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학 이사장의 횡령과 학생의 손해-상식과 비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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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학 이사장의 횡령과 학생의 손해-상식과 비상식
  • 남승한(변호사, 천주교인권위원회 운영위원)
  • 승인 2011.11.25 1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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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 학교법인인 명지학원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교비 수백억 원을 빼돌리는 등 2,500억 원대 사학비리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유영구 전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가 검찰 구형(5년)보다 무거운 징역 7년이 선고되었다는 신문 기사를 며칠 전에 접했다. 유영구가 빼돌리거나 재단에 피해를 끼친 금액 2,500억 원은 명지대 학생 6,000여명이 6년간 등록금을 내지 않고 학교를 다닐 수 있는 돈이라 한다. 재판부는 실형을 선고하면서 피고인의 범행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과 부모에게 돌아갔고, 명지대가 전국에서 가장 비싼 등록금을 받는 것은 피고인의 범행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시했다 한다.

얼마 전 우리 위원회는 학생들이 교비를 횡령한 자들과 학교법인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공익소송으로 진행할 것인지를 검토한 바 있다. 사학비리의 종국적인 피해자는 학생들이니 학생들에게 손해배상청구권이 있어야 한다는 상식에 기초해 시작한 검토였는데 결론적으로는 소송을 제기해도 패소할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리고 소송을 수행하지 않기로 했다. ‘이론적’, ‘법리적’으로 학생들의 직접 손해를 입증하기 어렵고 인과관계 입증에도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점 등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결과는 학생들이야 말로 진정한 피해자라는 상식에 부합하지 못한다. 이런 상식과 이론의 괴리는 현행 사립학교법이 학교가 아니라 학교를 경영하는 설치 경영자인 학교법인을 권리 의무의 주체로 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학교법인이라는 것은 수익용 기본재산을 가지고 수익사업을 해서 이를 학교의 교비회계로 전입해야 하고(흔히 말하는 재단 전입금이 바로 이것이다), 학교는 전입금과 학생들이 낸 등록금 등을 주요 수입으로 운영해야 한다.

그런데 학교법인들이 전입금을 거의 내지 않거나 턱도 없이 낮은 금액만을 전입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공지의 사실이고 오히려 일단 학교법인을 설립하면 법인은 "돈줄"이 되는 학생들의 등록금인 교비에 욕심을 가지게 된다. 교비로 법인 직원 급여 주고, 교비로 법인이사장의 생활비를 대고, 교비로 사용하는 카드로 법인의 직원들이 접대를 하고 다니는 사례는 ‘양반’이다. 교비로 식품공장을 차리고 이것을 법인 재산으로 한 사례, 교비로 법인 이사장 등 관련자들의 애물단지인 부동산을 고가에 매수해 주는 사례 등도 있다. 이런 사례가 발견되면 감독당국은 당해 법인에서 무단으로 전출하여 사용한 교비를 다시 교비회계로 전입(즉, 상환)하라고 지시하고 이를 이행하지 못하는 경우 임시이사(흔히 관선이사라고 함)를 파견하기도 한다.

그런데 학교법인 혹은 횡령관여자가 횡령한 교비를 환수하면 이로써 학교법인의 손해와 교비횡령은 피해가 변제된 것으로 본다. 이것으로 끝이다. 언론은 물론 법원도 교비 횡령의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의 몫이라고 하지만 교비로 환수되었는지 만을 살필 뿐 환수된 교비로 실제 피해자인 학생들의 손해를 어떻게 보전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다. 실제 피해자는 학생들인데 학생들은 손해를 배상 받을 방법이 없고 그저 교비로 회수된 이상 교비를 알아서 잘 사용하기를 기대하라는 것이 전부인 것이다.

학생들의 피해 운운하는 훈계를 하는 것보다, 선동적으로 학생들 몇 년 치 수업료를 안내도 된다는 신문기사를 작성하는 것 보다 왜 실제 피해자인 학생들의 손해는 여전히 외면되고 있는지, 6년 치 등록금을 내지 않아도 될 재산을 확보하고 있던 법인과 학교의 등록금은 왜 올라가기만 했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법리 문제로 학생들의 손해배상청구는 불가하다는 도식적인 결론에 안주한 채 상식을 잊고 있었던 법조인들, 경쟁적으로 반값등록금을 공약한 뒤 나 몰라라 하는 정치인들 모두 반성해야 한다. "현실이 너무 어렵다고요? 괜찮아요. 말로만 하면 돼요"라 했던 개그맨의 풍자가 가책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