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정치개입사건, 철저한 진실규명과 개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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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정치개입사건, 철저한 진실규명과 개혁이 필요하다
  •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천주교인권위원
  • 승인 2013.07.30 2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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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정치개입 사건은 2012년 12월 11일 대통령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국정원 직원의 댓글달기가 폭로되면서 시작되었다. 대선 사흘 전인 12월 17일에 경찰은 부랴부랴 ‘국민적 관심 사안’이라면서 “김씨 아이디와 닉네임 40개를 발견했지만 대선 관련 댓글 흔적은 없다”는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였으나, 이러한 수사결과가 얼마나 엉터리이며 조작된 것인지는 이미 검찰 수사에서 분명하게 드러난 바 있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국가정보원법 상 정치관여죄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고, 이 사건의 축소은폐 수사를 지시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게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여 불구속 기소하였다.

대학가의 시국선언이 잇따르고 있으며 주말마다 촛불집회가 열린다.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파괴, 헌법유린이라고 규탄의 목소리를 높이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한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검찰의 기소로 이 사건이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왜곡하려 시도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심각한 헌법파괴이다

국정원 사건의 핵심은 정치개입과 여론조작에 있다. 국정원은 지난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직원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하여 새누리당과 보수 정치세력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하여 은밀하고도 광범위하게 여론조작을 시도하였다. 이 사건을 심각한 헌법파괴로 규정지어야 하는 것은 대통령 직속의 정보기관이 대통령선거에 직접 개입하여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왜곡하려 시도했다는 점 때문이다. 과거에도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와 안전기획부가 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정치탄압과 인권침해를 일삼아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국정원이 중요한 선거 시기에 국민들의 정치적 여론의 장에 직접 개입하여 여론조작을 자행한 것으로 과거에 없던 초유의 사태이다. 몇몇 정치인에 대한 사찰이나 정치적 탄압을 시도했던 과거의 정치개입 행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번 사태는 과거 정보기관이 저지른 수많은 정치공작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어야 한다. 이번 사건은 국민주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도전이자 헌법유린 범죄이다.

국정원은 치밀한 범죄조직이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취임 초기부터 ‘젊은 층 우군화 전략’을 내세워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인 진보 진영의 시민들을 종북좌파로 낙인찍고, 2010년 경부터 ‘원장님 지시 강조 말씀’을 통해 종북세력 척결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이를 위해 국정원은 종래의 심리정보단을 2011년에 확대개편하여 심리정보국을 만들었다. 심리정보국은 마녀사냥식 종북프레임으로 무장하여 국민의 정치참여를 제압하고 왜곡하기 위한 프로젝트 실행조직이다.

지난 연말 국정원 직원의 댓글달기가 세상에 폭로되었을 때 국정원은 “대북심리전의 일환으로 정상적인 활동”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궁색한 변명이기도 하거니와, 이런 변명을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이 공식입장으로 내놓는 것을 보면 국정원의 인식이 얼마나 반민주적이고 위험한가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국민을 상대로 한 댓글달기는 국가정보원법에 규정된 직무범위에 속하지 않는다. 국정원법은 ‘보안정보의 수집, 작성, 배포’를 국정원의 직무로 규정하고 있다. 정상적인 대북심리전 활동이라는 국정원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국정원법에 규정된 직무범위를 벗어난 위법행위이다. 게다가 국정원이 직원을 동원하여 댓글달기로 대북심리전을 펼쳤다는 사이트는 ‘오늘의 유머’ 등 우리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접속하여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하는 공간이다. 결국 국정원은 우리 국민들을 상대로 하여 대북심리전을 펼쳤다는 이야기가 된다. 국민들을 심리조작의 대상, 더 나아가서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여 섬멸의 대상으로 여기는 공작은 민주주의를 원천 부정하는 것이기에 지극히 위험하다. 또한 국정원이 심리공작의 대상으로 삼은 국민은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4대강 사업 등 집권정치세력의 정책을 비판하는 시민의 글에 몰래 숨어 댓글을 다는 것이 ‘대북’심리전이라면 4대강 사업을 비판하는 시민을 종북세력으로 간주하는 태도가 숨어있다. 우리 사회의 진보 진영의 비판적인 목소리에 대해 무조건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여 매도하는 일을 국정원이 앞장서서 행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는, 지난 대통령선거 기간 동안에 국정원은 상당히 치밀한 계획 하에 움직였던 것으로 보인다. IP갈아타기, Smart Sn 등 VPN서비스를 통한 IP 세탁, 복수 아이디 활용 등의 수법을 교묘히 활용하였고, 대선을 앞두고 직원들이 집중적으로 회원으로 가입한 정황도 드러났다. 직원들 상호 간에도, 작전을 수행하듯이 철저한 역할 분담이 있었다고 한다. 주요 포스트 역할을 담당하는 일부 직원은 인터넷과 SNS에서 정치개입 글을 주도적으로 생산하는 역할을 하였고, 다른 직원들은 이를 집중적으로 퍼나르는(포스팅하거나 리트윗) 식으로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다.

뿐만 아니라, 박원순 제압문건, 반값등록금 관련 문건 등에서 드러난 것처럼, 인터넷 공간에서 국정원의 노골적인 정치개입은 이명박 정권에서 일상적인 업무였다. 국정원은 이명박 정권 및 수구정치세력의 주구가 되어 정권 안보를 위해 국민을 공작의 대상으로 여기고 국민들의 정당한 정치적 주장을 탄압하는 일에 몰두하였던 것이다.

이쯤 되면 국정원을 범죄조직이라 불러도 틀린 말이 아니다.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만을 기소하고 정치개입에 관여한 다른 직원들은 모두 불기소처분하였다. 이번 사건은 이명박 정권이 국가정보원을 국내정치 조작에 동원한 조직적인 헌법파괴범죄이며 전형적인 권력형범죄사건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원세훈 전 국정원장만 기소하는데 그친 것은 검찰과 현 정권의 정치적 타협이자 꼼수라고 볼 수밖에 없다. 시민들의 집회시위에 대하여 단순참가자까지 끝까지 추적하여 처벌하는 경찰과 검찰의 행태와 너무나도 상반된 모습이다. 국정원의 잘못된 상명하복문화를 그대로 용인하면서 직원들에게 면죄부를 함부로 주어서는 안 된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만 기소하는데 그친 것은 검찰과 현 정권의 정치적 타협이자 꼼수

무엇보다 ‘국정원의 정치개입 프로젝트’의 전모를 밝혀야 한다. 직원들이 어떻게 동원되었고 직원들은 어떤 역할 분담 하에 어떻게 정치개입의 역할을 수행하였는지 그 실체를 낱낱이 파헤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권력과 정보기관의 음모에 의하여 파괴된 민주주의를 회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국정조사에 작은 기대를 걸어본다.

국회는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실시하기로 하였지만, 진선미, 김현 의원의 국정조사특위 위원직 사퇴문제로 열흘 이상 허송세월을 보내더니만,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원본의 소재 문제로 또다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지켜보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답답해 죽을 지경이다. 8월 15일까지로 국정조사 계획을 잡아놓았는데 이제 20여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게다가 아직도 국정조사의 범위와 증인채택 등의 문제에서 여야 정당간의 이견이 커서 과연 국정조사가 제대로 실시될지 의문은 점점 커지고 있다. 만약 국정조사가 지지부진하여 진상규명에 제대로 다가서지 못한다면 특단의 조치로 ‘범국민 특검’이라도 실시해야 한다. 국민들은 국정원의 반헌법적인 정치공작의 실체를 분명하게 알 권리가 있으며, 또 그래야만 우리는 올바른 성찰과 청산에 나설 수 있다.

국정조사에 걸어보는 작은 기대. 만약 지지부진하다면 ‘범국민 특검’이라도 실시해야

진실규명에 이어 꼭 필요한 것은 국정원 개혁이다. 정보기관의 정치개입을 차단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적인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국정원의 정치개입이 과감할 수 있었던 것은 국정원이 국외정보 외에 국내보안정보의 수집권한과 공안사건의 수사권 등 과도한 권력을 보유하고 있는 한편으로 국정원의 권력에 대한 민주주의적 통제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국정원의 국내보안정보 수집권한은 정보기관의 본연의 임무를 넘어서서 국내정치에 관여하는 직접적인 근거이자 통로로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국정원은 ‘정보 및 보안업무의 기획조정’ 권한을 갖고 있어 보안정보의 취급에 있어서 다른 행정부처 위에 군림하면서, 국회의 통제는 거의 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으로 군림하고 있다.

진실규명에 이어 꼭 필요한 것은 국정원 개혁

외국에서는 이처럼 과다한 정보수집 및 수사권한이 하나의 기관에 집중되어 있으면서 국회 등의 민주적 통제를 받지 않는 정보기관은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다. 미국, 영국, 독일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정보기관은 수사권을 갖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국내보안정보와 국외정보를 수집∙처리하는 정보기관이 각기 독립된 기관으로 분리되어 있다. 정보기관의 과도한 권력집중이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권력남용을 낳고 그것은 결국 국민의 인권침해와 민주주의의 후퇴로 나타난다는 것을 역사적 경험을 통해 터득한 때문이다. 2차 대전 후 서독이 동서독의 냉전 와중에서도 위와 같은 정보기관의 권력분산과 견제를 중요한 개혁과제로 실천하였음은 우리에게 좋은 참고가 된다. 우리에게 시급한 국정원 개혁은 국정원의 수사권을 폐지하고 국외정보와 대북정보를 전담하는 조직으로 개편하면서 국정원의 업무에 대한 국회의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유래없는 헌법유린 범죄의 작은 일부분이 드러났다. 아직도 할 일이 많다. 명확한 진상규명과 국정 개혁에까지 이르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고 힘겨울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힘을 모아야 한다. 세상을 더 민주적으로 바꾼 것은 언제나 국민의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