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들린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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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들린 섬
  • 송강호 (개척자들)
  • 승인 2013.06.28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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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친구- 오키나와와 제주도

어둡고 음산하다. 축축한 물방울들이 뚝뚝 소리를 내며 이 곳 저곳에서 떨어진다. 손전등을 켜 둘러보면 검게 탄 동굴 벽을 타고 이 곳 저 곳으로 끈적거리는 석회수가 흐른다. 이 차갑고 고요한 어둠 속에서 나는 어디에선가 만났던 죽음과 살인의 귀신을 또 다시 만나는 것 같다. 어머니가 딸의 목을 베고 아들이 어머니의 가슴에 칼을 꽂는 미친 광기가 85명의 가족과 이웃들을 주검으로 몰아넣은 오키나와의 한 가마 속에서 제주의 다랑쉬 굴이나 동방 큰 넓궤 안에서 숨쉬고 있는 전쟁과 학살의 악령을 다시 만난다. 가는 곳 마다 희생자들의 비석들이 들어서 있고 흩어져 썩어가고 있는 그들의 잘리고 찢긴 몸뚱아리들에서 풍기는 악취가 진동하는 것 같다.

이 어두운 동굴 위에는 미군 기지들이 들어서 있고 매일 같이 검은 군용기들이 굉음을 내며 이 착륙을 하고 있다. 도시 한 복판에 자리를 잡은 후텐마 미군 비행장 앞에서는 매일 같이 오키나와 주민들이 미군기지 철수를 외치고 있지만 미군들로부터 일부 반환 받았다고 하는 곳에서는 아메리칸 빌리지가 세워져 스스로 그들이 혐오하는 미국의 도시 한구석을 흉내 내고 있다.

군대와 기지는 피에 굶주린 전쟁 귀신의 거처다. 이것은 살아있는 생물과도 같아서 악착같이 생존하고 번식한다. 우리는 이런 괴물과 싸우고 있다. 우리뿐 아니라 온 세상이 수천 년 동안 그렇게 싸워왔다.

비운의 친구- 오키나와와 제주도

오키나와 섬에서는제주도가 보인다. 아마도 오키나와 주민들은 제주의 모습에서 자신들의 섬을 볼 것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 주민들은 오키나와를 악마의 섬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곳에서 출격한 B-52와 같이 거대한 폭격기들이 베트콩뿐 아니라 무고한 시민들까지도 무차별 폭격했기 때문이다. 그 주역이었던 가데나 비행장에서는 제주 모슬포의 알뜨르 비행장이 보인다. 일본은 대동아 전쟁을 일으키면서 중국 난징과 상하이를 폭격할 비행단의 이착륙을 위해 알뜨르 비행장을 건설했다. 지금은 폐허 위에 십여 군데의 격납고들 만이 그 흔적만을 남기고 있지만 전쟁 당시에는 이 제주도가 이웃나라 중국의 시민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주고 원망을 심어주었었을까? 제주도나 오키나와나 모두 군국주의 일본에 땅을 빼앗겨 스스로도 희생당했을 뿐 아니라 이웃나라의 무고한 주민들을 학살하는 데도 비참하게 이용당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키나와와 제주도는 그 고난과 오욕의 세월을 함께 공감하고 이해하며 또 서로 위로해 줄 수 있는 소중한 친구들이다. 지금도 오키나와는 강고히 버티고 있는 미군기지들을 쫓아내기 위해서 투쟁하고 있고 제주 강정마을에서는 새롭게 지어지고 있는 거대한 해군기지 건설을 막아내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오늘날 두 섬의 주민들은 이 군대 마귀와 함께 싸워 나가야 하는 공동의 운명을 지고 최전선에 서있다.

 

▲ 미일전쟁 당시 일본군에 의해 일본인들의 강제사가 일어났던 현장 ⓒ 평화바람

 

비무장 평화의 섬들의 연대

나는 이번에 오키나와 한국 민중연대의 초대를 받아 오키나와를 방문하여 두어 차례의 강연을 하게 되었다. 내 강연 주제는 한 중 일이 서로 마주 대하고 있는 동북아시아 해양에 비무장 평화지대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제주와 오키나와와 타이완의 평화를 염원하는 시민들이 함께 힘을 모아 이 해상 삼각지대에서는 전쟁도 막고 군사훈련도 금지 시키며 군용기의 기착이나 군함의 기항, 무기의 운반도 금지시키자는 평화 구상을 발표했다. 오키나와 주민들도 미군 기지를 쫓아내기 위해서 오랜 동안 싸워왔었지만 오키나와 섬을 비무장 평화의 섬으로 만들자는 내 제안에 대해서는 새로운 이야기라고 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타이완과 제주를 연결하는 해상 삼각지대를 비무장 평화 지대로 만들자는 이야기는 더 생소한 구상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세 섬이 일제 시대에 경험했었던 암울하고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을 떠 올리며 연대와 협력의 가능성을 찾으려고 했다. 제주에는 1948년 군경에 의해 삼만 명 이상의 양민들이 학살당한 4.3 사건이 있었듯이 1947년 타이완에서도 이만 명 이상의 무고한 주민들이 희생당한 닮은 꼴의 2.28 대학살이 있었다. 또한 오키나와에서는 미 일 전쟁 중 일본군에 의한 비참한 강제사들이 벌어졌다. 일본 정부는 어두운 가마 속에서 가족이 가족을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이 처절한 죽음을 집단자살로 규정하며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지만 이 미증유의 집단자결은 군국주의 일본이 교육하고 훈련한 비극적인 학살이었기 때문에 이를 공권력에 의한 강제사라고 하는 것이다. 이 모두가 공통적으로 국가 공권력에 의해 국민이 학살 당한 사건들이었다.

군대 마귀의 추방(Exorcism)과 국가 시대로부터의 탈출구(Exit)

오키나와에서 나는 다시금 우리 시대가 넘지 못하는 높은 장벽을 바라보게 된다. 이 세상 누구도 피해 나갈 수 없는 국가라는 울타리와 모든 나라를 점령하고 있는 군대 마귀들이 우리 시대의 한계처럼 보인다. 나는 전쟁과 폭력의 귀신이 들린 모든 나라들로부터 귀신을 쫓아내는 일(Exorcism)이 곧 평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운동은 국가를 넘어선 새로운 형태의 세계 체제를 향해 탈출할 수 있는 비상구(Exit)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군대에 의해 안보와 평화를 보장 받으려는 이 세상의 모든 국가들의 희망은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사람이 총기를 휴대하라고 권하는 사회처럼 불안과 모순을 안고 있다. 비무장 평화의 섬은 이런 실현될 수 없는 거짓 희망으로 국민을 기만하는 국가의 통제와 규율로부터 독립된 자치정부를 세워야 한다. 이 섬들은 자신이 비무장 평화의 섬임을 명시한 자치 헌법과 자체적인 행정 입법 사법부를 둔 자치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 이는 다른 국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나는 제주와 오키나와와 타이완이 각각 한국, 일본, 중국에 속하면서도 이 국가들로부터 독립된 비무장 평화, 절대 자치, 영구 중립의 원칙을 자신들의 자치 헌법에 모두 명시하여 세 섬들이 국가를 초월하여 함께 반전 평화를 위한 연맹을 맺어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세계 제 2차 대전 이후로 태평양과 인도양 등지의 많은 섬들이 군사기지화 되었다. 그 과정에서 주민들은 쫓겨나거나 자신의 고향에서 뿌리가 뽑힌 채 이방인들이 되어버렸다. 섬은 고립되어 있고 주민들의 힘은 너무 약하다. 권력자들은 섬들의 이런 취약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군사 기지도 핵실험장이나 핵 폐기장도 섬에다 만들려 드는 것이다. 제주뿐 아니라, 오키나와, 하와이, 괌, 사이판, 하이난, 디에고 가르시아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섬들이 군사기지로 짓밟히고 있다.

군사주의의 망령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연약하고 고립된 섬들이 자신의 생존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지역적으로 국제적으로 연대하는 길 밖에 없다. 나는 제주, 오키나와, 타이완의 평화 연대는 이런 세계 평화의 섬 연대를 위한 시동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해마다 세계 여러 섬들의 주민 대표들이 다 함께 모여 자신들이 처한 위태로운 현실을 폭로하며 함께 연대하고 협력할 것을 호소하는 평화의 섬 총회를 상상해보자. 아름다운 해변에 천막들을 치고 오전에는 열띤 토론을 하고 오후에는 해양스포츠를 즐기며 저녁에는 다양한 춤과 노래로 축제를 하는 그런 총회를 꿈꾼다.

인위적인 국경으로 경계를 만들고 그 국경선에 군대를 배치하여 끊임 없이 전쟁을 일삼아 왔던 국가들과 지리적 특성상 명확한 자연해안으로 경계가 만들어져 있는 섬은 매우 다른 사회적 성격을 갖고 있다. 국가는 국민들에게 소속감과 국민의식을 주입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민족의식과 애국심을 세뇌시키려 들지만 섬 주민들은 오랜 세월 동안 자연스럽게 역사적, 문화적 동질성을 공유하면서 매우 확고한 자기 정체성을 갖고 안정된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왔다. 거지 없고 도둑 없고 대문 없는 삼무도(三無島)의 전통을 지켜왔던 제주도 만 보아도 한 섬이 갖고 있는 문화적 유산이 얼마나 소중하고 대단한 것인지 가늠할 수 있지 않은가? 평화로운 세상을 열어 나가기 위해 우리는 세계의 섬들이 지금까지 지켜왔던 정신과 가치들을 재발견하여 폭력적인 국가의 획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국가를 넘어선 새롭고도 다양한 지역 사회 공동체들을 실험해 나가야 할 역사적 시점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