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인권] 전태일 40주기, 중년 노동운동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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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인권] 전태일 40주기, 중년 노동운동의 꿈
  • 권오광(모이세, 한국파트너십연구소)
  • 승인 2010.10.20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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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5일 새벽 1시가 넘어서 자려고 하는데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고 휴대전화가 계속 울어댄다. ‘이 밤중에 누가 문자를 보냈을까?’ 다급한 내용이라 짐작되어 거실로 나가 문자메시지를 확인해 본다. “새벽에 용역깡패들이 굴착기를 앞세워 현장진입을 하려고 하여 농성중인 기륭전자 노조 조합원들이 어려움에 처했으니 새벽에 기륭전자 농성장 앞으로 모여달라.” 마음 같아서는 가고 싶었지만 광주광역시의 파업사업장인 대우 IS 노조(여성 조합원이 대부분인 사업장) 교육이 있어서 오전 일찍 용산역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그 핑계로 가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이미 잠이 다 깨어버렸다.

노동법을 부정하는 사회

불법파견의 책임을 묻고 복직을 요구하기 위해 3년이 넘도록 장기투쟁하고 있는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모습이 아른 거리고, 90일 동안의 단식투쟁 속에 쓰러진 김소연 분회장의 모습, 그럼에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채 다시 두 명의 여성조합원이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는 소식. 안타깝기 그지없다. 10월 첫째 주 토요일에는 기륭전자 노조의 요청으로 문제해결에 함께 하기 위해 농성장 앞에서 촛불평화미사가 열렸다. 그 때도 비가 많이 와서인지 미사인원이 적어 고생하는 여성노동자들의 아픔에 큰 위로가 되지 못하여 민망했었다.

그동안 기륭전자 사측과 노조분회는 장기농성사태를 해결하기 위하여 최근 여러 차례에 걸쳐 협의를 한 끝에 최종합의안까지 만들었으나, 타결선언 전날인 12일 노조 분회원 10명을 직접 고용하는 문제에 대해 “그들을 직접 고용하면 회사에 들어와서 합법적으로 노조활동을 하려 할 텐데, 우리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막판에 협상이 깨졌다. 노동법에 보장되어 있는 노조활동을 부정하다니, 사용주는 불법을 저질러도 보장되는 우리 사회가 진정 공정한 사회를 추구하는 것인지 정부의 의지를 묻고 싶다.

심지어 15일 새벽에는 대형굴착기를 앞세워 현장진입을 시도했다. 이에 맞서 김소연 노조 분회장과 기륭전자 문제해결을 위한 대책위의 송경동 시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5m 높이의 굴착기에 올라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농성중이다.

전태일 열사 이후 40년

기륭전자 뿐만 아니라 현대자동차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동희오토 비정규직 노동자들, 인천의 대우비정규직 노동자들, 그리고 교육하러 가서 직접 눈으로 힘든 투쟁의 모습을 확인했던 구미의 KEC 노조, 충남의 발레오공조 노동자들, 광주의 IS노조의 천막파업농성 등 아직도 전국 각지에서 농성하는 많은 사업장 특히 여성 사업장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현실을 보면, 전태일 열사의 산화 이후 40년이 지났지만 노동현장의 상황은 여전히 어려움에 처해있다. 물론 민주노총이 조직되면서 대기업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하는 조직된 일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나아졌지만 영세사업장 노동자들, 여성노동자들, 850만 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오히려 후퇴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올해 맞이하는 전태일 열사의 40주년은 어떻게 맞아들여져야 할까? 전태일 열사의 죽음이후 30년의 과정은 그야말로 청년 전태일의 삶과 정신이 그대로 담아져 있었다. 87년의 노동자 대투쟁 그리고 무수히 조직된 노동조합, 이를 토대로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결성, 95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건설 그리고 산별노조 조직화 과정 등을 보면, 생존권 투쟁부터 시작하여 산별조직까지 그야말로 지칠 줄 모르는 투쟁의 연속이었고 자본가의 탄압에 맞선 연대와 단결의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한편에서 보면 오랜 투쟁에서 지치면서 관성화된 모습, 그리고 서로의 차이를 차별로 인식하여 적대시하는 천박한 정파주의, 그리고 자본가들의 조직와해 탄압에 의한 민주노조진영의 조직 축소 등 민주노조진영의 위기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인생에 있어서 40년은 대니얼 레빈슨(<남자가 겪는 인생의 사계절> 저자)의 말에 의하면 인생의 사계절 중 중년에 해당된다고 한다. 중년기에는 성취의 절정에 올라 자신의 인생을 재조명해 보고 흠과 결함들을 수용해서 삶의 전반적인 균형을 찾아 나가는 과정으로 보고 있다. 이 시기는 전환기와 안정기로 이루어지는데 전환기란 기존의 인생구조를 수정해서 새로운 구조를 준비하는 변화의 시기이며, 안정기는 새로운 구조를 구축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비교적 안정된 시기이다.

현재 노동현실의 주체적 조건을 보면 아직 중년기인 성취의 절정에 올라 자신의 인생을 재조명할 만큼 여유가 있지 못하다. 그런 면에서는 아직도 청년 전태일의 정신이 민주노동운동의 주된 기조가 되어야 함은 틀림없다. 그러므로 ‘되살아나는 전태일의 꿈’이라는 주제로 이달 말부터 40주기 추모행사가 서울광장·청계천 등에서 열려 오는 11월 13일 40주기를 맞는 전태일을 기리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평등과 자유가 넘치는 사람세상을 꿈꿨던 전태일 정신을 다시 생각하고, 40년 전 전태일로 돌아가보자”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행사와 함께 다른 한편으로는 레빈슨의 말처럼 40주년을 맞이하면서 민주노동운동이 기존의 관성적인 모습과 천박한 정파주의를 반성하고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내용과 구조를 준비하는 변화의 시기로 전환기를 맞이할 필요가 있다.

섬기는 리더십

한국사회를 보면 “리더는 많은데, 리더십은 없다”라는 말이 실감난다. 시중 서점에 많이 나와 있는 리더십에 관한 책을 찾아보면 대부분이 CEO를 위한 리더십을 강조한 내용이다. 즉 무한 경쟁의 신자유주의에서 자본의 이익을 더욱 많이 창출하기 위해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NGO 단체의 많은 활동가들을 위한 리더십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제 노동운동 진영은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성서의 말씀처럼 새로운 조직변화에 따른 새로운 리더십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기존 조직의 틀을 수직적 구조에서 수평적 구조로 변화시키고 이러한 조직형태에 맞는 리더십을 갖출 필요가 있다.

민주노동운동 진영에 필요한 리더십으로 섬기는 리더십(서번트 리더십)을 권유하고 싶다. 섬기는 리더십의 대표적 모델로 학자들은 ‘예수’를 꼽고 있다. 노동자 목수로 가난하고 소외된 약자의 편에서 로마왕정 체제와 맞서 죽음으로써 부활하신 모습을 보면 전태일 열사의 삶도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전태일 열사의 정신은 섬기는 리더십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섬기는 리더십은 끊임없는 자기성찰을 통하여 기존 조직의 틀을 수평적 구조로 변화시키면서 천박한 정파주의가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고 함께 가는 정파주의가 되도록 조직 안에서 지도자가 할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인간의 성장을 돕는 것은 바로 건강한 환경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섬기는 리더십이야 말로 민주노동운동의 가장 큰 화두인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큰 힘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이제 되살아나는 전태일 열사의 꿈을 현실의 희망으로 함께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