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광호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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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호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 승인 2016.05.09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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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파괴와 노동자 괴롭히기 끝내야

하얀 씨앗들이 눈처럼 거리 곳곳에 휘날린다. 며칠 황사로 뿌옇게 흐려진 하늘이 마침 개여서 그런지 씨앗들이 잘 보인다. 운 좋게 흙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은 씨앗들은 싹을 틔워 꽃이나 나무로 자라겠지……. 민중가요 민들레 홀씨가 되어가 떠오른다. 수많은 사람들이 권력의 독재와 자본기업의 탄압으로 죽어갔지, 그들이 다시 생명으로 태어나는 건 그들이 원했던 일들이 이루어지는 것이겠지. 서울시청광장에 차려진 금속노조 유성지회 한광호 열사의 시민분향소가 스친다. 그가 어떻게 죽어갔는지, 그의 꿈은 무엇이었는지…….

 

사진출처 : 유성범대위

 

죽음을 강요한 노동자 괴롭힘

317일 현대자동차에 엔진부품을 납품하는 유성기업에 다니는 40대 청년이 죽었다. 그는 며칠 동안 회사에 나오지 않았다. 왜냐면 310일 회사에서 그를 징계위원회 출석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벌써 징계만 세 번째다. 출석요구라지만 회사에는 해고대상이라는 소문을 관리자들은 하고 다녔다. 징계를 받으면 그나마 반 토막 난 임금도 더 줄어들 것이다. 게다가 회사에 나가면 그를 괴롭히는 관리자들과 사측노조로 간 사람들을 만나야 하니 출근하는 일이 지옥으로 들어가는 일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그는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동료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고향을 서성이다 그 근처에서 목을 맸다.

그는 20대에 형이 다니는 유성기업 영동공장에 입사해서 1999년과 2014년에 금속노조 유성지회 대의원을 지냈다. 2011518일 회사는 합의한 야간근무 폐지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아 노조는 파업을 했다. 파업 2시간 만에 회사는 불법적으로 공장을 폐쇄하고 용역깡패를 동원해 폭력을 행사했다. 한 달이 다된 614일 민주노조 조합원들은 복귀했지만 회사는 깡패가 아닌 관리자들이 일상적으로 괴롭혔다. 특히 복수노조가 허용된 20117월 회사는 기업노조를 만들어 민주노조 조합원들에게 탈퇴를 회유하고 협박했다. 민주노조 조합원들을 폭행하기도 하고 몰래카메라로 감시하고 풀 뽑기 같은 허드렛일을 모욕을 주고 고소고발도 상습적으로 했다. 화장실에 갔다 오면 그걸로 임금을 삭감했다. 모두 불법이지만 유성기업에서는 가능했다.

한광호 열사는 2013년 사측 관리자들에게 폭행을 당했지만 그들은 무혐의. 오히려 사측에서 11건의 고소를 당해 경찰과 검찰, 법원을 다녔다. 그렇게 소송에 휘말려 일을 못하게 되면 또 임금 삭감. 얼마나 억울했을까. 공장에서 사라진 인권을 보호하는 국가기관의 정의는 없었다. 얼마나 절망했을까.

이렇게 일상적으로 민주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들을 괴롭히니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이 좋을 리 없다. 2012년부터 충남노동인권센터에서 유성지회 조합원들의 정신건강을 검사했는데 우울증 고위험군이 43.3% 였다. 일반인의 6배가 넘는 심각한 상태였다. 그래서 2014년에는 집단심리상담도 했다. 하지만 노동자 괴롭히기가 여전한 현장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이 나아질리 없다. 피해자들의 치유는 인권침해 상태의 중단과 가해자의 처벌이라는 국제사회가 합의한 인권원칙은 유성지회 노동자들에게 예외였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의 죽음은 타살이라고 했다.

 

거리에서도 경찰의 괴롭힘을 당한 노동자들

423일 동료들은 한광호 열사가 당한 고통과 유성기업의 노조파괴, 노동자 괴롭히기를 알리기 위해 서울시청광장에 분향소를 차리려고 했다. 천막도 영정도 경찰에게 뺏겼다. 그래도 그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기 위해, 더 이상 한광호 열사처럼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조합원들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조합원들은 천막 없이 영정만 들고 거리에 있기로 했다. 하지만 거리노숙도 허용하지 않겠다며 경찰은 깔개 1, 비닐 한조각도 다 뺏어갔다. 심지어 침낭까지 가져갔다. 광장이기에 천막 없이 침낭을 덮고 자는 건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 설사 위법한 것일지라도 관할은 시청이지 경찰에게 권한은 없었지만 물리력으로 빼앗아갔다.

유성공대위에 함께 하고 있는 나도 그들과 함께 잤다. 3월이라 밤이면 너무 추운데 바닥에 깔판도 깔지 못하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경찰은 비닐을 뺏다가 영정을 밟고 깨뜨리기도 했다. 너무나 서럽고 비참했다. 살아있을 때도 인간으로서 존중을 받지 못했는데 죽어서도 한광호는 이렇게 모욕을 당하는구나 싶어 눈물이 났다. 노동자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비정한 나라. 그러나 여기서 멈추면 그의 죽음을 누가 애도한다 말인가 싶어 그의 동료들과 함께 쓰레기봉투를 덮고 잤다. 그렇게 12일을 보내고 13일째 되는 날 종교인의 힘으로 천막이 만들어졌다.

 

노조파괴를 사주한 현대자동차, 창조컨설팅

유성기업의 폭력적 노조파괴 행위는 2012년 국회 청문회까지 열 정도로 큰 사안이었다. 청문회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회사는 20114월 창조컨설팅과 협력적 노사관계 구축을 목표로 월 5000만원에 컨설팅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창조컨설팅에 연락할 목록에는 검찰만이 아니라 국정원, 청와대도 있었으니 그들이 불법을 저지르고도 도망갈 망을 많았을 것이다.

2014년 창조 컨설팅 그룹의 금융거래 내역(20101월부터 20128월까지의 3개 은행·11개 계좌의 거래 내역)이 공개되면서 노조파괴로 그들이 벌어들인 수익이 드러났다. 유성기업 131300, 상신브레이크 92800, 보쉬전장 84300, 만도 44500, 발레오만도 4400만원 등으로 23개 기업으로부터 창조컨설팅이 받은 돈은 824500만 원이다. 유성기업의 경우에는 계약금과 별도로 1억 원씩 다섯 번 지급했다. 용역·깡패를 활용해 직장 폐쇄한 518일과 기업노조 설립한 715일 이후 성공보수를 받은 것이다. 노조파괴는 헌법과 노조법을 위반한 불법이지만 대표 심종두는 아직까지 처벌받지 않았다.

그런데 유성기업이 창조컨설팅에 돈을 주며 노조파괴를 기획한 것은 현대자동차의 사주 때문이었다. 검찰은 압수수색으로 현대자동차 최재현 이사 대우가 2011920일 이메일을 통해 어용노조 조직화의 일시별 목표를 지시한 이메일을 확보했다. 하지만 검사 김태견은 기소하지 않았다. 201624일 금속노조가 정몽구를 비롯한 현대차 임직원 8, 유시영 등 유성기업 임직원 14, 심종두 등 창조컨설팅 임직원 4명에 대하여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에 노조법위반(부당노동행위)으로 고소했고 조사가 3월에 완료됐으나 이유 없이 이들을 기소하지 않고 있다.

 

사진출처 : 유성범대위

 

한광호의 꿈이 새싹을 틔울 수 있도록

그가 떠난 지 한 달이 넘었다. 414일 중앙지법원은 사측이 만든 노조(어용노조)는 자주성이 없어 노조설립이 무효라는 판결을 내리기는 했지만 회사는 여전히 조합원들을 징계하고 감시하고 있다. 회사는 한광호 열사의 죽음은 개인적 죽음일 뿐이라며 사과는 커녕 노조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협박을 하고 있다. 그리고 어용노조는 제3노조를 설립한다고 노조설립신고서를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에 접수했다. 아직까지 노동부는 신고서를 수리하지 않았지만 그동안 기업편만 들었던 노동부가 법대로 할지 미지수다.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돈 있고 권력 있는 자들이 인권을 유린할 때 할 수 있는 것은 머릿수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여론을 형성하는 일이다. 분향소에 조문할 수 있는 사람은 조문을 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페북이나 트위터에 유성기업 노조탄압 내용을 알리고 가해자인 유성기업 유시영과 현대자동차 정몽구, 최재현 이사를 처벌해야한다고 한마디씩 하면 된다. 가해자들을 고발하는 운동(www.chumo317.com)에 참여할 수도 있다. 마음만 있다면 아무리 바쁜 사람도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고통을 겪을 때 가장 힘든 건 혼자라고 느낄 때라고 한다. 고통이 절망으로 바뀌는 건 고립감이다. 유성지회 노동자들이 절망하지 않도록 조금씩 마음과 시간을 내주길 바란다. 그래야 한광호 열사가 남긴 꿈의 씨앗이 새싹을 틔울 수 있지 않을까. 살아남은 그의 동료들이 예전처럼 즐겁게 일도 하고 노조활동을 하면서 웃고 울며 어울리는 평범한 일상의 꿈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