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인권] 광복절과 두물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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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인권] 광복절과 두물머리
  • 양기석 신부 (수원교구 수원대리구 사회복음화국장)
  • 승인 2012.08.31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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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가 독립되는 날 인도국기를 첫 번째로 게양할 자격이 있는 사람을 꼽아보라면 단연코 비노바 바베다.” 인도의 간디가 남긴 말이라고 한다. 비노바 바베는 1951년 하리잔이라는 불가촉천민들로부터 구걸하지 않고 스스로 경작해서 살 수 있는 작은 땅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듣고 신의 소명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평생을 인도 전역을 돌며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부자들에게 호소했다. “가난하고 병든 나그네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신을 맞이하자. 당신네 자녀가 다섯이라면 여섯째 자녀가 가난한 이의 모습으로 당신 가정을 찾은 신이라 여기고 재산의 1/6을 기부해 주십시오.” 놀랍게도 그의 이러한 호소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실제로 400 만 에이커, 영국의 스코틀랜드 넓이의 땅이 기증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비노바 바베가 주도한 토지헌납운동인 부단운동이다.

실체도 불분명한, 공익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소박하게 살던 이들의 터전을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빼앗곤 한다

삶의 터전이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그러기에 삶의 터전을 빼앗긴다는 것은 생명을 빼앗기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실은 너무나 참혹하다. 그 실체도 불분명한, 공익을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소박하게 살던 이들의 터전을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빼앗곤 한다. 다섯 분의 세입자와 한 분의 경찰특공대원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의 경험은 무자비하고 부도덕한 정부의 행태가 이 시대 한국사회에서 용인될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게 되었다. 그 결과 쌍용차 사태가 태연하게 벌어지고, 무수한 노동자, 농민들이 성실한 삶을 이어오던 삶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잃게 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4년 동안 이어져온 4대강 죽이기 사업도 마찬가지다. 개발사업을 통한 토건족들의 이익창출을 위해 얼마나 많은 농민들이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고통스러운 삶으로 내몰렸는지 헤아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4대강 사업의 최후의 저항지요, 유기농업의 성지라 할 수 있는 두물머리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7월 18일까지 자진철거하지 않으면 강제철거를 위한 행정대집행을 할 것이고, 그에 따른 비용 3억 원이라는 큰 돈을 농민들이 연대해서 납부해야 된다는 계고장은 우리 민족의 자주권을 빼앗기 위해 총칼을 들이대고 을사늑약을 강요하던 일본 제국주의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스스로 생명을 잉태하고 키우던 우리 강이 스스로의 자정 능력과 생명력을 잃었다고 왜곡하며 무분별하게 강을 파헤치고 댐을 쌓아 물을 썩게 하면서 생태계의 혼란을 가져오고, 거기에 수십 년 동안 강에 기대어 소박하게 살아왔던 농민들을 하루아침에 강을 오염시키는 주체로 내몬 4대강 사업은 100년 전 우리 국민의 삶의 터전을 빼앗은 일본 제국주의의 그것과 너무나 닮아 있다.

광복절에 들려온 빛의 소식

그러하기에 올해 광복절은 이전과 다르게 여러 의미로 내게 다가온다. 빛을 되찾았다는 의미를 가진 광복, 빼앗겼던 주권을 되찾은 날이라는 의미의 광복절에 즈음해서 작은 희망을 주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강제철거를 위한 두물머리 행정대집행이 철회되고, 두물머리에 생태공원을 조성하기로 한 중재안에 정부와 농민이 합의했다는 소식이 찾아왔다.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님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호주의 세레스 생태공원과 영국의 유기농 라이턴 정원을 모델로 하는 생태체험장으로의 두물머리 개발로 방향이 선회되었다는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안도와 희망을 주는 소식이었다. 마치 잃어버렸던 권리를 되찾은 광복이 두물머리에서도 일어난 듯 하였다. 있던 그대로의 모습대로 유기농지를 지켜내지 못하고, 4대강 사업을 막아내지 못하였다는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방적이고 무자비한 죽음의 개발이 아닌 생명을 존중하는 상생의 장으로 두물머리를 꾸며나갈 길이 생겼다.

그저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은 선하신 하느님의 자비와 정의에 대한 믿음 뿐이었다

2010년 재의 수요일에 시작되었던 두물머리 생명평화미사를 봉헌해온지 910일이 넘었다. 처음 자가용을 끌고 두물머리 미사터를 찾을 때 이미 지나친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몇 번이나 차를 멈추어야만 했다. 의심스러워도 끝까지 들어오라는 선배신부님의 말을 듣고 하우스 사이의 거친 비포장길을 따라 찾아간 강변 땅의 끝자락이 바로 두물머리였다.

모든 것이 불분명하고 의심스러웠던 시간들이었다. 생명의 강을 지키겠노라는,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보전하겠노라는 의지가 지켜질 수는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두물머리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남은 여성농민 이주향과 그의 배필 서규섭을 비롯해 김병인, 임인환, 최요왕, 이 다섯 분의 소박한 바람이 지켜질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무자비한 권력자들에게 맞설 또 다른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들이 자신들의 돈인 양 마구 쏟아 붓는 물량공세에 저항할 최소한의 비용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은 선하신 하느님의 자비와 정의에 대한 믿음 뿐 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하였다. 기댈 곳 없는 가난한 이의 울부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자비와 정의에 의탁하며 미사를 봉헌하였다. 빵을 떼어주실 때에야 비로소 주님을 알아볼 수 있었다는 사도행전의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하느님 체험은 농민들의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우리 것을 나누기 시작하면서 우리 것이 되었다.

개발보다 농사! 발전 말고 밭전! 레저보다 삶!

많은 이들이 미사에 참여하여 기도하면서, 생전 농사 한번 지어본 적이 없으면서도 “개발보다 농사”, “발전 말고 밭전”, “레저보다 삶”을 외치며 두물머리 농민들과 삶을 나누며 삶의 터전을 지켜내려 노력하였다.

우리는 빼앗긴 들을 이미 찾았다고 착각하였다. 봄이 이미 왔노라고 착각하였다. 국민이 주인되는 민주주의가 이미 왔다고 착각하였다. 그러나 그저 착각이었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 파동으로 인한 촛불 집회와 용산 참사로 인해 우리는 여전히 일본 제국주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악한 세력에 의해 삶을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여전히 우리는 빛을 잃은 어둠 속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참혹한 현실 속에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용산의 교훈을 넘어 두물머리에서 찾아가고 있다. 인간의 삶의 터전의 중요성을 넘어 이 세계를 지탱하는 뭇 생명의 터전인 창조세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강해졌다는 것이 그 중 한가지이다. 거기에 무분별하고 무자비한 악한 세력들의 핍박에 당당하지만 평화롭게, 너무나 즐겁게 맞서는 젊고 건강한 친구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 젊은이들과 수많은 시민들이 보여준 관심과 애정은 독립한 나라에서 삶의 터전을 갈구하던 가난한 이들에게 착한 이웃이 되어 주었던 비노바 바베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두물머리는 이렇게 우리가 무엇을 빼앗겼었고, 어떻게 되찾아야 하는지 알게 해준 교육의 장이자, 삶의 터전이다.

‘내가’ 관심을 가질 때 생명의 가치들이 보호되고, 지켜지기 시작한다

이제 두물머리는 정부와 지자체, 농민과 가톨릭이 추천한 이들의 협의체를 통해 보다 구체적이고 생명의 가치를 잘 드러낼 수 있는 터전으로 거듭날 것이다. 우리의 무관심이 용산과 쌍용의 아픔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두물머리에서의 경험을 통해 기억했으면 한다. ‘내가’ 관심을 가질 때 생명의 가치들이 보호되고, 지켜지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두물머리를 통해 기억했으면 한다. 두물머리에서 보았던 우리 시대의 아픔과 희망이 진정으로 참된 빛을 다시금 우리 사회에 돌려주는 광복이 되기를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