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주민들의 삶과 미래를 강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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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주민들의 삶과 미래를 강탈했다.
  • 밀양 765kV송전탑 인권침해조사단
  • 승인 2013.07.30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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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 인권단체가 공동조사하여 지난 7월 3일에 발표한 <밀양 765kV송전탑 인권침해조사보고서> 중 결론과 권고안입니다.

밀양 765kV 송전탑 사업이 진행되는 9년 동안 주민들은 투명인간이었다. 그들은 어느 누군가의 아버지이며, 남편이었던 한 명의 마을 주민을 분신자결로 잃었다. 70세는 젊다고 할 만큼 연로한 노인들이 가파른 산허리를 타고 오르며 다치면서 절규하였다. 자식뻘인 한전과 시공사 직원들, 토목 작업을 하는 인부들, 용역 직원들에게 조롱당하고 모욕당하면서도 자기 땅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하였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러한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심지어 밀양 주민들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생존의 문제를 님비현상으로 매도하는 사회적 분위기와도 싸워야 하였다. 정작 송전탑 건설의 실시계획과 절차를 승인한 것은 정부였으나 2007년부터 지금까지 세 개의 정부를 지나면서 진행된 사업기간 동안 정부는 뒷짐을 지고 구경만 하였다. 국회 역시 2013년 5월에야 긴급당정회의를 열어 마을에 추가 자금을 지원한다는 방침 외에는 제시하지 않았다. 정부와 국회는 공익이라는 명목 하에 개인들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에서 한전과 한 치의 차이도 없었다. 국회가 전문가 협의체를 구성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내실 있게 운영하도록 견인해야 하는 이유는 그래서 중요하다.

지난 6월 한전과 주민대책위원회가 40일 동안 전문가 협의체를 운영하기로 하면서 9년간 주민들이 요구해온 사업의 타당성 검토가 ‘이제야’ 도마 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렇기에 40일 논의기간을 넘어서 밀양 765kV 송전탑 사업에 대한 재검토가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논의 기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전문가협의체는 본격적인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 협의체가 논의하기로 한 △기존 전력노선의 용량증가 송전, △전력노선 우회, △지중화 등 대안 검토는 토론에 앞서 자료조차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 추천 전문가 협의체 전문위원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한전의 허위보고, 무성의한 회의준비, 핵심자료 제출과 답변 거부 사례를 설명하였다. 특히 밀양 송전탑 대안으로 제시되는 기존선로 증설, 우회노선 검토와 관련해 한전이 불가능한 것처럼 실제이용률과 달리 전력거래소 시뮬레이션 수치를 맞췄다는 의혹도 제기하였다.”는 사실을 폭로하였다. 7월 28일 진행된 전문가협의체 현장조사 역시 야당 추천 위원들은 주민들 만나는 일정을 늘리고 실질적인 현장조사를 실시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40일간의 전문가 협의체가 진정성 있는 논의 자리인가 의문이 드는 상황이다. 결국 실질적인 대안논의와 지금까지 벌어진 인권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전문가 협의체 이후라도 성의 있고 실체 있는 협상자리가 계속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밀양 765kV 송전탑 사업은 우리 사회의 전력수급체계에 대한 근본적 고민을 던져 주고 있다. 대량 소비주체인 도시의 편리를 위해 농촌거주민의 삶과 운명을 송두리째 박탈하는 전력수급체계 자체의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 원자력발전소 건립 등 환경을 파괴하는 방식의 전력공급 방식에 대해서도 다시금 논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전 세계적으로 조성되는 탈핵 반원전의 흐름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에너지 정책에 대한 고려가 시급하다. 이미 불량부품 사용 등으로 인한 원전사고로 국가와 지구의 미래를 위협하는 에너지 정책은 심각히 고려되어야 한다. 신고리 핵발전소 증설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고리핵발전소를 포함하여 총 10기의 핵발전소가 반경 20km이내에 위치하게 되어 부산·울산·동부경남 지역은 세계 최대의 핵 발전 밀집지역이 된다. 밀양 주민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과 한반도, 나아가 세계적 위기를 고려하는 위기 국면일 수 있다. 이를 고려한 에너지 정책의 방향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우리는 이번 보고서 작업을 통해 다양한 인권의 문제에 접근하였다. 그리고 아래의 권고사항을 통해 이번 사업기간내의 인권침해가 해결되기를 요청한다.

 

◆ 권고

한전과 정부가 밀양 송전탑 건설 사업을 법적 절차와 요건을 충족하게 추진해왔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우리 조사단은 주민과 이해관계자의 참여 및 의견 청취가 보장되는 실질적·내용적 절차에는 심각한 하자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다른 국책사업 갈등사례에서 확인되듯이 밀양 송전탑 건설 사업에 있어서도 실질적인 주민의견 수렴 미비, 정보의 미공개와 왜곡, 정부의 갈등 상황 방치가 갈등을 야기․심화․확대시키고 있으며, 마을 공동체는 붕괴 위기에까지 몰리고 있다.

이와 같이 밀양 송전탑 건설 사업은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절차적 하자 등으로 인해 전면 재검토되어야 하며, 정부 등 관계자들은 그 동안 강행되어 온 사업으로 인해 붕괴 위기로까지 몰리고 있는 마을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지원해야 한다. 또한 밀양 송전탑 건설 사업을 둘러싼 갈등은 대규모 국책사업이 진행될 때마다 지속적·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갈등의 또 다른 반복이기에 대규모 국책사업의 진행과 관련하여 처음부터 주민들과 이해관계자의 의사를 수용하여 분쟁을 예방하고 주민과 이해관계자의 기본권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야 한다.

이러한 과제들을 위하여 우리들은 구체적으로 아래와 같은 사항들을 권고한다.

 


 

 ◯ 밀양 송전탑 건설사업 추진 여부를 재검토하기 위해

(1) 현재 한국수력원자력 임직원, 부품 납품업체 및 부품 검증업체 임직원에 의한 원전 부품 납품 비리로 인하여 신고리 3, 4호기의 제어케이블, 수소제거기, 내진설계 관련 부품까지 그 성능과 안전성이 의심되고 있고, 이로 인해 상업운전 시점이 최소 4개월 내지 6개월까지 연기된 상황에서 정부와 한전은 40일 동안의 전문가협의체 논의기간을 넘어서 밀양 송전탑 건설사업에 대한 재검토가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는 기간 동안 관련 공사를 전면 중단해야 함

(2) 밀양 송전탑 건설사업에 대한 재검토를 위하여 정부는 한전으로 하여금 한전, 마을주민 그리고 양측이 선정하는 전문가들이 동수로 구성하는 협의체를 만들도록 하거나 혹은 이미 구성되어 있는 전문가협의체에 실질적 결정권한을 부여하고, 위 협의체가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의 타당성, 주민 재산권 피해, 주민 건강권 피해, 신고리 5, 6호기 증설의 적실성 등 사업 전반을 재검토하고 사업의 추진 여부, 추진 시 추진방법 등에 대해 결정하도록 하여야 함

(3) 국회는 위 협의체가 결론을 도출하기 전에는 공사 재개와 관련된 어떠한 법안의 의결이나 예산편성행위를 하지 않아야 함

 

 ◯ 마을 공동체의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1) 정부는 공권력의 투입과 남용을 중단하고 대화와 화해의 분위기를 조성해야 함

(2) 경찰은 사업현장에서 엄정하고 중립적인 법집행을 통해 마을주민들의 기본권을 보호하려 노력해야 함

(3) 정부, 한전 및 시공사들은 자신들에 의해 밀양 송전탑 건설사업과 관련하여 제기된 모든 민·형사 소송을 취하하고 사법처리 대상자들을 선처함으로써 화해와 관용의 계기를 마련하여야 함

(4) 정부와 한전은 밀양 송전탑 건설 사업으로 인해 심리적·정신적 피해를 받은 주민들을 위한 상담 및 치료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국회는 정부 대책과 예산 지원이 신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함

 

 ◯ 대규모 국책사업의 시행과 관련된 갈등을 예방하고, 주민과 이해관계자들의 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하여

(1) 국회는 대규모 국책사업 시행 시 발생되는 주민과의 갈등을 예방하고, 주민과 이해관계자들의 기본권을 충실히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입법화하여야 함

(2) 정부는 위와 같은 국회의 입법을 위하여 필요한 협조를 다하여야 하고, 입법이 마련되기 전에도 위와 같은 취지에 부합하게 국책사업을 시행하여야 함

 

 

-밀양 765kV송전탑 인권침해조사단-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공익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다산인권센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빈곤과 차별에 저항하는 인권운동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울산인권운동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지난 7월 3일에 열린 밀양 765kV송전탑 인권침해조사 보고회에서 밀양주민들이 주민 증언에 나섰다. (사진_ 가톨릭뉴스 지금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