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인권] 로레인 로스와 박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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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인권] 로레인 로스와 박지연
  • 김산(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 승인 2010.04.22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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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복을 연상하게 하는 새하얀 방진복과 에어샤워로 비쳐지는 반도체 산업은 무결점의 산업, 친환경적인 클린 사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반도체가 수십 수백의 유해물질을 거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혹 유해물질을 사용하더라도 완벽한 통제공간에서 안전하게 만들어진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3월 31일 고 박지연씨의 죽음을 계기로 반도체 산업이 갖고 있던 환상이 깨지기 시작하자 삼성은 한번도 공개된 적이 없다는 생산라인을 내외신 기자들에게 공개했다. 기자들은 새하얀 방진복으로 몸을 감싼 채 10여분간 완벽하게 통제되는 생산라인을 둘러보며 이러한 작업환경에서는 노동자들이 유해물질에 노출될 수 없다는 기사를 남발했다. 과연 그럴까?

▲ 고 박지연 씨의 영정 [출처] 반올림(cafe.daum.net/samsunglabor)


성공의 신화 실리콘밸리, 그러나…

반도체 산업의 모태이며 지금도 전자산업의 신기원을 만들어가고 있는 미국의 실리콘밸리는 도전과 성공이라는 환상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환상과는 달랐다. 통조림 생산지였던 실리콘밸리는 꿈의 공장으로 불리는 반도체 산업으로 인해 급격히 도시화되면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도전과 성공의 기회를 갖는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벤처의 화려한 모습의 뒤편에서 온갖 화학약품을 이용하여 반도체를 생산할 뿐이었다.

1970년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백혈병이나 암으로 사망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노동자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진상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결국 1980년 로레인 로스라는 여성으로 인해 반도체 산업의 환상은 철저하게 깨졌다. 선천성 심장기형을 가진 딸을 낳은 그녀는 지역의 많은 여성들이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은 사실에 의혹을 갖고 원인을 찾던 중 IBM과 FAIRCHILD라는 회사의 지하저장탱크에서 화학물질이 유출되어 지역의 식수가 오염된 것을 발견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반도체 산업에서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다량으로 사용되고 있음이 만천하에 알려졌다.

또한 IBM 재료분석파트에서 일하던 연구원 12명중 6명이 암이 걸리고 2명이 골격계암, 1명이 뇌종양으로 사망하는 일이 알려지면서 반도체 산업의 위험성은 화학약품의 유출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더 크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처럼 피해사실이 밝혀지고 소송이 진행되면서 산업안전법이 강화되자 반도체 산업은 이를 준수하여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들기 보다는 규제가 없는 아시아 국가로의 이전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 대상은 바로 한국과 대만이다. 특히 로레인 로스의 딸이 가진 장애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Fairchild의 경우 한국의 부천에서 장소와 현장의 노동자만을 바꾼 채 여전히 유해물질을 이용하여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 박지연 씨가 화장되던 날, 강남 삼성본관 앞에서 기자회견과 1인시위를 하다 경찰에 연행되는 모습 [출처] 반올림(cafe.daum.net/samsunglabor)


삼성반도체, 꿈의 공장 만들기는 가능할까?

그렇다면 세계 최고의 기술, 최대 생산량을 자랑하는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건강은 안전할까? 1980년대부터 반도체를 생산하기 시작한 삼성반도체에서 일한 노동자는 수만 명에 달한다. 하지만 몇 명의 노동자가 백혈병이나 각종 암에 걸려 사망하거나 투병중인지 철저하게 가려져 있다. ‘반도체노동자의 인권과 건강지킴이 반올림’이 2007년 11월 활동이후 2010년 4월 현재까지 제보된 사례는 23명으로 현재 산재신청을 했거나 산재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고 박지연씨의 죽음이후 알려진 사례뿐만 아니라 익명의 제보까지 포함한다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

처음으로 문제제기를 했던 고 황유미 씨의 경우 사측에서는 업무연관성이 없다면서 삼성에서 일한 수만 명의 노동자중에서 백혈병에 걸린 사람은 단 6명뿐으로 평균수치보다 낮으며 고 황유미 씨의 경우 개인질병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건강 노동자 효과’를 고려한다면 말이 달라진다. ‘건강 노동자 효과’란 삼성같은 대기업에서는 채용시 건강상태를 확인하기 때문에 그 집단은 다른 집단에 비해 건강하다는 것으로 삼성반도체에서 백혈병에 걸린 사람의 수치가 낮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주장하기엔 부족함이 많은 것이다. 더욱이 삼성은 피해자가 늘어날 때마다 6명에서 10명, 그리고 그 이상으로 말을 바꾸고 있다.

고 황유미 씨와 기흥공장 3라인 디퓨전공정에서 2인 1조로 일하던 고 이숙영씨도 비슷한 시기에 백혈병이 발병하여 사망했다는 사실은, 기흥공장 3라인에 아무도 알지 못하고 다만 삼성반도체만이 알고 있는 숨겨진 진실이 있다는 말이 된다. 삼성반도체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던 남편 고 황민웅씨를 먼저 보내야했던 전직 삼성반도체 생산직원이었던 정애정씨에 의하면 기흥공장에서 가장 노후된 시설인 3라인에서는 잦은 유출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아무도 그것이 어떤 것인지 모른 채 그냥 일을 했다고 한다. 또한 물량을 맞추기 위해 안전장치를 풀고 사용하는 일이 빈번했다고 한다.

그러나 삼성은 의혹은 외면한 채 생산라인 외관을 감성적 컬러로 바꾸고, 노천카페, 이동 갤러리, 임직원 가족 피크닉 공간을 비롯한 친환경 웰빙 산책로를 조성하며 도너츠, 베이커리, 아이스크림 등 신세대 기호에 맞는 전문점 입점 및 식당 환경 개선, 기숙사 리노베이션으로 쾌적한 재충전의 공간으로 만드는 등 반도체공장을 꿈의 공장으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삼성은 노동자의 건강권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수많은 노동자가 죽어가고 투병중이며 지금도 현장의 노동자들이 유해가스에 노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이를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수없이 많이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서도 가장 최신식이며 90%이상 자동화가 이루어진 공장을 보여주며 이를 믿으라고 하고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이다. 공장이란 말 대신 캠퍼스라는 말을 쓰고 화려한 외양과 온갖 편의시설을 갖춘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의 죽음과 투병, 그리고 지금도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작업환경은 없어지지 않는다.

이건희의 말처럼 더 이상 거짓말하지 않는 삼성이 되어야 한다. 숨기지 말고 투명하게 모든 것을 공개하여 진실을 밝히고 희생자들에 대해 사죄하고 피해자의 치료에 전념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삼성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다.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전자산업의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활동하는 개인과 단체의 모임입니다. 2007년 고 황유미씨의 죽음을 계기로 삼성반도체의 위험성을 알리고 안전한 작업 현장에서 노동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고, 백혈병이나 암, 불임, 유산 등으로 고통 받는 노동자들의 치료 및 산재신청에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삼성을 비롯한 전자산업에서 일하다가 백혈병, 암 등으로 투병하시거나 사망하신 분들 관련 제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음카페 cafe.daum.net/samsunglab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