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인권] ‘모닝 대박’ 신화에 가려진 절망의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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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인권] ‘모닝 대박’ 신화에 가려진 절망의 공장
  • 기선(민주노동자연대, 인권단체연석회의 노동권팀)
  • 승인 2010.09.16 1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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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있고 빽 있는 사람들만 봐주지 말고, 우리도 좀 봐달란 말입니다!”

양재동 현대기아차그룹 사옥 앞에서 교섭을 요구하며 노숙농성 중이던 동희오토 비정규노동자들이 회사의 쏟아지는 폭력은 묵과한 채 번번이 자신들만 연행하는 경찰에게 질질 끌려가며 외친 절규이다.

최근 현대차에서 2년 이상 근무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있고 나서 현대기아차그룹이 취한 행동은 동희오토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농성장을 짓밟는 것이었다. 지난해에만 20만 6천대가 팔리는 등 현대기아차의 효자종목이라는 기아차 '모닝 대박'의 신화를 일궈낸 동희오토 노동자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 침낭을 빼앗아 가는 용역경비 [출처] 동희오토지회


그들은 자신의 일터를 '절망의 공장'이라 불렀다

동희오토는 기아차 ‘모닝’의 완성차 생산을 전담하는 기아차 하청공장이다. 기아차공장에서 뼈대만 만들고 엔진은 인도 공장에서 변속기는 현대파워텍에서 만들면, 동희오토 공장에서 도장과 조립으로 차가 완성된다.

900명의 생산직 노동자가 일하지만 그들 중 현대기아차 정규직은 없다. 이 공장 자체가 17개의 2차 하청업체들로 쪼개져 있기 때문이다. 기아차 아래로 동희오토, 또 그 아래로 중소하청업체가 있어 하청-재하청이란 구조로 엮인 공장, 그 먹이사슬 맨 아래에만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고된 노동과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으로 사람을 고정시켜 놓고선 공장을 돌리면 직접책임을 질 필요 없이 기름짜내듯 이익이 추출되는 기가 막힌 시스템이다.

이쯤 되다보니 노동강도는 말할 것도 없고 기본적인 권리조차 설 곳이 없다. 자동차 생산공장에서 노동강도를 나타내는 방법 중에 자동차 1대당 작업시간과 쉬는 시간의 비율인 편성률이란 게 있다. 다른 공장이 50~60%라면 동희오토는 80~90%로 1.7배에 달한다. 쉬는 시간은 거의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일하고 받는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으로 시급 4110원(2010년 현재)이다.

이 절망의 시스템은 노조 탄압에도 아주 제격이었다. 2005년, 250여 명의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결성하자 동희오토는 하청업체를 폐업시키고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그로부터 2009년까지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노동자가 있는 업체 폐업과 소속 노동자 전원해고가 해마다 반복되어 해고된 노동자가 100여 명에 이른다. 업체 폐업 후엔 어김없이 새로운 하청업체가 들어서고 노동조합 활동을 한 노동자를 제외하고 재고용된다. 노동자를 깔때기에 넣어 거르고 거르면서 살기위해선 스스로 납작 엎드리게 할 수 있는 공장, 노동자들이 절망의 공장이라 부르는 이유는 충분했다.

간접고용, 파견노동의 이름표는 사람으로 살기에는 너무나 무겁다

동희오토의 노동조합인 금속노조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는 공장이 있는 충남 서산에서 3개월간 천막농성을 벌이고 복직을 요구하며 안 찾아간 곳이 없다. 서산시청, 노동위원회에서는 간접적으로 고용된 노동자이기 때문에 요구를 들어줄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혹은 업체가 폐업되었으니 소용없다는 이유로 대화와 구제신청은 거부되었다. 교섭과 대화를 요구하는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회사의 일상적인 폭력과 주객이 전도된 소송이었고 노동자들의 손발은 일방적인 경찰 연행으로 묶이기 일쑤였다.

지난 7월 12일,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7인이 상경하여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실질적인 사용주는 현대기아차이므로 직접교섭에 나서라'는 요구를 걸고 시작한 농성은 첫날부터 순탄치 않았다. 60여일이 넘어가는 이때까지 물청소를 빙자한 새벽의 물대포, 우산으로 카메라를 가려가며 퍼붓는 폭력, 수면방해를 위한 사이렌과 헤드라이트 비추기, 매연 뿜어내기 등 헛웃음이 나오는 온갖 졸렬한 방법들이 현대기아차가 고용한 용역경비에 의해 동원되었다.

대화가 열릴 때까지는 이 자리를 뜨지 않겠다는 동희오토 노동자들에게는 자리를 지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회사의 방어집회인 교통질서 캠페인에 둘러싸이고 조금만 항의해도 폭력이 쏟아졌다. 저항하면 즉각 나타나 노동자만 쏘옥 잡아가는 경찰이 버티고 있었다. 법원조차 그 범위가 광범위하니 조정하라고 한 회사의 가처분신청에는 노동자들의 행동 하나하나, 피켓문구, 심지어 아직 하지 않은 행동조차 회사 이미지와 경영에 타격을 준다면서 금지 항목에 넣었다.

안정적이고 합법적인 집회는 회사가 고용한 용역들이 밤새 돌아가며 경찰서에 줄을 서대며 신고를 선점하는 바람에 돈 없는 노동자들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 서초경찰서에 집회신고를 하기 위해 24시간 줄을 서서 기다리는 용역들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www.newscham.net)


현대기아차는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동희오토의 지분 35%이상 소유, 현대캐피탈에서 리스한 기계와 장비가 있는 동희오토 공장의 땅과 건물의 임대 계약자, 동희오토의 생산품 ‘모닝’의 연구개발과 판매 및 AS의 담당자인 현대기아차는 무엇이 두려워 노동자들을 이토록 두들겨 때리며 손발을 묶고 입을 틀어막는 것일까?

몇 십만 대 단위로 팔리며 기아차 전체 차종 중 판매 1위, 현대기아차 전체 차종 중 3위를 차지하는 '모닝'차 생산에 무슨 비밀이 있어서 일까?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에게 333억 원, 그의 장남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에게 90억 원이라는 올해 주주총회 배당, ‘돈 잔치’의 주역인 동희오토 노동자들에게 이토록 모진 이유는 무엇일까? 간접고용, 파견노동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의 단물을 싼값에 빨고선 손쉽게 뱉어내는 시스템을 확고히 가지고 있으면서 왜 이리 치사하게 구는 것일까?

'원청 사용자성 인정하라'는 피켓을 들고 땡볕에 공장 담벼락 아래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던 GM대우차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주민이 걸음을 멈추곤 "다 아는 걸 왜 들고 있어?"하고 지나갔다는 이야기처럼, 모두 다 아는데 아니라고 우기는 낯 뜨거운 일이 하루 이틀도 아닌데 왜 이리 조급해진 것일까. 언제어디든 나타나서 자신들의 방어집회와 폭력은 묵인하고 노동자들만 끌고 가는 경찰, 돈으로 사서 선점하는 집회 신고를 조장하는 경찰이 이제는 못미더운 것일까. 혹시 지쳐 떨어질 것 같았던 기륭전자 노동자들, GM대우 비정규노동자들, 학습지노조 재능지부 노동자들의 싸움을 보며 동희오토 노동자들까지 새삼 무서워진 것일까.

모두가 같은 이름, 같은 무게로 삶을 살아가고 있진 않지만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사람이 산다는 것은 모두에게 똑같은 사실이다. 이제는 내 삶의 무게를 위해 다른 이의 짓눌림을 외면하는 노예 같은 삶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은, 위의 질문에 답하면서 내던져야 할 때가 아닐까. 이것이 먹고사는 일부터 사람답게 살기 위한 일까지, 나의 노동을 내가 결정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간접고용, 파견노동을 거부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