베이어 벨트 속도에 맞춰 부품을 조립해야만 하는 부품화 된 인간의 서글픈 상황을 희극적으로 표현하여 웃음을 빚어냈다. 비극의 심연에 희극과 감동이 있고 희극의 심연에 처연한 비극이 깔려있다. 채플린은 그렇게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러면서 따뜻한 기쁨과 희망을 가슴에 심어줬다.

근래 ‘영화 같은 장면들’을 자주 목격하는데, 요즘 가장 재미있던 것은 국가산하기관의 대표가 두 사람이 된 사건이다. 한 사람은 새 장관이 쫓아낸 사람으로서 그 절차와 내용이 잘못됐다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 제자리로 복귀한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먼저 사람이 쫓겨난 뒤 임명된 사람이다. 그 기관에선 법원 결정이후 두 곳에 기관장 자리를 마련했단다. ‘한 지붕 두 가족’이란 드라마 제목은 들어봤어도 ‘한 기관 두 기관장’이란 얘긴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상황이 이쯤 됐는데도 이런 결과를 빚은 장본인인 해당 장관에게선 해결 자세가 전혀 보이질 않았다. 어느 기자가 향후 대책을 물으니 고민한 흔적은 찾아볼 길이 없고 “재밌잖아~”라고 답변했다던가? 이것이 해당 장관으로서 기자에게 사건 관련 코멘트로 내뱉은 얘기라니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얼마 전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과정은 잘못됐지만 그 과정의 결과는 유효하다”라고 하여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해 내고 조롱거리가 된 일도 있었지만, 어느 여성 정치인은 다른 사람의 자료를 빌린 뒤 그 내용을 베껴 자기 이름으로 책을 내는 촌극을 벌였다. 조사를 통해 표절이 드러나고 결국 법정판결까지 났는데도 그녀는 “‘법 때문에 억울한 사람들이 많이 생겨날 수 있겠구나’라고 느꼈다”며 끝까지 후안무치하게 발뺌하였다. 더구나 도둑이 제발 저리다고 먼저 소송을 걸었다니 그녀의 인격이 메말라있는 것 같아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태를 호도하는 대처방식과 말솜씨로 보건대 TV 개그 프로 작가로 전직할 것을 권하고 싶다.

총리의 실언과 행보는 또 어떤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근래에만도 731부대 관련 실언에 이어 영화 ‘아바타’를 집에서 보았다고 말하는 무개념은 개그에 가깝다. 총리실의 홍보담당관은 걸핏하면 총리 발언설명 보도자료를 돌리느라 제 일을 못한다. 대통령은 더하다. 서울시장 시절부터 대통령 선거 유세과정, 당선이후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세종시 건설 계획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수십 차례나 공언했건만, 이제 그 공약을 무효화시키기 위해 전 국민을 상대로 일전을 불사할 태세다. 같은 당의 의원들에게조차 이해를 구하지 못하면서…. 4대강 문제를 비롯하여 시장 시절부터 보여준 그의 갖가지 말 바꿈 사례를 나열해보면 진짜와 가짜가 쌍곡선을 그리며 난무하여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그 때마다 국민들은 환호했다가 어느 순간 뒤집어져 가슴에 피멍이 든다. 국가 지도자들이 벌이는 코미디 같은 행태를 보면서 헛웃음 끝에 슬픔이 밀려온다. 블랙 코미디와 희/비극이 범벅이 된 영화를 보는 듯하다. 이 현실이 영화라면 좋으련만….

우리 사회가 독재와 민주화의 가시밭길을 헤쳐 온 것이 불과 3~40년이다. 우리처럼 그리 길지 않은 기간에 극단의 희/비극을 맛보며 사는 국민들도 흔치는 않을게다. 공동선을 지향하는 인간적인 사회, 존경받는 정치, 더불어 공존, 번영하는 민족의 희망찬 미래를 우린 누릴 수 없는 것일까? 차제에 진보개혁세력도 반성해야 한다. 그들은 과거 힘을 합쳐 낡은 법과 제도를 개폐하고 보다 진전된 민주주의와 변화된 시대의 소명을 정착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주어진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타협했다. 그리고 갈라졌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울타리 속에서 고정관념과 이상만을 추구하는 근시안적 태도를 고수하며 사람도 이념도, 양립할 수 없는 차이라고 치부하고 배척했다. 넓게 멀리 내다보며 상호 용해되는 가운데 새로운 가치와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극우세력과 기득권층은 그 틈을 파고들어 달콤한 신기루로 국민의식을 호도하고 권력을 다시 차지했다. 그 결과 지금 세상은 신공안통치와 미디어 불법장악과 비정규직의 확산 속에 민족의 미래마저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선거를 앞두고 정략적 이합집산만 할 뿐 백년대계의 큰 틀을 짜는 대동단결의 움직임은 없으니 참으로 답답하다. 부디 우리 사회와 정치를 이끄는 지도자들이 찰리 채플린처럼 시련과 아픔을 웃음과 희망으로 승화시키고 국민들에게 감동과 환호를 선물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꿈이 아니길 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