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번에 무료법률상담 봉사활동 후기 작성을 맡게 된 46기 사법연수원생 김은경이라고 합니다. 43기부터 무료법률상담 일정이 여름에서 겨울로 바뀌었고 저희 기수의 일정 역시 12월 14일부터 12월 18일까지 5일간 진행되었습니다. 영하로 내려가는 추운날씨와 상담 이틀째에는 비가 오는 궂은 날씨인 터라 상담자분들이 많지 않아서 아쉬운 가운데 제가 얻어가는 것이 더 많았던 시간이었습니다.
무료법률상담을 시작하는 첫날은 사실 연수원생들에게 체력적으로 쉽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3주 가까이 내내 시험을 보고 난 후라 다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오면서 다들 자신이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상담에서 혹 실수는 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서로 격려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특히 법률상담을 하는 것은 처음이라 친구들에게서 여러 가지 조언을 들었는데 ‘천주교인권위원회까지 찾아오시는 분은 다른 곳에서 구제수단을 찾지 못해서 마지막으로 오시는 분이 많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설령 내담자분의 사연이 법적으로 구제수단을 찾기 어렵다 느껴질 지라도 끝까지 듣고 어떻게든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하자는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같이 봉사활동을 했던 다른 연수원생분들 역시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봉사활동 기간 내내 오전에는 오리엔테이션을 비롯하여 각종 인권교육을 받았는데, 저에게는 매번 더 열심히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더 열심히 해결방법을 찾도록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들었습니다.
매일 다른 주제로 이뤄졌던 인권교육은 사형제폐지와 관련된 영화인 ‘논픽션 다이어리’ 시청, 다소 생소한 주제일 수 있겠지만 일상에서는 범람하고 있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서선영 변호사님의 강의, 천주교인권위원회의 초창기 멤버로서 자신의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신 강래혁 변호사님의 강의, 그리고 ‘법치에 의한 민주주의의 위기, 그리고 저항’이라는 논문을 가지고 이루어진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이호중 교수님의 강의 등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빼곡한 사법연수원 일정 속에서 자칫 소홀히 하기 쉬운 주제들에 대해서 심도 있게 논의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이호중 교수님의 “특정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 어떤 사람의 행위에 대해 법이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지는 본인이 생각해야만 하는 문제”라고 해 주신 말씀은 아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오후동안 이루어진 무료법률상담은 추운 날씨와 비가 내리는 악조건 속에서 찾아오시는 분들은 적었지만 한편으로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혹은 직장에 휴가를 내고 찾아오시는 분들의 절실함이 그대로 피부로 느껴졌습니다.
특히 저희들의 자세한 상담 내용은 내담자 보호를 위해서 밝히기 어렵지만 자신에게 어떤 권리가 보장되어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시간이 지나 법적인 구제절차를 밟기 힘든 경우가 종종 있어 그 부분을 말씀드릴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했습니다. 구조적으로 억울한 일을 겪기 쉬운 사회적 계층일수록 법적인 안전망에 대한 교육과 안내가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도 실감했습니다. 저도 이제 사회의 일원이자 법조인이니 억울한 일들이 생기는 것에 대해서 일부 책임이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상담에 임했지만, 제가 아직 아는 것이 적어서 크게 도움을 드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주신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드립니다.
2011년 10월 9일 슬라보예 지젝은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오늘날 무엇이 가능할까? 언론을 보자. 한편으로는 기술과 섹슈얼리티에서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인다. 달을 여행할 수 있고 유전자공학으로 영생을 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와 경제 영역을 보라. 거의 모든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부자들의 세금을 약간 인상하고자 하면 그들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경쟁력을 잃을 것이란 이유로 말이다…(중략)…우리는 여기서 우선순위를 바로 정해야 한다.”
짧은 봉사활동 기간이었지만 정신없이 돌아가는 연수원 일정 속에서 어떤 법조인으로서 살아갈 것인지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게 됐던 시간이었습니다. 제 삶에서 우선순위를 무엇으로 놓을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이러한 기회를 마련해 주신 분들께도 전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