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의 평화가 우리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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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평화가 우리의 평화!”
  • 박호민 (쌍용차 해고노동자)
  • 승인 2013.08.2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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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 강정생명평화대행진 참가기

 

열 명의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2013 강정생명평화대행진'에 전 일정 참가하여 강정의 평화를 함께 외쳤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문양효숙 기자

 

지난 7월 말, ‘2013 강정 생명평화대행진’에 참가하기 위해서 필자를 포함한 쌍용차 해고노동자 열 명은 장흥 노력항에서 제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2시간 30분 정도 배를 타고 제주로 향하는 동안 해군기지건설 반대를 위해 싸우는 강동균 강정마을 회장님을 비롯한 마을 주민들, 문정현 신부님과 평화지킴이들의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무더위에 잘들 지내고 계시는지 건강도 걱정되고 몇 개월만에 마주 보는 얼굴들이라 설레기도 했다. 육지 노력항에서 출발한 배는 어느덧 제주 성산항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반겨준 것은 제주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었다. 무더위도 잠시 잊게 해주는 제주 바람의 마중을 받으며, 제주도에서만 맛 볼 수 있다는 보말국과 성게 미역국을 먹고 강정마을로 향했다.

강정마을 의례회관에서는 늦은 시간까지 다음 날 시작될 ‘2013 강정생명평화 대행진’의 전야제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회관에 들어서자 마을 주민들은 우리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얼굴을 알아봐 주시고 그동안의 안부를 물으며 부둥켜 안고 인사를 나누었다. 용산참사 유가족 분들도 아름다운 연대의 시작부터 함께 하기 위해 전야제에 와 계셨다. ‘2013 강정 생명평화 대행진’이 잘 진행되길 바라는 마음을 모아, 쌍용차지부는 그동안 부족한 시간을 쪼개어 연습하고 준비한 노래와 율동을 선 보였다. 비록 잘 하지는 못했지만 많은 분들이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었다. 늦은 시간동안 같이 웃고 그동안 못다한 얘기를 나누며, 우리가 멀리 떨어져 각자 다른 현장에서 싸우고 있는 것 같지만 마음은 함께 하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7월 29일, 출정식을 시작으로 ‘2013 강정생명평화 대행진’이 드디어 첫걸음을 내딛었다. 출정식이 열린 강정천 운동장은 대행진 참가자들로 가득차 있었다. 행진단은 동진, 서진으로 나뉘어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고 제주와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는 뜻을 제주도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5박 6일 간의 긴 여정을 시작하였다. 쌍용차 지부는 우리는 행진을 하면서 길에서 만나게 되는 시민들에게 강정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리고, 평화의 구호를 외쳤다.

아름다운 섬 제주는 한국 사람들 외에도 많은 외국인들, 특히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섬이다. 대행진에 참가한 분 중에 한 중국어 선생님은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중국어로 “하이 쮠 찌띠 뽠뚜이(해군기지 반대)”를 외치고 우리는 그 구호를 따라서 외쳤다. 행진 기간 동안 그 선생님은 ‘뽠뚜이 선생님’으로 통했다. 제주도는 가는 곳마다 조금씩 다른 다채로운 자연의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했다. 행진 코스 중에 있었던 안덕계곡은 한겨울에도 주변 숲이 독야청청하다고 한다. 조금 아쉽고 걱정됐던 점은 제주도에 한동안 가뭄이 계속되어서 계곡의 물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무더위와 싸워가며 20km 남짓 행진한 지 8시간 만에 숙소인 안덕체육관에 도착했다. 걷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발에는 물집이 잡혔다. 마지막 날까지 걷기 위해서 바늘로 3개의 물집을 터뜨리기도 했다. 오랜만에 한참씩 걸어서인지 숙소에 눕자마자 잠들곤 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니 비라도 내려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제주도는 섬이라 그런지 습도가 매우 높았다. 행진 중에 쉬어갔던 일과2리에서는 부녀회 분들께서 대행진단에 고생한다며 낑깡 주스와 미숫가루를 준비해 주셨다. 낑깡 주스는 독특하고 정말 맛있어서 몇 잔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낑깡 주스의 힘인지, 주스를 준비해주신 부녀회 분들의 마음 덕분인지 우리는 평화를 기원하는 구호를 힘차게 외치며 행진을 이어갔다.

좋은 숙소에서 묵는 날도 있었지만, 비교적 그렇지 못한 날도 있었다. 인원에 비해 샤워시설이 부족했던 곳에서는 너댓 명이 같이 바가지로 같이 씻으면서 불편하기도 했지만 한편 그날의 행진 이야기도 나누며 더 끈끈해지기도 했다. 서로 초면인 분들이 많았지만 강정의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 하나는 서로가 통했다. 함께 평화를 기원하는 사람들을 알아가는 것이 소중했다.

셋째날 행진 중에는 월령 진아영 할머니 삶터를 찾았다. 진아영 할머니는 제주도민들에게 여전히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는 4.3 항쟁 때 경찰이 쏜 총탄에 맞았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턱을 잃고 일생을 무명천을 두른 채 한 많은 삶을 보냈다. 심지어는 말도 하기 어려웠고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90세가 되던 2004년에 세상을 떠났다. 4.3의 고통이 여전히 진행 중인 제주에 국가가 제대로 사죄하고 상처를 어루만지지 않고, 제주해군기지 건설이라는 잘못된 국책사업으로 또 한번 4.3의 아픔이 재현되고 있었다.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강정생명평화대행진으로 휴가를 온 사람들은 물놀이 복장을 준비하고, 가지 못한 휴가를 협재 해수욕장에서 즐겼다. 물장난을 치고 기마전도 하며 친목을 다졌다. 8월 2일에는 천주교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님과 영화 ‘플래툰’ 등의 거장 올리버 스톤 감독이 대행진 서진팀에 합류하여 강정마을 평화지킴이를 자처해 주었다.

시내를 행진 하면서 강정마을 평화를 기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제주시민들을 만났다. 8월 3일에는 드디어 동진과 서진이 제주시내에서 만나 장관을 이루었다. 서로 일주일여만에 만나 안부를 묻고 반가운 웃음을 나누었다. 동진과 서진이 만나 하나가 된 대행진단이 탑동광장으로 향했다. 탑동광장에서 열린 강정마을 평화를 기원하는 문화제에서 모두가 뜨겁게 노래하고 함께 춤추며 평화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몸소 느끼고 나누었다. 풀 한포기, 돌멩이 하나라도 소중하게 대해야 한다고 함께 말하는 사람들과의 밤이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대행진 마지막날 8월 4일에는 강정마을로 돌아가 제주해군기지 공사장을 ‘인간띠’로 에워싸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뜨거운 여름, 손에 손을 맞잡고 나누었던 평화를 향한 염원이 하늘에, 전국에 닿아 강정에 평화가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