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 인권] 시혜에서 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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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인권] 시혜에서 권리로.
  • 남병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교육실장)
  • 승인 2012.09.28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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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등급제를 폐지하라!

201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장애인들이 또 다시 거리로 나섰다.

지난 8월 21일, 억수같은 비를 뚫고 전국 160여 개의 장애인단체와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은 1박2일 전국 집회를 열고, 경찰들의 봉쇄도 뚫고 열 시간이 넘게 투쟁을 해서 광화문역에 농성장을 마련하고 무기한 농성투쟁에 돌입했다. 장애인복지 관련한 의제들이 수없이 많은데도, 장애인들의 요구는 매우 선명하게 두 가지로 집중된다. 하나는 부양의무제 폐지, 또 하나는 장애등급제 폐지이다.

 부양의무제 폐지! 그리고 장애등급제 폐지!

한국의 복지, 특히 장애인복지는 부족하기 짝이 없는 복지의 양도 문제지만, 2열 종대 선착순으로 대상을 제한하는 근본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복지제도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수급자, 차상위계층 등의 가구소득기준의 저소득층 기준을 충족시켜야만 하고, 또 장애등급이 1급 또는 2급 등 장애등급기준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아무리 복지제도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도 어디 신청할 곳도 없는 구조다. 장애인들의 요구는 복지의 양을 확대하라는 것 뿐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장애인복지의 시스템을 완전히 갈아엎자는 것이다.

 선착순으로 장애인복지 대상을 제한하는 근본적 문제

정부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가 제한된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기준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이는 얼핏 일리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사실 광화문 농성장에서 선전을 하고 서명을 받다보면, 외국인들은 장애인들의 주장을 쉽게 이해하고 흔쾌히 투쟁을 지지하는 반면 오히려 한국 사람들, 특히 스스로를 장애인이라고 밝히는 시민들의 경우 부양의무제 폐지에는 동의를 하지만 장애등급제는 필요악이라고 말하는 이도 적지 않다.

장애등급제란 정부가 1988년 일본의 제도를 모델로 도입한 것으로, 장애인을 15가지 장애유형으로 구분하여 장애정도에 따라 1급에서 6급으로 등급을 구분하여 등록하고, 장애등급에 따라 각종 복지제도의 자격을 부여하거나 제한하는 제도이다. 지금은 일본에서도 장애등급제가 거의 기능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알려진 바로는 한국만이 유일하게 의료적인 기준으로 장애인의 몸에 등급을 매기고 장애등급을 이유로 복지를 제한하는 나라인 셈이다.

 사실상 한국만이 유일하게 장애인의 몸에 등급을 매기고 복지를 제한하는 나라

예산이 부족하니 서비스가 더 필요한 중증장애인에게 우선적으로 복지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는 말은 얼핏 그럴 듯해 보이지만, 엄밀하게는 예산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예산을 절감하기 위해서 혹은 복지를 예산에 맞추어 제한하기 위해서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1급 장애인이 아니면 거동이 아무리 불편해도 활동보조를 신청할 수 없고, 1급 또는 2급 장애인이 아니면 아무리 빈곤해도 장애인연금을 신청할 수도 없고 보행이 불편해도 장애인콜택시 이용도 못하고, 3급 장애인 이내에 들지 않으면 감면제도도 별게 없는 것이 한국에서 장애등급제가 기능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과연 1급 장애인만이 활동보조를 필요로 하고, 1급 또는 2급 장애인만이 장애인연금을 필요로 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예산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예산에 맞추어 복지를 제한하기 위한 것이다.

정부 통계로도 일상생활 대부분에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여 활동보조를 필요로 하는 중증장애인은 35만 명이 넘는데 1급 장애인으로 서비스를 제한하여 고작 5만명을 대상으로 한 활동지원제도가 운영되고 있고, 장애인 대부분이 경제활동의 기회조차 없어 중증장애인과 경증장애인의 가난한 상태는 큰 차이가 없음에도 1급 및 2급 장애인으로 장애인연금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 대부분이 경제활동의 기회조차 없어 중증장애인과 경증장애인의 가난한 상태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1급이 더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정부는 주장하면서, 한편으로는 장애등급 기준을 더욱 엄격하게 만들고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 2010년 수만 명의 장애인이 등급이 하락되고, 졸지에 복지제도가 중단된 중증장애인들이 속출했던 것이다. 사실 정부는 언제건 등급기준과 등급심사방식을 바꾸어 1급 장애인 수를 원하는 규모로 줄이고 그에 따라 예산을 더 줄일 수 있다. 장애등급제는 결국 예산논리에 의한 시혜적 복지시스템을 지탱하는 차별의 장벽인 것이다. 장애인의 보편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장애등급제가 폐지되어야 한다.

장애등급제가 폐지되어야 하는 또 한가지 중대한 이유는 장애인 개인의 환경과 욕구가 무시된 획일적 복지체계를 폐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학적으로 비슷한 장애정도인 사람이라도 환경에 따라 욕구에 따라 필요한 서비스는 매우 다르다. 의학적 기준에 의한 등급과 등급에 의한 획일적 복지구조는 행정의 논리로 인권의 기준을 은폐해 온 것이다.

 ‘기능이 손상된 몇 점짜리 몸을 가진 존재’라는 차별의 등급을 거부하고 동등한 인격과 존엄을 지닌 존재로서의 권리를 요구한다.

투쟁하는 장애인들의 문제제기는 보다 근본적이다. 장애등급이라는 것 자체가 차별의 낙인이기 때문이다.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지금의 시대에, 장애등급제의 존재는 장애라는 것을 의료적인 ‘기능손상’으로 인식하는 차별의 논리를 재생산한다.

장애는 사회적 관계로 이해되어야 하며 장애인은 몇 점짜리 몸을 가진 존재로서가 아니라 어떠어떠한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동등한 권리를 가진 인격체로서 존중받아야 함에도, 장애등급제는 이러한 인식의 전환 자체를 가로막는 것이다.

장애등급제 폐지투쟁은, 당장에 예산논리로 복지를 잘라내는 공포정치에 대한 저항이며, 의료적 기준의 획일적 복지시스템을 거부하고 개인의 환경과 욕구에 따른 개인별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것이며, 아울러 장애인들에게 새겨진 ‘기능이 손상된 몇 점짜리 몸을 가진 존재’라는 차별의 낙인을 거부하고, 마찬가지로 ‘불쌍한 장애인을 위해’ 이런 저런 것들을 해주겠다는 오만한 복지공약 따위를 거부하고, 동등한 인격과 존엄을 지닌 존재로서 당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다. 지금도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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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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