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자연의 복수
상태바
[칼럼] 자연의 복수
  • 이유정(천주교인권위원회 이사, 변호사)
  • 승인 2010.04.22 13: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구가 심상치 않다. 화산폭발과 지진, 기상이변으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 유럽에서는 화산폭발로 항공기의 운항이 중단되고, 중국에서는 지진으로 수천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잔뜩 내려앉은 흐린 하늘과 막 피어난 꽃들의 여린 잎을 흔들어대는 세찬 바람 속에서 봄 같지 않은 4월이 계속되고 있다. 소빙하기가 도래했다는 분석을 내놓는 사람들도 있다. 유난히 길고 추웠던 지난 겨울을 생각해보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소식을 계속 접하다 보니, 인간이 자연에 대해 저지른 온갖 악행을 지구가 응징하기 위해, 자연의 힘을 총 동원해서 인간을 공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엉뚱한 생각도 하게 된다.

전국의 물길을 파헤치고 보로 막아 수질과 경제를 살리겠다는 명분하에 진행되는 4대강 사업과 벌써부터 드러나는 환경 파괴의 실태를 보면, 조만간 자연의 무시무시한 역습이 시작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천주교를 비롯한 종교계에서 일제히 4대강 사업의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전 국민의 70%이상이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강줄기를 파헤치는 공사는 계속되고 있다. 본래 인류의 문명은 강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강은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물을 공급해 주고, 교통수단이 되어 주었으며,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제공하기도 하는 소중한 존재이다. 때로 무섭게 범람하지만 그 대가로 비옥한 농토를 선물하기도 한다. 인류는 강변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인간이 먹고도 남을 만한 잉여 식량을 생산할 수 있었으며, 그것이 인류 문명의 출발이 되었다. 흐르는 강물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서도 인간의 필요에 맞도록 자연을 개발하는 법을 배워나가는 것, 아마도 그것이 문명의 본질일 것이다.

전국의 강물에 보를 설치해서 인공호수를 만들고 일정한 깊이로 유지하기 위해 강바닥의 토사를 임의로 걷어내는 4대강 사업은 문명이라고 할 수 없다. 흐르는 것이 강물의 본질인데, 강물을 보로 막아 물을 저장한다면 더 이상 강이라고 할 수 없다. 이는 명백히 자연의 순리에 역행하는 것이다. 또한 4대강을 파헤치는 것은 인간의 필요에 따른 개발도 아니다. 4대강 사업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은 건설공사나 땅 투기로 경제적 이득을 얻는 사람들이거나, 거짓 홍보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집권을 하려는 정치인들뿐이다. 필요에 의한 개발이라면 정부가 그처럼 막대한 홍보비를 쏟아 붓고 있는데도 70%나 되는 국민들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4대강 사업은 문명에 역행하는 것이고 그 결과는 예측할 수 없는 환경파괴와 자연재해로 나타날 것이다.

걱정스러운 일은 교회 내부에서도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를 '환경주의와 평화주의로 위장한 좌경세력의 정치적인 움직임’으로 폄하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소위 ‘뜻 있는 천주교평신도 모임’이라는 곳에서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주교회의를 정면 비판한 신문광고가 대표적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어떠한 논쟁이든 ‘좌익’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순간 합리적인 논의가 중단되고 편가르기와 색깔 공세로 전환되는 경향이 있는데, 4대강 사업에 대한 주교회의 입장표명마저도 ‘좌익’이라는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또 한가지 걱정스러운 일은 4대강 사업을 비롯하여 토목공화국을 지향하고 있는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 국민들이 투표로 심판할 수 있는 지방선거일을 앞두고, 4대강 사업을 비롯한 중요한 이슈들이 천안함과 함께 침몰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어제 천안함 장병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원인을 낱낱이 밝혀 단호히 대처하겠다”라고 다짐하는 MB의 모습을 보면서, 또 다시 북풍이 불어올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나만의 지나친 우려일까. 젊고 신선한 이미지로 널리 알려진 서울시장 여성후보의 입에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퍼주기가 천안함 침몰을 불렀다”는 터무니없는 망언이 거침없이 나오는 이런 시절에, 4대강 사업이나 무상급식 등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과 건설적인 대안이 함께 논의되는 지방선거가 과연 가능할까. 이래저래 마음이 무겁고 스산한 4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