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과 나무를 베어버린 4대강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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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 나무를 베어버린 4대강사업
  • 황인철 마태오 (녹색연합 자연생태국 4대강현장 팀장)
  • 승인 2013.08.29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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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조로 가득해진 낙동강 경천대 상류의 모습 ⓒ낙동강복원부산시민운동본부

 

이명박 정부의 최대 업적(?)이었던 4대강사업은 정부가 바뀐 이후에도 여전히 사회적 이슈의 중심이 되고 있다. 2013년 8월 16일 정부는 국무조정실 산하의 4대강사업조사평가위원회(이하 조사평가위원회) 구성 방안을 확정했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국가정책조정회의는 찬성 반대 전문가를 제외한 “중립” 전문가만으로 조사평가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4대강사업을 검증하겠다던 현 정부의 선택은, 결국 시민사회의 참여를 배제한 채 그간의 기대에서 어긋난 경로를 밟기 시작한 것이다.

환경단체, 민간전문가 등이 참여한 시민사회진영은 지난 5월부터 국무조정실과 몇차례 검증과 관련한 논의를 진행한 바 있다. 시민사회의 제안은 다음과 같았다. 사업추진주체를 위원회에서 배제할 것, 추진과정을 포함한 4대강사업 전반에 대해 검증할 것, 위원회의 실질적인 조사권한을 보장할 것, 조사방식을 위원회에 일임할 것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현 정부는 올바른 검증을 위한 시민사회의 제안을 대부분 거부했다. 그리고 시민사회의 참여를 배제한 채 국무총리실은 소위 “중립” 전문가들만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출범시키기로 결정했다.

4대강 검증에 시민사회의 참여를 배제한 채 ‘기계적 중립성’만을 강조한 국무총리실

지난 1월과 이번 7월의 감사원 결과는 시민사회진영이 그동안 밝혀왔던 내용과 대부분 일치한다. 하지만 국무총리실은 시민사회진영을 그저 일부 “반대”측 집단으로 바라보는 선입견을 끝내 버리지 못했다. 국무총리실은 기계적 중립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소위 ‘중립인사’라 함은 지난 5년간 모든 국토가 파괴되는 와중에도 아무런 소신도 없이 침묵했던 전문가를 가리킨다.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추진한 운하사업을 침묵으로 동조한 것과 다름없다. 더군다나 중립전문가를 추천하는 기관에는 국토해양부, 토목학회 등이 포함되어 있다. 국토해양부는 4대강사업을 추진한 당사자이며, 토목학회의 차기회장은 심명필 전 4대강사업추진본부장이다. 조사평가위원회이 내세우는 “중립성”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국토가 파괴되는 와중에도 아무런 소신 없이 침묵했던 전문가들이 ‘중립 인사’인가

사실 국무총리실의 검증논의는 2013년 1월 감사원 감사결과 발표 이후 국토해양부 등이 반발하면서 두 입장을 절충하려는 과정에서 탄생한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4대강사업 전반에 대한 엄정한 검증으로 국민들의 의혹을 해소하고, 복원을 비롯한 근본적 대안을 모색하기보다, 적당한 타협과 절충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결국 국무총리실의 조사평가위원회는 그것이 검증하려는 4대강사업과 같은 운명에 처할 공산이 크다. 내세운 명분과 달리 아무런 효과와 실효성도 없을 것이라는 의미다.

부실설계, 부실공사, 담합비리에 대한 방조와 솜방망이 처벌

지난 1월과 7월 두 번에 걸쳐 발표된 감사원의 감사결과만으로도 4대강사업의 실체는 어느 정도 드러났다. 감사원은 22조원의 국가재정이 투여된 사업은 부실설계와 부실공사로 안전성이 의심되고, 국민의 식수원 수질이 악화되었음을 인정했다. 또한 각종 담합비리가 있었고, 국토해양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를 방조하거나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음도 밝혀졌다. 무엇보다도 4대강사업이 실제 대운하사업의 전단계로 추진되었다는 점을 감사원이 인정하였다. 마스터플랜 수립과정에서 “추후 운하 재추진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대운하와 유사하게 수심을 확보하고 대형 보를 설치하도록 대통령실이 압력을 넣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4대강사업은 변종 대운하였으며, 국민을 상대로 한 22조원짜리 거대한 사기극이었음을 국가기관인 감사원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국민을 상대로 한 22조원짜리 거대한 사기극이었음을 국가기관인 감사원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

지금 이 순간에도 시민의 식수원은 녹조로 썩어가고, 물고기와 강변의 나무들은 죽어가고 있다. 농민들은 보가 건설된 이후 침수피해를 해마다 입고 있고, 부실공사 콘크리트 보는 안전이 위협받는 지경이다. 습지를 파헤치고 만든 인공공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해마다 불필요한 예산이 거듭 낭비된다. 이 모든 것이 운하사기극이 가져온 폐해다. 하지만 이 사기극에 대해 책임지거나 사과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인간의 물질적 욕망과 경제적 필요에 따라 언제든 자연을 파헤치고 망가뜨릴 수 있다는 교만

4대강사업이 한국사회에 던지는 의미는 크다. 이 사업을 어떻게 평가하고 처리하는지는 잘못된 국책사업이 가져온 환경파괴와 불필요한 예산낭비 등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한국사회의 능력과 수준을 가리키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하지만 여기에 머물지는 않는다. 신앙인들에게 4대강사업은 이 시대의 영혼을 평가하는 시험대다. 4대강사업을 둘러싼 싸움은 자연과 생명을 바라보는 두가지 커다란 세계관의 충돌이다. 창조주에 의해 빚어진 생명으로서의 ‘강’과 물질적 욕망과 이윤의 실현 도구로서의 ‘운하’ 사이의 싸움이었다. 이 땅에서 ‘운하’란 강을, 자연을, 생명을, 경제적 필요와 인간의 물질적 욕망에 따라 언제든 파헤치고 망가뜨리고 이용할 수 있다는 교만을 상징한다.

"나는 지옥은 '무엇이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모든 독재자들이 왜 마지막에 착란(錯亂)으로 가는지 얼핏 알 것도 같았다. 아아, 선악과는 그래서 반드시 낙원에 있어야 했던 것이다. 만일 선악과가 없었다면 신성한 금기가 없었다면 그건 이미 지옥이리라, 그래서 그 금기가 범해진 이후 아담과 하와는 낙원에 살지 못했다. 하느님은 그들을 내쫓으신 게 아니었다. 그것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성스러운 금기가 없어진 그곳은 순식간에 낙원이 아니었을 테니까."

- 공지영 <높고 푸른 사다리> 중

건드려서는 안 될 금기를 건드린 후과가 지금 4대강에서 나타나고 있다. 하고 싶다고, 또 할 수 있다고 해서 항상 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할 수 있는 능력과 하고 싶은 욕망에도 불구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식별할 수 있는 감각이야말로 이 사회를 지상의 지옥으로 전락하지 않게 한다. 지금 이 땅 곳곳에서는 선악과를 따먹는 것을 넘어 선악과 나무를 통째로 베어내는 일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4대강사업의 검증은 이 시대의 영혼의 교만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어야 하며, 4대강의 복원은 인간이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될 생명에 대한 근원적 감각을 회복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실패한 운하사업이 남긴 이 과제를 푸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몫이다.

 

낙동강 강정고령보 인근 죽곡취수장 앞 ⓒ녹색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