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낙선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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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낙선의 단상
  • 엄윤상(천주교인권위원회 위원, 변호사)
  • 승인 2010.06.24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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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번 6∙2 동시지방선거에 구청장 후보로 출마하여 낙선했습니다. 출마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답답한 현실 속에서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주된 이유가 아닌가 합니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의 출마는 완패라는 결과를 낳았고, 저는 현재 두 달여 동안의 꿈에서 깨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출마한 서울지역에서 제1야당은 서울시장을 아깝게 놓치기는 했으나, 구청장 선거와 시의원, 구의원 선거에서 완승이라는 의외의 성과를 얻었습니다. 제1야당도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사실 제가 출마한 지역은 여야를 불문하고 여당이 우세하다는데 이견이 없었습니다. 여당 후보는 3선에 도전하고 있었고, 제1야당 후보는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공을 들이기는 하였지만 인지도가 높은 편이 아니었고, 저는 완전한 신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범야권에 속하는 저의 출마로 표가 분산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제1야당이 승리했습니다. 이 결과는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신생정당의 후보로서 깨끗하고 투명한 선거를 치렀다고 자부합니다. 사실 선거운동 중에 많은 유혹이 있었지만, 저는 원칙과 상식에 입각해서 끝까지 완주했습니다. 완패 속에 남은 유일한 성과가 아닌가 합니다. 선거운동 중에 마주쳤던 가장 큰 고민과 고통은 야권단일화에 대한 여러 경로를 통한 압박이었습니다(야권단일화는 허울 좋은 명분일 뿐이고 사실은 사퇴압박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저희 당으로부터 끝까지 완주하라는 결정이 있었지만, 그것이 아니었더라도 저는 끝까지 완주할 생각이었습니다.

우선, 선거운동 방법상 위험한 줄타기에 있어서 여당과 제1야당의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웠습니다. 사실 제가 현장에서 느끼기에는 제1야당의 후보들이 훨씬 위험한 선거운동을 했던 것 같습니다. 과연 지방정권이 제1야당으로 바뀐들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번 지방선거가 일정 정도 국민들의 한을 풀어줄 수는 있었겠지만, 제1야당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앞으로가 더 걱정인 이유입니다.

둘째, 힘의 논리를 앞세우기는 여당이나 제1야당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과연 제1야당이 여당을 이겨서 민주주의를 회복하자는 것인지, 대의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기득권을 확장하자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선거였습니다. 제1야당이 내세운 야권연대 압박의 명분은 정권심판이라는 ‘대의’였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대의와 제1야당이 생각하는 대의는 그 의미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제1야당은 대안 없는 정권심판을 내세우며 민주적 원칙과 상식이 없는 야권연대를 강요하겠지요.

저는 저 나름대로 답답한 현실 속에서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증에서 출마하여 치열하게 선거를 치러냈으나, 이번 지방선거가 제1야당의 승리로 끝났음에도 여전히 답답함은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선거기간중과 선거후 제가 선거참모들과 상대방 후보 측으로부터 제일 많이 들은 말은 “순진함”이었고, “그렇게 해서는 이기기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언가 해먹기 위해서는 제가 변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