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파격(破格)을 되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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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파격(破格)을 되찾아야 합니다
  • 이철학 신부(서울대교구 삼성산성당 주임, 천주교인권
  • 승인 2011.10.24 15: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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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破格)이란, 한자의 의미로 볼 때 “깨트려 바로 잡는다”는 뜻을 가집니다. 이는 연예인들에게 수식어처럼 붙는 파격 노출이나 파격 댄스 등 정도가 지나쳐 격렬함을 뜻하는 ‘과격’하고는 구분되어 사용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너도 그렇게 살아라”

최근 공지영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도가니>가 청소년 성범죄와 인권유린을 다룬 파격적 영화로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장애인 청소년들에게 파렴치한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태연히 지도층 역할을 해왔던 인면수심(人面獸心)의 교장, 교사들의 오랜 악행이 만천하에 공개되고 이에 국민은 분노와 치를 떨며 범죄자들을 용서치 말 것을 법원에 탄원했습니다. 이것은 벽을 깨트리고 국민 참여 재판을 부분적으로 가능하게 해준 파격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근간에 출시된 임금자 수녀(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의 소설 <파격>은 아예 제목을 파격으로 달아 독자들의 시선을 끌었는데, 19세기 변화하는 조선 사회에서 일어난 기해박해(1839년), 병오박해(1846년)를 배경으로 신분의 벽을 깨트리고 평등사회의 문을 연 역관, 상인, 천주교 신부, 교우들의 이야기입니다. 수도자 신분의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 양극화로 고통 받는 현대의 사람들에게 긍정적 삶의 가치관을 심어주고, 현대 교회가 좀 더 파격적인 모습으로 변화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한 길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결코 파격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파격이 없다면 세상은 소수의 사람만이 살 만한 세상이 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은 고통스럽고 무의미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늘 파격을 하며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너도 그렇게 살아라. 이것이 세상을 살맛나게 하는 길이다.”

<파격>의 한 대목입니다. 특히 “너도 그렇게 살아라”는 광야에서 들려오는 예언자의 메시지처럼 오랫동안 영혼의 울림을 주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 그렇게 살아야 해. 파격을 두려워하지 말고 세상과 당당히 어깨를 부딪치며 기성에 안주 하지 말고 언제라도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말입니다.

수 세기가 흐르고 그때의 조선 사회는 이제 아이티(IT) 최강국, 아이돌 한류 열풍의 주역으로 육 대륙을 들썩이게 하는 세계적인 글로벌 코리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소설 속 <파격>이 때마침 2주 뒤에 치르게 될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시민운동에 앞장서 온 박원순 변호사를 60년 정통 민주당 후보를 제치고 야권 통합 후보로 내세웠다는 점입니다.

이를 일컬어 ‘풀뿌리 민주주의 승리’라고 외치기도 합니다. 네거티브 비방전과 당의 조직력으로 장악해왔던 과거와는 달리 21세기 선거전은 배심원단 평가와 여론조사 국민 참여 경선을 통한 '소통’ 중심의 주권재민(主權在民)이 엄연하다는 것을 통쾌하게 보여준 정치의 파격입니다. 또한 양지 보다 음지를 선택한 안철수 원장의 아름다운 양보가 고맙고 그러한 희망찬 비전을 알아본 국민들이 있다는 것 또한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회전문 보은 인사에 비리 공화국, 그것도 부족해 대통령 임기 말년이면 한 번씩 터지는 친인척 비리사건 등 국민의 정서나 바람은 무시된 채 안하무인(眼下無人)하는 소통 부재의 정권을 보면 씁쓸함을 감출 수 없습니다. 임금이 하늘인줄 알고 납작 엎드려 살았던 조선 사회는 가고 없는데 아직도 파격을 외면한 채 안주(安住)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우매함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파격(破格)은 교회 안에서도 일어나야 합니다

현재까지도 교황 선출은 추기경단에서 직선제로 뽑고 한국 주교회의 의장도 선출됩니다. 3년 임기 주교회의 의장이 재선임 되었습니다. 관리 행정 측면에서 보면 효율적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교회는 아직도 파격으로 나오기 보다는 안전한 길에서 멈춰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랏일 할 사람들을 국민이 직접 뽑는 국민 경선제처럼 교구장이나 교회 일 할 사람 선출도 신자들의 여론 조사나 선거인단을 통해 교구 신자들이 참여하는 신자 경선제가 도입되는 파격은 어떻습니까? 남성 중심의 교회를 변화하여 여성들에게도 성찬 봉사 자격을 개방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미국 교회는 집안에 환자가 있으면 가족이 성합에 성체를 받아 영성체를 하게 합니다. 교권을 가진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형식과 틀을 무너뜨리고 바른 교회 정치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냉담자, 외짝교우, 소외된 이웃들의 마음을 움직일 것입니다.

교회는 변화를 넘어서서 파격(破格)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조선 시대 천주교회가 평등사상으로 하느님과 사람을 섬기고 신분사회의 높은 담을 깨트려 민심(民心)을 얻어냄과 같이 그렇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천주교회가 조선 사회를 파격했던 것처럼 너도 그렇게 살아라! 현대 교회는 사람의 마음을 낚는 어부의 소명을 마음 깊이 새기고 우리시대에도 조선 천주교회로부터 파격(破格)을 되찾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