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단지 평화롭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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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단지 평화롭게 살고 싶다
  • 이미현 (참여연대 평화국제팀장)
  • 승인 2016.09.13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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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배치 반대

 

▲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의 제안으로 ‘성주촛불’ 50일을 앞두고 8월 26일 전국 57개 지역에서 ‘사드반대 평화촛불’ 문화제가 열렸다. 사진은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 ⓒ사드저지 전국행동

 

 

국가안보라는 유령이 또 다시 한국을 배회하고 있다. 유난히도 뜨거웠던 올해 여름, 또 다른 이름의 강정을, 평택을 마주하는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성주가 강정이다. 김천이 평택이다.

 

지난 713일 국방부가 기습적으로 사드 한국 배치 지역을 발표했다. 성주군 남측에 위치한 성산포대가 바로 그곳이다. 환경영향평가, 주민간담회 한 번 없이 사드 배치 최적지로 낙점됐다. 즉각적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성주에는 안 된다로 시작했던 반대의 목소리가 한반도 어느 곳도 안 된다로 바뀐 것은 순식간이었다.

지역이기주의로 몰아세우려던 황교안 국무총리와 한민구 국방장관은 성주에 왔다 6시간 동안 버스 안에서 오도 가도 못하며 혼쭐이 났다. “국가의 안위가 어렵고 국민의 생명과 신체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국가로서는 이에 대한 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주민들을 설득하겠다며 황교안 국무총리가 한 말이었다. “국가 안위를 위해서 소수인 성주 사람들이 희생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또 다시 국가안보타령이다. 그러나 어느 누가 다수를 위해 소수의 평화롭게 살아갈 권리를 박탈해도 된다고 말하던가?

이 모습은 강정에 제주해군기지가 건설되던 과정과 꼭 닮았다. 정부는 국가안보를 위해서 제주의 남쪽 작은 마을 강정이 희생해야 한다고 떼썼다. 대한민국 전체를 위해 강정마을 하나만 희생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주민들 반대를 무릅쓰고 공사를 밀어붙이던 정부의 억지 주장과 엉성한 시뮬레이션을 비판하는 이들을 정부는 재판이나 벌금으로 몰아세웠다. 합당한 반대 의견을 제대로 검토하고 주민들의 기본적 권리를 보호하는 데에 의회 민주주의는 무력했고 국방부는 막무가내였다. 해군기지 건설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강정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은 직접 법률과 군사전략, 공학을 공부해야 했다. 대대로 마을에 살아오던 주민들은 찬반으로 나뉘었고 마을은 더 이상 공동체가 아닌 삭막한 공간이 되어 버렸다. 이보다 앞서 평택 대추리의 소수주민들도 비슷한 경험을 해야만 했다. ‘국가안보를 명목으로 한 미군기지 이전사업에 삶의 터전을 내놓아야 했다.

이번에는 성주가 그 소수가 되었다. 성주 주민들은 매일 밤 촛불집회를 열고 사드 배치 철회를 외치고 있다. 사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박사라도 될 듯 정부 주장의 문제점을 파헤쳤다. “한국에는 사드가 필요 없다. 이것은 미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집회에 참가한 주민은 동북아 정세와 미국의 군사전략을 논하며 사드 배치는 답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참외 농사를 지으며 터전을 지켜온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평화롭게 살 권리를 지키기 위해 미국의 동북아 군사전략을 공부하고 매일 밤 집회에까지 나서야 하는가? 왜 우리는 전쟁에 휩쓸리지 않을 권리, 평화롭게 살 권리, 전쟁준비와 위협 생성에 휩쓸리지 않을 권리를 누릴 수 없는가? ‘평화적 생존권은 인간 누구나 가지는 기본적인 권리이다.

 

국방부가 졌고 우리가 이겼다

 

831일은 성주 군민들이 촛불을 밝힌 지 50일째이다. 매일같이 천 명 이상의 주민들이 촛불을 밝혀 왔다. 그 불꽃은 이제 김천에까지 번지고 있다. 국방부는 최근 주민들을 분열시키고 촛불을 약화시키는 전략으로 3후보지안을 들고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 발언에 이어 국방부는 군민들이 제3의 부지를 제안하면 배치 지역을 재고하겠다며 군불 때기에 나섰다. 그러자 정부의 외압인지 철저한 계산인지 모를 이유로 성주 군수와 성주투쟁위 위원들이 갑자기 제3후보지를 검토해 달라며 국방부의 주문에 화답했다. 유력한 제3후보지로 성주 북부 초전면이 거론되자 이번에는 인근지역인 김천이 쑥대밭이 되었다.

아마도 정부는 성주 주민들이 찬반으로 갈라지고 성주와 김천이 갈등에 치달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호기나 지역이기주의에 등 돌린 다른 지역들이 성주와 김천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거두어들일 즈음 두 곳 중 아무 곳에나 사드를 배치하면 되겠다고 계산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부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

3후보지 제안이 결정된 날 성주 촛불 집회에서 한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국방부가 지고 우리 성주 군민들이 이긴 것이라고. 성주가 분열한 게 아니라 김천도 성주처럼 하면 된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라는 뜻이다. 이미 하루 전날 김천에서 열린 촛불 집회에서도 우리의 모범은 성주라는 발언이 나온 터였다. 하나의 촛불이 불씨를 나누면 반짝임은 두 개가 되고 세 개가 되고 어느새 수백, 수천의 촛불이 된다.

국방부는 성주 성산포대가 최적지가 아니라는 것을, 주민들이 제기하는 안전 문제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사드 배치 결정은 자신들의 정책 실패였다는 것을 드러냈을 뿐이다. 다시는 성주도, 김천도, 칠곡도, 구미도 어느 지역도 국방부의 말을 믿지 못할 것이다. 국방부가 지고 시민이 이겼다.

 

평화롭게 살아갈 권리

 

한국 천주교주교회의는 사드 성주 배치 결정이 있은 직후인 715일 반대 입장을 밝혔다. “평화는 결코 무기라는 힘의 균형으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상호 신뢰에 의해 확립된다는 요한 23세 성인의 가르침을 앞세워 사드 배치가 한반도와 동북아, 세계 평화에 위험을 초래할 것을 우려했다. 주교회의의 논평대로 사드는 신뢰의 수단이 아니다. 주변국은 반발하고 있고 국가 간 군비경쟁은 격화되고 있다. 한반도는 군사적 갈등에 더욱 취약한 곳이 되고 있다. 평화의 가능성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성주와 김천만 희생하면 북한이 핵 도발을 멈추고 우리 모두는 더 안전해진다고 할 수 있는가? 사드는 더 많은 무기의 시작일 뿐이다.

해방 71주년 기념일인 815일 성주에서는 908명이 삭발을 했다. 미 백악관의 답변을 듣겠다고 시작한 서명은 한 달도 안 돼 10만을 훌쩍 넘었다. 촛불은 전국 50개 도시 그 이상으로 번지고 있다. 몇 십 년만이라는 올해 무더위도 저리가라 할 만한 열기다. 성주와 김천 사람들의 결집은 그 자체로 평화롭게 살아갈 권리에 대한 강력한 호소다. 20132월 강정, 대추리, 애기봉 접경지역 주민들은 이 땅에서 평화롭게 살아갈 권리를 선언하고 이를 유엔 인권이사회 자문위원회에 전달했다. 이제는 성주와 김천 주민들이 외칠 차례다. 두 지역에 연대하는 전국 곳곳의 시민들 차례다. 더 이상 분단과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평화권 침해에 물러서지 않겠다고 선언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