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듣고픈 이야기, 당신의 하루는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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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듣고픈 이야기, 당신의 하루는 안녕하십니까?
  • 훈창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 승인 2013.05.31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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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이란 웹툰을 아시나요? 저는 요즘 그 웹툰에 푹 빠졌습니다. 일반 회사를 다니지 않는, 심지어 회사라는 곳에 한 번도 다녀보지 않았지만 왠지 공감가는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사람이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아 화요일과 금요일만 되면 인터넷으로 미생 나왔나? 라며 찾아봅니다.

사람이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다는 느낌은 웹툰에서만 느끼는 것도 아닙니다. 활동을 하며 살고 있지만, 직장을 다니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도 그 이야기들이 디테일만 다를 뿐 큰 맥락과 줄기에서는 비슷합니다. 친구들과 제가 지방 4년제 대학을 같이 나와서인 건 아닙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전혀 다른 삶의 장소에서 살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도 비슷합니다. 먹고 살기 어렵다, 먹고 살려면 이건 참아야지, 내가 때려치우고 싶어도 때려치우면 뭐 먹고 살건대, 먹고 사는 이야기뿐만 아닙니다. 고향 내려가기 싫다. 집에 가면 결혼해라, 취업은 어떻게 되고 있냐, 누구는 어디 회사 들어갔다더라. 다들 각자 삶의 공간에서 살고 있지만 나누는 이야기는 별반 차이 없습니다.

모두 비슷한 이야기이지만 서로 다른 건 있습니다. 각자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어떤 환경 속에 살고 있느냐에 따라 대응하는 법은 다릅니다. 어떤 이야기는 자기가 피할 수도 있고(명절에 집에 가지 않는 다거나, 더러운 직장 상사 피해 다니기) 어떤 이야기는 회피할 수 없어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하기도 합니다.(뒷다마부터 연대의 힘을 만드는 것)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가 경험한 삶에서 자신들의 대응을 하나하나 만들어 갑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궁금해 하실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당신에게 나누려고 하는 건 일상이라는 시간 속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속 차별과 평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숙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의 말과 눈에 장애로 인해 예쁘지 않은 여성이라는 사회적 인식에 중고등학교때 많이 위축되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이 잘하는 것들을 만나가며 자신감을 찾아가고, 그렇게 자신도 남들처럼 평범하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숙이 취업을 하려 할 땐 자신의 장애로 인해 면접에서 몇 번 떨어지게 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장애, 여성이란 자신의 성별은 취업을 어렵게 합니다. 그 와중에 장애인고용촉진법이 눈에 들어오고 고민하게 됩니다. 장애칸에 표시를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이숙이 표시를 했는지 모릅니다. 다만 이숙은 그 과정에서 장애를 가졌다고 서류를 탈락하는 건 아닐지 끊임없이 고민했을 겁니다. (인권운동사랑방『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 6장 이숙의 이야기」)

이숙의 일상은 어땠을까요? 이숙은 하루 종일 서류를 보며 고민을 하진 않았을 겁니다. 물론 종종 계속 생각했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혼자 사는 집 정리도 해야 하고, 맛있는 걸 해먹으러 시장도 보러 갑니다. 자신이 꿈꾸는 작가가 되기 위해 습작도 계속 씁니다. 물론 그 와중에 또 다른 이야기들이 그려집니다. 집주인에게 문고리를 고쳐달라는 말을 해야 하는데, 세입자에다 다른 사람과 마주치는 게 쉽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저녁엔 친구들을 만나 2년제 대학을 나와 취업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이야기를 나눕니다. 병원에 가는 날에는 자신과 같은 장애로 인해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운 사람들을 보기도 합니다.

이숙의 일상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전 이숙의 일상을 보며 차별과 평등에 관한 이야기들이 보였습니다. 이숙에게 다가온 차별과 평등은 이숙이 장애인이란 하나의 정체성으로만 읽을 수 없습니다. 이숙이 장애를 갖고 있는 여성이기 때문에 겪게 되는 외모에 대한 고민, 청소년으로써 교사와의 관계에서 겪게 되는 일들, 2년제 대학을 나와 취업시장에서 겪게 되는 갈등은 이숙에 삶이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로만 읽을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삶은 하나의 정체성, 하나의 궤적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여러 가지의 정체성들이 얽혀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차별을 이야기 할 때 한 사람의 정체성이 아닌 그 사람의 맥락에서 바라보려 합니다. 맥락 속에서 한 사람과 차별이 만날 때 어떠한 모욕감을 느끼게 되고, 또 어떠한 일상을 사는지 보며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이숙의 이야기에서 주는 또 다른 고민이 있습니다. 그건 이숙과 차별의 만남이 꼭 극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차별의 무게가 아무리 무겁다 한들 이숙의 삶이 그것에 지배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맞닥뜨리는 차별에 이숙은 끊임없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버텨내고 피해가고 때론 관계를 만들어 가며 살아갑니다. 차별경험에 대해 세상은 어떤 큰 사건으로, 모든 피해를 감내하는 것처럼 보려 하지만, 우리네 삶의 차별이란 꼭 그렇지 않습니다. 때론 마주보지 않을 수 있으며, 그것이 차별이라 생각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건 차별경험이 꼭 큰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며 또한 그만큼 차별 경험이 일상속에 자주 있기 때문입니다.

차별을 금지하고, 평등을 조금 더 실현해보자는 차별금지법이 무슨 문제??

차별금지법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보고 싶습니다. 이숙의 이야기에서 보듯 일상속에서는 다양한 차별과 맞닥뜨립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들은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차별과 싸우기도 하고 회피하기도 합니다. 때론 차별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하고, 뭔가 이유가 있어서 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차별금지법은 일상에 있는 다양한 차별과 불평등을 정당한 이유가 아닌 차별이라고 이야기하는 법입니다. 어떤 사람이 무슨 정체성을 띄든, 그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우리는 한 사람으로써 존엄하고 동등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법입니다. 모두가 평등하다는 인식에서 사회에 있는 다양한 차별과 불평등의 날것들을 차별이다, 불평등이다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만드는 법입니다. 사건으로써의 차별이 아닌 삶의 맥락에 있는 차별들을 찾아내고, 그 속에서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법입니다.

지난 2013년 2월 민주통합당 김한길, 최원식의원이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이후 한판 난리가 났습니다. 보수기독교를 비롯한 반대세력에서는 차별금지법이 성소수자와 비혼모, 성범죄자를 양산하고 청소년이 정치적인 의견을 밝혀 나라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며 입법철회를 요구하였습니다. 그리고 4월 23일 김한길, 최원식의원은 반대세력의 반발에 법안을 추진할 수 없다며 이 법을 입법 철회하였습니다.

참 무서운 상황이었습니다. 반대세력의 주장은 그 사람이 성소수자이거나 비혼모, 성범죄자, 청소년이라면 우리사회에서 차별을 받아야 하고, 인간으로써 동등하지 않다는 이야기 였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고 있었습니다. 심판의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들이 배제되고 은폐된 소수자들을 심판대에 올리고 있었습니다. 평등의 가치가 무섭도록 공격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을 계속 극단으로 몰아세우고 있었습니다. 성소수자들이 성을 혼란스럽게 한다며 치료를 해야 한다 이야기 하고, 청소년 비혼모가 학교에 아이를 데려오면 어뜩하냐고 이야기 했습니다. 성에 기반을 둔 폭력이 만연한 사회의 근본 모순들은 해결하지 않고, 그 모순 속에서 자신들의 권력을 누리는 집단들이 범죄자라 해도 그 사람의 인권은 존중해야 한다는 가치들을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정말 성소수자들이 존재한다면 사회가 혼란스러워질까요? 비혼모가 학교에 아이를 데리고 가면 학교가 혼란스러워질까요? 그들이 말하는 혼란은 무엇일까요? 혹시 지금까지 존재를 은폐당하고, 사회에서 배제되어 숨기어져 온 사람들이 하나하나 가시화 되면서 자신들이 사회를 통제해온 분리와 배제의 모순들이 드러나는 것, 그것을 혼란이라고 말하는 건 아닐까요?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

위에서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 지금도 우리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만 지금의 차별구조에서 자신들을 은폐할 수밖에 없거나 사회에서 배제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배제하고 은폐시켜온 건 지금의 반대세력, 그들이 만들어온 사회구조입니다.

차별금지법은 바로 그러한 사람들을 가시화 시키는 법입니다. 누가 어떠한 이유로 우리사회에서 배제되고 있는지, 자신을 드러내면 사회에서 어떠한 대우를 받게 되는지 보여주는 법입니다. 그 속에서 등장하는 사람들을 통해 지금의 차별구조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법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분리하고 배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연한 차별과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론 회피하기도 도망치기도 합니다. 우리의 힘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차별과 마주보고 싸우고 싶지만 그렇지 못합니다. 차별금지법은 차별과 맞설 수 있는 힘을 만드는 것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차별금지법은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존엄해. 사람으로서 우린 모두 동등하고 평등해. 우리의 평등을 위해 차별과 맞서 싸우자. 내가 너의 손을 잡아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