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송전탑싸움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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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송전탑싸움의 진실
  • 고이지선 (녹색당 전국사무처)
  • 승인 2013.06.28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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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밀양이다!”

지난 5월 24일, 밀양으로 가는 긴급탈핵희망버스가 출발했다. 저녁 8시 서울을 출발해 밀양 송전탑 현장 마을에 도착하니 새벽 1시가 넘었다. 도대체 왜 우리는 이리도 초조하고 안타까웠는지, 버스에 탄 사람들도 뭔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린 듯 보였다. 가는 내내 버스엔 긴장감이 가득 찼다.

밀양 송전탑공사 재개는 예견된 것이었다. 이미 한전은 공공연하게 “더 이상 공사를 지체하면 신고리 핵발전소 3호기 가동에 차질을 빚게 된다”고 밝혀왔기 때문이다. 정부계획에 따라 올해 말부터 신고리 3호기가 가동되면 생산된 전기를 보내기 위해 765kv 초고압 송전망이 필요하기 때문에 밀양 구간 52개 송전탑건설을 더 늦출 수 없다는 얘기였다. 작년 여름에도 공사가 재개되었다가 국회중재로 멈춘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전은 1년 동안 현재 송전망의 용량을 증설한다거나 우회노선을 고민하지도 않은 채 전력대란이 있을 수 있다는 말만 반복하면서 공사를 강행했다. 이번에는 질서유지한다며 경찰력까지 동원했다.
지난 5월 23일, 변준연 한전 부사장(당시)은 기자간담회에서 “신고리원전을 모델로 삼아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을 했기 때문에 신고리 3호기 가동을 늦추면 지체보상금을 내야해서 밀양송전탑 공사가 시급하다. 밀양주민들은 천주교와 반핵단체에 세뇌되었다”는 말을 해 파장을 낳았다. 당시는 연일 밀양 공사현장의 충돌소식이 전해지고 있을 때였는데, 공사강행을 하면서도 주민들과 계속 대화를 하겠다는 한전의 속내가 드러나던 순간이었다. 진실은 오히려 반대다. 故 이치우 할아버지의 분신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주민들의 싸움은 삐뚤빼뚤한 글씨로 써 내려간 주민탄원서를 통해서, 송전탑 위로 올라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찾아간 할머니들의 웃음을 통해서 공명이 시작되었다. 처음 용역이 동원된 날, 손주뻘되는 용역이 내뱉는 욕설을 참아야했는데, 그들이 저녁에 철수하면서 손을 흔들며 “내일 또 봅시다”라는 말을 하는 걸 보고 도저히 이대로는 견딜 수 없었던 주민들. “조상에게 고향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는데, 송전탑이 들어올 줄 몰랐다”면서 얼마 전 제사상을 차리다 엉엉 울었다는 할머니. 욕설과 모욕, 폭력으로 내 평화로운 일상이 깨진다면, 누구든 그 분노를 느끼지 않겠는가.

욕설을 내뱉던 손주뻘의 용역들이 철수하면서 손을 흔들며 하던 말,  “내일 또 봅시다.”

5월 25일, 새벽 4시 반. 잠깐 눈을 붙인 탈핵희망버스 참가단은 마을을 출발해 공사현장으로 향했다. 공사현장이 15군데가 넘어 곳곳으로 흩어졌다. 그 중 한 곳인 산외면 골안마을. 이치우 할아버지가 살았던 보라마을과 이웃해 있는 곳이다. 공사현장은 산길을 꼬박 1시간이 넘게 걸어야 갈 수 있었다. 산 속 깊은 곳에 일단 송전탑을 건설하면 마을과 논밭에는 공사가 쉽기 때문에 주민들이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포기할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이곳부터 공사를 재개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주민들에게는 장애물이 되진 못한다. 주민들은 성실하게, 묵묵히 새벽 밥을 지어먹고 지팡이를 짚고 산을 올라, 포크레인 앞에 앉았다. 때로는 한전직원들에 끌려나오기도 하고, 어떻게든 공사는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에 웃통을 벗어 공사를 저지하기도 했다. 다행히 탈핵희망버스 일행이 밀양에 도착했던 그 날, 한전은 시민들의 눈을 의식해 하루 공사를 중단했다. 하지만 현장을 떠나면 한전이 혹시라도 공사를 하지 않겠냐면서 주민들은 공사장을 떠나지 못했다. 이미 지난 해 벌목이 끝나 그늘이라곤 없는 곳에 앉아있는 70, 80대 주민들. 전화도 잘 터지지 않는 산 속에서 마주친 그 장면은 현실이라고 믿기엔 어려웠다.

밀양구간은 어느 지역보다 송전탑이 마을, 학교, 논밭과 가깝다. 그래서 재산가치 하락, 건강권 피해가 당연히 클 수밖에 없다. 이미 765kv 송전탑이 들어선 충남 당진에 가서 주민들이 직접 피해사례를 눈으로 확인해 보니, 이건 더더욱 용납할 수 없는 계획이었다. 154kv 송전탑보다 18배나 많은 전기를 초고압으로 보내다 보니 전자파도 엄청날 수 밖에 없고, 높이도 140미터나 되어 주변경관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비가 오는 날에는 ‘끼익끼익’하는 소음이, 습도가 높은 날에는 불꽃이 튀는 게 보일 정도였다. 당진주민들은 “우리는 이럴 줄 몰랐다.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명절 때 자식들도 집에 오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전력수요의 절반을 차지하는 산업분야 전기요금이 싸기 때문에 철강공장에서는 용광로도 전기로 사용할 만큼 전기를 펑펑 쓰고 있다

한편, 오랜 싸움의 시간은 주민들을 송전탑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게 했다. 한전은 애초 수도권까지 연결시키려는 계획을 폐기하고, 지금은 영남권 전력수급을 위해 신고리 핵발전소에서 시작하는 이 765kv 송전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영남권 전력자급율은 150%를 넘는다. 영남권에서 쓰고도 남는 전기가 생산되는 이유는 고리핵발전단지가 영남지역에 있기 때문이다. 이 전기가 송전망을 타고 수도권까지 넘어온다. 송전탑이 필요한 것은 100km 멀리 떨어진 핵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핵발전소를 없애고 서울에서, 대도시에서 직접 전기를 생산한다면? 초고압 송전탑은 필요치 않다. 그래서 주민들은 신고리 핵발전소 주민설명회 자리에도 참석하고, 서울에서 열렸던 탈핵축제에도 참가한다. 핵 발전이 멈춘다면 밀양의 눈물도 멈출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서울 전력자급율은 불과 3% 도 안 된다. 밀양 주민들이 살기 위해선 우리가 절약해서 전력수요를 줄이는 것도 방법이지만, 자연에너지로, 다른 방식으로 에너지 자립이 가능하도록 에너지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나라 전력수요의 절반을 차지하는 산업부분에서는 전기요금이 싸기 때문에 철강공장에서는 용광로도 전기로 사용할 만큼 전기를 펑펑 쓰고 있다. 산업체계의 변화, 전기요금체계의 변화와 더불어 가정, 산업분야 할 것 없이 에너지생산, 소비체계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밀양의 눈물은 다른 지역에서 다시 반복될 것이다.

에너지 생산과 소비체계의 변화 없이는, 밀양의 눈물은 다른 곳에서 반복될 것이다

7월 초까지 국회중재에 따른 전문가협의체가 운영될 예정이다. 폭염 속 저항을 해야 했던 주민들에게 단비 같은 소식이었지만, 한전은 이것도 무시하고 가려는 속셈이다. 지난 6월 17일, 전문가협의체에 속한 765kv 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측 위원 3명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전이 자료제출 등을 성실하게 하지 않아 기존 노선 용량증설, 우회노선, 지중화 등 여러 대안 검토를 시작하지도 못했다고 밝혔다. 협의체 운영시한이 끝나면 한전은 공사를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 국회에서는 협의체 보고서를 두고 다시 진실공방이 벌어질 것이다. 우리가 밀양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 송전탑의 진실, 핵발전의 진실을 알리고, 한전의 거짓말과 회유가 더 이상 통하지 않게끔. 밀양주민들과, 그리고 우리의 품위있는 일상을 위해.


 

전문가협의체가 구성된 지 2주 만에 갑자기 국회에서 보상법을 통과시킨다는 말을 듣고 놀라 6월 21일 밀양주민 140여명이 상경하여 ‘송전탑 보상법’ 심의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법안은 9월까지 연기되었다.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한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