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히고 죽어가는 사람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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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히고 죽어가는 사람은 누구인가
  • 최석환 (백남기대책위 사무국장)
  • 승인 2016.10.06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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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청문회’ 이후

 

 

백남기 선생님이 경찰의 살인적 물대포에 쓰러지신지 304일째가 되던 지난 912, 국회에서는 백남기 청문회가 열렸다. 명백한 국가폭력에 의해 심각한 뇌손상을 입고 304일 동안 서울대 병원 중환자실에서 한 국민이 생과 사의 갈림길을 헤매는 동안, 응당 그 책임을 져야 할 정부와 여당, 경찰 관계자 그 누구도 사과는 커녕 병문안 한 번 온 적이 없었다. 정부와 경찰이 일찌감치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했다면, 사법부가 엄정한 수사를 통해 책임자들을 처벌했다면, 이 사건이 국회까지 가서 청문회가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행정부와 사법부의 분명한 직무유기이다.

20151114. 서울 도심은 정부의 정책 실패를 비판하고 거꾸로 가는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모인 13만 명의 함성으로 가득찼다. 하지만 정부와 경찰은 차벽과 물대포로 국민들의 목소리를 철저히 차단했고 국민들의 정당한 집회시위의 자유를 도심 소요사태’, ‘불법폭력시위’, ‘폭동운운 하며 매도하기에 바빴다. 백남기 선생님은 그들이 주장하는 폭도도 아니었고 체제전복세력도 아니었다. 그가 들었던 구호는 쌀값을 보장하라, 맘편히 농사짓게 해달라는 극히 상식적인 요구였을 뿐이다. 그런데도 경찰은 자신들이 만든 살수차 운영규정도 어기면서 물대포를 직사했고 끝내 백남기 선생님은 우리곁에 돌아오지 못한 채 떠나가셔야 했다.

그 후 304일만에 청문회가 열리기까지 가족들과 대책위, 이 사건의 해결을 바라는 무수히 많은 국민들의 눈물과 고통, 분노가 있었다. 평범한 농민의 가족들은 병원을 지키며 아버지의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청와대 앞에서, 국회에서, 길거리에서 피눈물을 쏟아야 했다. 지역의 농민들은 매일같이 서울에 올라와 경찰청 앞에서 항의집회를 하고 지하철을 타고 피켓을 들고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 사건을 알리기 위한 활동을 했다. 검찰의 지지부진한 수사를 규탄하기 위한 탄원과 1인시위, 한겨울 칼바람 속에서 17일 간 보성에서 서울까지 이어졌던 도보순례, 국회 청문회를 요구하는 14만 명의 서명운동, 최악의 폭염 속 노숙단식농성, 야당 당사 점거농성까지. 300여 일 간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활동 끝에야 겨우 국회에서 청문회가 개최될 수 있었다.

 

청문회는 열렸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

 

정확히 304일만에 1114일 그날의 진압책임자들이 국회 증언대 앞에 섰다. 하지만 그들은 증언대 앞에 서서 증인선서를 마치고도 12시간 가까이 이어진 청문회에서 거짓말과 발뺌하는데 급급했다. 국회에 제출된 당시 살수차 운용보고서에는 매뉴얼대로 곡사, 직사 살수 5회를 했다고 버젓이 적어놓고 현장 동영상 등을 통해 야당의원들이 직사만 7회를 했다고 밝혀내자 보고서 작성상의 실수였다고 뻔뻔한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정확하게 백남기 선생님을 조준하여 쓰러뜨린 후에도, 구출하기 위해 달려든 시민들에게도,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는 중에도 따라다니며 직사하는 물대포 동영상을 반복해서 보고도 살수담당 경찰관들과 그들에게 살수를 명령한 책임자도 앵무새처럼 안전을 위해 상하좌우 반복해서 살수했다는 거짓말만 늘어놓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살수를 담당했던 경찰관은 실전배치 경험이 전무한 상태였고 안전교육 역시 부실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청문회를 통해 밝혀졌다. 당시 현장 지휘체계 또한 누가 살수를 명령했는지, 살수 중에는 어떻게 지휘체계가 이루어지는지, 부상자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를 하는지 등, 증언대 앞의 경찰들은 제대로 된 답을 한 명도 하지 못했다.

청문회에서 보여준 경찰의 뻔뻔함은 자체감찰보고서제출을 놓고 절정에 이르렀다. 사건 초반부터 경찰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가리기 위해 자체감찰을 실시했다고 밝혀왔다. 그 후 19대 국회와 국제앰네스티등의 인권단체에서 줄기차게 감찰보고서 공개를 요구했지만 경찰은 검찰수사중인 사안이라며 거부했고 20대 국회 들어서도 계속된 자료제출 요구에도 번번이 검찰 핑계를 댔다. 이번 청문회에서도 감찰보고서 제출을 종용하자 급기야 검찰수사로 감찰이 완료되지 않아 보고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말을 바꿨다. 야당의원들이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중간보고서라도 내라고 요구하자, 존재하지 않는다던 보고서를 검찰에는 제출하였고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내놓지 못하겠다고 계속 발뺌을 했다.

야당의원들이 외교, 국방 등 국가안보에 관한 사항을 제외하고는 반드시 국회의 요청에 따라 자료제출을 해야한다는 국회법을 들며 법집행 기관이 왜 법을 지키지 않느냐며 거세게 항의했지만 경찰은 막무가내로 자료제출을 거부하였다. 대놓고 국회법을 어기는 상황에서도 새누리당은 자당 소속 안행위원장까지 나서 경찰의 입장을 두둔하는 행태를 보였다.

도대체 이 청문회가 왜 열린 것인지 경찰과 새누리당만 모르는것인가? 경찰과 새누리당 의원들은 짜맞춘 것처럼 민중총궐기대회가 불법폭력시위였기 때문에 진압행위가 불가피했고 정당했다고 강변했다. 천번 만번 양보해서 그날의 집회가 저들의 말대로 불법폭력시위였다고 치자. 그런다고 해서 공권력이 사람을 죽일 권리를 갖는 것인가? 그리고 이미 그날의 집회로 한상균 위원장을 비롯한 1200여명의 시민들이 사법처리를 받았다. 저들이 말하는 시위대의 불법폭력은 이미 사법처리를 통해 그 책임을 다한 것이다. 하지만 경찰이 저지른 폭력에 대해선 왜 이렇게 관대한 것인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발생한 사안에 대해 정부와 여당은 너무나도 다른 잣대를 들이대어 병원에 누워있던 백남기 선생님과 가족들을 두 번 세 번 죽이는 짓을 저질렀다.

 

다시 한번, 민중총궐기

 

이제 1년이 다 되어간다. 지난 해 민중총궐기 대회는 11가지 분야의 요구안이 있었다. 1년이 다되어가는 지금 11가지 요구안 중에 제대로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일본군 위안부 문제, 사드배치 문제 등 요구안은 점점 더 늘어만 간다. 백남기 선생님을 비롯한 농민들의 가장 큰 요구였던 쌀값보장은 올해 추수철이 가까워질수록 가격보장은 커녕 작년보다 더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 조선산업 위기를 만든 자본과 권력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는데 수많은 노동자들만 해고의 벼랑 끝에 몰려있다. 구의역의 청년노동자와 같이 이제는 목숨을 걸고 일을 해야하는 비정규 노동자들, 거대자본 옥시와 싸우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2년이 넘도록 험난한 진상규명 활동을 벌여야 하는 세월호 가족들. 아직도 자본과 정권의 거대한 폭력에 신음하는 민중들이 있다. 그럼에도 저들은 폭력과 탄압으로 지난 1년 간 민중들의 목소리를 억누르려고만 했다. 가리려하면 하면 할수록, 억누르면 억누를 수록 민중들의 분노는 또 다시 터져나올 것이다.

청문회에서 보았던 것처럼 정부와 집권여당, 경찰들의 입장은 지난해 1114일 이후로 한치도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 정권의 무도함을 끝낼 수 있는 것은 민중들의 투쟁밖에 없다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올해 1112, 우리는 다시 한번 민중총궐기로 더 많이, 더 크게 모여 불의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

감옥에 갇힌 것은 한상균만이 아니고, 중환자실에서 긴 시간동안 사경을 헤맨 것은 백남기만이 아닌, 우리 모두이기 때문이다.

 

 

925일 백남기 농민께서 끝내 세상을 떠나시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그 이전에 쓰여졌습니다. 백남기 농민의 선종 이후 백남기대책위백남기투쟁본부로 전환하여 국가폭력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및 살인정권 규탄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