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가 만난 사람] 예비법률가, 인권, 그리고 실무수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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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가 만난 사람] 예비법률가, 인권, 그리고 실무수습
  • 박찬성(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1년)
  • 승인 2010.08.24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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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을 공부한지, 불과 6개월 가량의 기간이 지났습니다. 난생 처음 접해 보는 생소한 법률 용어들과 제대로 이해하기조차 버거웠던 판례들 속에서 허덕이며 헤매다가, 제가 맨 처음에 왜 법학을 공부하고자 하였는지 왜 법조인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는지 금세 쉽게 잊어버리고는 타성에 젖어 수업에 참석하곤 했던 한 학기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첫 학기에 수강했던 한인섭 교수님의 ‘형법’ 수업 마지막 시간에, 선생님께서 저희 학생들에게 말씀해 주셨던 내용이 기억납니다. 여러분들이 항상 읽고 있는 판례들, 간결하게 정리되어 제시되는 사례들에서는 실제로 여러분들처럼 살아 숨쉬고, 상처받고 아파하고, 힘들어하고, 그렇게 때로는 울고 또 때로는 웃는 인간의 모습이 모두 사상되어 버린 채로, 갑이니 을이니 하는 일반적인 대명사의 뒤켠에 감추어져 있을 뿐이라고. 법리에 매몰되기에 앞서 고통당하는 인간의 내음을 먼저 느껴야 한다고. 그래서 졸업하고서 실무 현장에 나가게 되면 그 직역이 판사가 되었건 아니면 검사가 되었건 간에 설령 교과서에서 읽었던 것과 비슷한 이른바 ‘전형적’ 사안을 접하게 되더라도 “옳거니, 이건 책에서 한 번 보았던 사건과 비슷한 거로군!” 하면서 기계적으로 문제를 대하지 말고 언제나 어느 때에나 피의자, 피고인의 관점에 서서 이들을 대변해 줄 변호사의 눈으로 항상 문제에 접근하여야 한다고.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보냈던 2주간의 실무수습 기간은 저에게 있어서 한인섭 선생님의 말씀에 대해 찬찬히 되새겨 볼 수 있었던, 또 그러한 과정 속에서 학교 수업에 치이며 힘겨워했던 동안에는 거의 잊어버리고 있었던 예비법률가로서의 저의 다짐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길 수 있었던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구금시설 피구금인(재소자)의 침해당한 권리를 법률적, 제도적으로 구제해 줄 수 있는 여러 쟁송절차들을 이런저런 자료들을 찾아가며 정리하면서, 배움이 미진함에도 불구하고 제 능력이 허락하는 한에서 법률적 내용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쉬운 말로 풀어보고자 끙끙대면서, 한편으로는 법이 보장하고 있는 모든 구제제도의 내용을 정확하게 빠짐없이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전달하여야 하는 법률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얼마나 막중한 책임과 부담이 따라야 하는 것인가 하는 점을 느꼈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처럼 제도상으로는 분명히 허용되어 있는 구제절차에도 불구하고 기각 내지는 각하 결정을 숱하게 내리고 마는 법원의 판례들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워짐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손수 써서 보내 온 감옥으로부터의 편지를 읽어내려 가면서, 판례 속에서 그저 피고인 갑이니 을이니 하는 대명사로 표기되는 존재가 아닌, 상처받고 아파하며 힘들어하고 있는 인간의 흔적을 보았습니다. “아무도 저에게 귀를 기울여주지 않습니다. 부디 제 이야기를 외면치 말아주십시오”라는 ‘절규’를 보면서 누군가가 저를 필요로 할 때에 눈을 돌려버리고 외면하는 법률가가 되어서는 아니 되겠다는 생각을 한 번 더 가지게 되었습니다.

감옥인권 관련 국제 처우 기준들을 이리저리 찾아보면서,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는 관련 원칙을 선언한 문서가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니라는 점에 놀랐지만, 사실은 원칙의 많고 적음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원칙들이 현실 속에서 얼마만큼이나 잘 작동하고 있는지의 차원이 정말로 문제되는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지켜져야 할 근본 원칙은 ‘모든 인간은 불가침의 고유한 권리를 갖는다’는 단 한 가지가 아닐는지요. 바로 이 원칙을 수호하는 데에 조금이나마 미약한 힘을 보탤 수 있는 법률가가 될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의 경험을 잊지 않고 명심하겠습니다.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법학전문대학원 재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무수습으로서는 제가 첫 번째 수습생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많은 신경을 써 주셨던 그리고 저로서는 참으로 의미 깊었던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신 인권위원회 활동가 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