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서 국가의 민낯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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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국가의 민낯을 보다
  • 송아람 (민변 상근변호사)
  • 승인 2015.05.29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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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주년 추모집회 인권침해감시단으로 활동하며

 

▲ 5월 1일 오후 서울 안국역 네거리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이 ‘세월호 시행령 폐기를 위한 1박2일 범국민 철야행동’을 벌이자, 경찰이 캡사이신을 넣은 물대포를 유가족과 시민들을 향해 난사했다. ⓒ유성호_오마이뉴스

 

안녕하세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상근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송아람입니다. 이번 세월호 참사 1주기 집회(4월 16일, 18일, 5월 1~2일)에서 인권침해감시단으로 활동하였습니다. 활동을 하면서 직접 경험한 경찰의 공권력남용의 실태와 여러 가지 느낀 점들을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세월호 참사 1주년 추모집회에서 나타난 공권력의 인권침해사례

가. 집회의 자유·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차벽설치

불통의 상징과도 같았던 2008년의 ‘명박산성’이 2015년의 ‘근혜차벽’으로 돌아왔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벽의 재질이 컨테이너에서 경찰버스로 바뀐 정도랄까요.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자신들의 행진을 가로막은 버스에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익숙한 불통의 징후를 발견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1주기 범국민대회’ 집회에서 경찰은 시청에서 광화문으로 통하는 모든 길목을 차단하여 광화문으로의 통행을 전면적으로 제한하였습니다.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 뿐 아니라 집회에 참여하지 않고 단순히 집회장소를 지나가던 시민들도 경찰의 차벽설치로 인하여 통행에 큰 지장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전면적 통행제지행위는 급박하고 명백하며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비로소 취할 수 있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판단입니다(헌법재판소 2009헌마406 결정 참조). 차벽은 위헌이라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시청-광화문 일대를 뒤덮었지만이 사태를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차벽 뒤에 숨어 항의를 외면하기 바빴습니다. 위 집회는 광화문에서 유가족들과 함께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평화적 집회였습니다. 참사를 추모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평화적 행진이 누군가에게는 ‘급박하고 명백하고 중대한 위험’이었을까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나. 법적 근거 없는 물대포·캡사이신의 남용

차벽뿐만이 아닙니다. 공권력에 맞섰던 시민들은 엄청난 수압의 물대포와 얼굴로 향하는 캡사이신 용액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상해를 입었습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4월 18일에 33200ℓ, 5월 1일에 40000ℓ의 물을 집회 참가자들에게 퍼부었습니다. 또한 최근 5차례 집회에서 캡사이신 최루액 719.7ℓ를 참가자들의 얼굴 등에 직접 쏘았습니다. 이는 지난해 전체 사용량(193.7ℓ)의 약 3.7배에 해당합니다. 또한 5월 1일 집회에서 경찰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최루액 ‘파바(PAVA)’는 “과량 노출시 사망을 초래할 수 있으며 피부접촉·눈의 접촉·섭취시 매우 유해하고 가려움증, 수포생성을 초래” 등의 영향을 인체에 미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루액에 노출된 수많은 시민들이 고통을 호소하며 물을 찾는 모습이 목격되었습니다.

경찰은 이러한 ‘최루액 물대포’에 대하여 「살수차 운용지침」등의 내부 규정을 준수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으나, 경찰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내부 지침이 법적 구속력을 갖는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엄청난 물과 캡사이신을 시민들에게 퍼부은 경찰은 ‘위해성 경찰장비를 필요·최소한도로 사용하여야 한다’는 「경찰관직무집행법」을 준수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아마 5월 1일 안국동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은 그 답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다. CCTV를 통한 경찰의 위법한 집회대응

서울지방경찰청장을 비롯한 주요 간부들은 4월 18일 집회에서 광화문 부근의 교통용 CCTV 9대의 외부송출을 9시간 동안 중단시키고, 서울지방경찰청장을 포함한 경찰 간부들이 모인 청사 8층 상황지휘센터에서 교통정보센터의 위 CCTV를 보며 현장 대응을 지시하였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 제25조 제5항에 따르면, 영상정보처리기기운영자는 영상정보처리기기의 설치 목적과 다른 목적으로 영상정보처리기기를 임의로 조작하거나 다른 곳을 비출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문제가 된 CCTV의 설치목적이 ‘교통정보의 수집·제공’임을 시인하는 전제에서 “CCTV 통해서 집회 시위를 지휘하고 관리하는 것이 교통 관리와 직결된다“고 하면서 설치 목적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경찰의 행위는 ‘교통정부의 수집’과는 무관한 ‘집회 시위대에 관한 정보’ 자체를 얻고 이를 기초로 지휘부가 집회상황을 감시하고 지휘하는 용도로 쓰였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집회에 나갈 때에는 참여한 사람들 모두가 높은 곳에 설치된 CCTV를 향하여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는 것은 어떨까요? CCTV를 보는 높으신 경찰 간부 분들도 우리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줄지는 모르겠지만요.

 

라. 법적 근거 없는 경찰의 인도 차단

4월 18일 오후, 시청광장에서의 집회를 마친 참석자들은 16일부터 광화문 앞에서 농성 중인 유가족을 만나기 위하여 행진을 시작하였습니다. 행진의 한 갈래는 차벽을 피하여 인도와 골목길을 통하여 광화문으로 이동하던 중 종각역 4번 출입구 앞에서 지하철 입구를 막고 있는 경찰력과 충돌하였습니다. 집회에 참가한 시민 뿐 아니라 지하철을 이용하려던 시민까지 경찰에 항의하며 경찰을 밀어내려고 하자, 경찰은 캡사이신을 분사하며 채증을 하였습니다. 약 30분 후, 시민들이 경찰력을 밀어내고 지하도를 이용하여 광화문으로 이동하기 위해 2번 출입구로 나가려 하자, 그곳도 이미 경찰력에 의하여 막혀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2번 출입구는 집회 참가자보다 일반 시민이 많아 보이는 상황이었으며, 시민들이 길을 터 줄 것을 계속 요구하였으나 경찰은 이를 무시하고 방패로 시민들을 밀어붙이며 출입구를 막았습니다. 좁은 지하철 계단에 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몰려있어 인명사고가 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지하철 역무원이 나와 경찰에 항의까지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경찰력을 물리지 않은 채 시민들과의 대치를 계속하였습니다.

위 일시·장소에서 인도로 평화롭게 이동 중이었던 시민의 통행을 방해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인도로 행진하는 집회·시위조차 불법이라고 주장하면서 길을 막고, 캡사이신을 뿌리고, 사진을 찍어왔습니다. 공권력은 법에 허용된 한도 내에서만 위임받은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하고 시민의 불편을 무시하는 경찰은 과연 그들을 먹여 살리는 국민 앞에 떳떳할 수 있을까요? 포대에 아기를 싸맨 채 예약한 돌잔치에 늦어 발을 동동 구르던 신혼부부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국민의 복리보다 상부의 지시를 더 중하게 여기는 경찰력의 모습은 퇴선하라는 지시에 따라 아이들을 두고 세월호를 빠져나가던 선원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마. 경찰력의 무분별한 현장채증

경찰청예규 제472호인 「채증활동규칙」 제2조 제1호는 "채증"이란 각종 집회·시위 및 치안현장에서 불법 또는 불법이 우려되는 상황을 촬영, 녹화 또는 녹음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지금까지 집회·시위 참가자들을 위축시키는 수단으로 채증을 활용하여 왔으며, 이는 이번 세월호 추모집회에서도 반복되었습니다.

경찰은 명백한 불법의 우려가 있는 상황뿐 아니라 정당한 항의나 시민의 기본권 행사에도 카메라를 들이대고 플래쉬를 터뜨렸습니다. 이러한 남용행위는 그 수가 너무 많아서 어떤 하나의 남용행위를 특정하여 이야기를 꺼낼 수조차 없을 정도입니다. 이는 명백한 공권력의 남용으로, 이러한 경찰의 채증남용에 대하여 2014년 헌법소원이 제기되었고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심리 중에 있습니다.

 

바. 경찰의 무분별한 과잉체포와 핸드폰 압수·수색

4월 11일부터 5월 1일까지의 세월호 참사 1주기 관련 집회에서 경찰에 연행된 시민의 수는 150명을 넘었습니다. 이 중 경찰은 9명에 대하여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특별히 범죄가 중한 피의자들만 기소했다며 자신감을 보였으나, 피의자의 과반수에 대한 영장신청이 기각되는 등, 경찰의 무분별한 과잉진압이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더구나 경찰은 현장에서 인권침해감시활동을 펼치던 민변의 권영국 변호사마저 체포하였으며 인권침해감시활동에 참여한 활동가들에게는 집시법·일반교통방해죄 위반 혐의로 소환장을 발부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인권침해감시단임을 명시하는 복장을 하고 인권침해감시활동을 한 경우 이를 일종의 위법성조각사유로 보아 관련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법원이 정당한 활동으로 인정한 인권침해감시단에 대한 경찰의 탄압이 도를 넘고 있습니다.

또한 경찰은 체포과정에서 현행범 체포되어 경찰서에 유치된 시민에게 영장 없이 핸드폰을 압수하거나, 영장에 기재된 압수범위를 넘어서 SNS를 확인하고, 전화번호부를 뒤지는 등 위법한 압수·수색을 실시하였습니다. 또한 연행된 시민들 중 많은 수가 핸드폰 자체를 압수당하고 수일이 지나도록 돌려받지 못하였습니다. 특히 이는 불가피한 경우에만 디지털 전기정보가 저장된 물건 자체에 대한 압수를 허용하는 대법원 결정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위법한 처분입니다. 수사기관은 작년에도 정진우 전 노동당 부대표의 카카오톡을 무단으로 훔쳐보아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수사기관에 의한 반복되는 정보인권침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현장에서의 대응

인권침해감시활동을 하면서 배움과 현실의 괴리가 적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시민들이 아무리 항의해도 공권력은 일체 대응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난감한 표정을 짓는 경우는 그나마 양반에 속하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섣불리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은 공권력에 적법하게 물리력을 사용할 수 있는 빌미를 줄 뿐만 아니라 우월한 물리력을 보유한 공권력에 가로막힐 확률이 높습니다. 이처럼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민들이 공권력의 위법한 공무집행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사진·동영상 촬영이라고 생각합니다. 위법한 공무집행을 꼼꼼하게 촬영하여 증거로 남긴 후, 사후에 법적으로 대응하는 것입니다. 물론, 촬영을 한다고 공권력이 바로 위법한 공무집행을 멈추지도 않을 것이고, 오히려 표적이 되어 물리력 행사의 대상이 될지도 모릅니다. 법률적으로 하나하나 위법사항을 지적하는 것이 위법한 공무집행을 근절시키는 느리지만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변호사 같은 이야기였나요?)

 

세월호 유가족은 국가의 적인가?

참사가 발생한지도 1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유가족들은 길바닥에서 잠을 청합니다. 4월 16일부터 5월 2일까지, 길거리에서 인권침해감시활동을 하면서 저는 '국가는 유가족을 적대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조위 활동을 방해하는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의 통과로 진실규명은 한층 더 어려워졌고 정부는 1주기에 맞춰 보상안을 발표하여 유가족들의 관심사가 보상의 규모에 있는 마냥 여론을 호도하였습니다. 유가족에게는 거리로 나가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참사를 애도하기 위한 평화적 집회는 불법·폭력집회로 매도되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국가는 국민들과 유가족간의 불화를 조장했으며, 유가족을 기망하였을 뿐 아니라 차마 뱉지 못할 말들로 모욕했습니다. 살아 있어도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 유가족은 국가의 적이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보듬어 주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제가 길거리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한 사실은 국가는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는 것입니다.

5월 2일 오후 3시, 유가족들은 경찰력에 막혀 결국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치실 법도 하지만 다시 묵묵히 기자회견을 준비하시는 유가족 분들을 보면서 제가 참가한 두 세 번의 집회가 진실규명을 위한 투쟁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구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아마도 긴 싸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국가를 상대로 하는 싸움은 특히 그렇습니다. 긴 싸움에는 그에 알맞은 준비가 필요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긴 싸움에 서로가 지치지 않도록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며 함께 나갈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모두가 각자의 방법으로 이 대열에 동참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나름의 방법으로 옆 사람의 손을 잡고, 진실규명을 향한 대열에 함께 동참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