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무릅쓰고 집회 가자고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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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무릅쓰고 집회 가자고 할 수 있겠는가
  • 강은주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
  • 승인 2016.12.01 2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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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100만 촛불 속 성범죄는 사회의 퇴보를 보여준다, 평등한 집회문화 절실

100만 촛불 파도가 보여준 감동, 경찰 저지선도 자연스럽게 지우고 넓혀갔던 지난 12일 집회에 여러 기록 경신과 의미들은 계속해서 회자될만 했다. 집회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만큼 많은 의견과 평가도 오갔고, 한편 꼭 짚고가야 할 성추행과 같은 범죄사건들도 꽤 많이 일어났다.

집회 이후 SNS 등에는 집회현장에서의 성추행 피해를 토로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왔고, 집회 전후로 성범죄 가해를 예고하는 글들도 있었다. 또 성추행 피해자들의 문제제기를 가리켜 집회를 폄훼하고 분열시키려는 물타기라며 매도하려는 시도들도 있었다. 집회 결집에 분열이 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의 생각이 맞다고 가정한다면, 그 분열은 누가 불러온 것일까? 성추행 가해자들일까, 성추행 피해를 토로한 사람들일까.

 

'물타기로 분열시키지 말라'는 말은 성추행범들에게 해야 하는 말

 

필자는 인권활동가로 일해오면서 지난 1021일 경찰의 날에 있었던 경찰 규탄 기자회견에서 성명서를 공동으로 낭독하면서 민중총궐기에 집중할 것을 호소하기도 하였다. 이후로 박근혜 정권 퇴진 본부에서 실무자로, 흔히 말하는 집회 '주최 측'으로 함께하진 않았지만 민중총궐기 및 박근혜 퇴진 집회에 대한 참여를 요청해온 입장이었다.

그런 입장임에도 지난 집회의 기억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지하철 시청역 플랫폼에서부터 이미 인파로 가득 찬 진풍경을 보면서 감탄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인파 속에서 부대끼며 가는 것이 여성으로서는 계속 신경이 곤두서고 불쾌하고 피로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배낭을 메는 것이 이른바 '엉만튀'(엉덩이 만지고 튀기)를 당하지 않는 근본적인 예방책이 아님을, 피해를 당하는 여성이 조심할 일이 아니라 성추행 자체를 하지 말라고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배낭을 안 메고 온 것을 후회하게 됐다.

하지만 집회 이후에 올라온 글들을 보니 심지어 여학생의 배낭 안으로까지 손을 넣어 성추행을 저지른 일도 일어났다는 것을 보고 더 기가 찼다. 지하철 출구를 나와서 한 호텔 앞 확보되지 않은 좁은 통로에서는 많은 인파가 미어터지듯 통행하면서 밀착 정도가 더 심했다.

플러팅(성기를 갖다 대는) 같은 성추행인지 의도치 않은 신체접촉인지 헷갈리는 불쾌한 접촉도 많았다. 밀착된 공간일수록 자신의 손 정도는 충분히 더 조심할 수 있을 텐데 그러지 않는 일부 사람들은 한발짝 한발짝 걷는 것에 온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어줬다. 오랜만에 함께 집회에 나온 친구에게도 불쾌한 신체접촉이 일어나진 않을지 신경이 쓰였다.

 

▲ 차별과 혐오없는 평등집회를 바라는 손피켓 ⓒ한국여성단체연합 페이스북

 

정권퇴진 집회에서 성범죄. 참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이날 집회에서는 명백하게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들이 있었다. 또한 나와 같이 헷갈리는, 그러나 어쨌든 분명 원치 않는 신체접촉들을 겪은 사람들, 성적으로 불쾌하고 무례한 시선을 받는 일을 겪은 사람들도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집회 사회자가 무대 위에서 공지하는 성추행 등의 범죄에 대한 경고 한마디, 영상을 통한 자막 한 줄, 평등한 집회문화를 말하는 종이 포스터 또는 웹 포스터들은 결코 가볍지 않은 큰 힘이 돼준다.

많은 여성들이 겪는 현실은 참으로 형편없다. 정권퇴진을 이야기 하는 집회에서조차 성폭력을 겪는다는 것이 참 많은 것을 말해준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성범죄 저지르지 말라!"는 당연한 말조차 수시로 공지하고 여기저기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무척 필요하고 범죄예방문화에 유효하다.

평등한 집회를 위한 그 말들은 집회에 모인 수많은 선량한 시민들을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는 말이 아니다. 여전히 성범죄가 많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는 가해자나 피해자가 아니라고 해서 방조해서는 안 된다는 걸 상기시키는 말이다. 동시에 피해를 토로한 사람들과 또 표현조차 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돼주는 말이다.

하지만 지난 집회에서는 큰 무대에서 이와 같은 말을 들을 수 없었다. 어쩌면 너무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 일들이기 때문에 언급되지 않았을 수 있다. 집회 주최 측(민중총궐기투쟁본부 /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에서는 115일에 열렸던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범국민행동> 2부 대회 사회자가 진행 도중 박근혜를 지칭해 여성을 비하하는 욕설을 사용했던 것에 대해 1111일에 사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평등한 집회를 위한 캠페인을 온라인에서 해오며 평등한 집회문화를 위해 애써왔다.

하지만 주최 측의 노력이 무색하게 12일 집회에서는 성추행과 같은 범죄가 많이 일어났다. 앞으로의 집회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재발방지를 위해 더 많은 신경을 써야만 한다.

 

나도 가기 꺼려지는 자리라면 함께 가자고 제안할 수 있을까

 

정권의 퇴진과 부패 척결, 민생을 이야기 하는 집회에서 평등한 문화를 만들자고 말하는 것은 또 '해일 앞에 조개 줍기'라고 치부하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같은 구호를 외치러 나온 여성들이 성범죄에 당하지 않도록 하고, 성범죄자들을 솎아내고 그런 범죄문화가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집회가 아니라면 절반 이상을 포기하는 집회와 같다.

100만 시민을 넘어 그 이상의 시민들이 함께 하려면 평등한 집회여야만 한다. 창피한 말이지만 하다못해 적어도 범죄는 없는 집회여야 하지 않겠는가. 나도 가기 꺼려지는 자리에 누구에게 같이 가자고 제안할 수 있을까.

그런 마음에서 적지 않은 여성들은 지난 11일 집회에서의 일어난 성범죄 사건들에 실망하고 진저리쳤다. 그래서 '집회에 가지 않을 이유'들을 적은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심정적으로 십분 공감할 수밖에 없는 글이었다.

지난 12일 집회는 나에게도 역시 그랬다. 물론 경이로운 경험들도 있었다. 지난 주말 처음으로 세종로를 가로질러 행진할 수 있었고, 자정 즈음 경찰들이 세종로 차량 운행을 섣불리 시도했지만 수많은 시민들이 막아서자 다시 차량들을 돌려보내는 광경도 봤다.

많은 시민들이 모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들이었다. 하지만 그 경험들과 멋진 촛불의 장관과는 또 별개로 성범죄는 집회의 씁쓸한 그림자로 남겨졌다. 잘라 없애버리지 않고 그대로 둔다면 지구력이 요구되는 시국에 동력은 오히려 떨어질 것이다.

 

▲ '박근혜 하야' 100만 촛불 속 여성혐오. SNS에 올라온 집회장소에서의 성추행 피해담.

 

집회 중 성추행·여성혐오를 걱정한다는 것. 한국 사회의 퇴행을 체감한다

 

집회라는 것을 다닌지 15년이 넘었는데, 생각해보니 요즘처럼 집회 나가면서 성추행을 걱정하고 여성혐오를 걱정한 적이 없었다. 한국 사회의 삶과 문화 전반이 퇴행했음을 체감한다.

그 절망을 직접 몸으로 당하는 범죄에 노출되는 많은 여성에게, 이에 대한 해결 없이 집회에 나와서 함께 대의명분을 외치자고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마찬가지로 집회 나가는 일조차 꺼려지는 많은 여성들에게 호소드리고 싶다. 진보적 가치를 말하는 집회에서조차 성범죄가 일어나는 미친 세상인지라 우리는 더 모여서 싸우고 성범죄를 까부숴야되지 않겠냐고.

국정농단의 본질을 비판하는 것에서 비켜나 여성혐오의 말들로 말초적인 자극에 열 올리는 행태들을 없애가는 것까지, 너무 기본적인 것들을 새삼 바로잡아야 한다는 건 참으로 성가신 일이다. 하지만, 여성들이 더 많이 모여 떠들고 알려가야할 일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을 호소하고 싶다. 집회에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할 것은 성추행범이지, 성추행이 두려운 여성들이 집회에 못나와서는 안 된다. 집회를 분열시키지 말고 가만 있으라는 말은 문제를 제기하는 여성들에게 할 말이 아니라, 성추행범들에게 해야 하는 말이다.

 

평등한 집회 문화를 만들어가는 건...

 

한국 사회에서 21세기에 들어 100만 명이 모이고 그 이상이 함께 마음을 모은 집회는 처음이었다. 주최 측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도 모두가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래서 지난 12일 집회를 시작으로 평등한 집회문화를 함께 만들어갔으면 한다.

비록 시작은 많은 여성들이 실망하고 진저리 나는 기억으로 남았을지라도. 이후로는 누구도 거리낌 없이 광장에 나올 수 있는 집회 문화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범죄에 노출돼 피해자가 될 지 모른다는 두려움 없이 나올 수 있도록.

누구보다 집회 주최 측이 주지해야겠지만 주최 측만 애쓴다고 될 일이 아니다. 나는 길에서 성추행 피해자로서 가해자와 싸웠을 때, 3자가 내 편에 서서 함께 싸워줬던 것도 아니었지만 싸움을 말려준 것만으로도 고맙고 다행이라고 느꼈던 경험이 있다. 옆에서 일어나는 일에 방조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겨졌다.

당사자는 당사자로서 싸우고,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방관하지 않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당사자의 입장에서 함께 싸우는 일은 모두가 같이 해야 할 일이다. 같이 악다구니를 쓰며 싸우고 실제 범죄를 저지하는 일 말고도, 성범죄를 꿈도 꾸지 말라고 이야기 하는 것, 그런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것들 모두 변화를 불러올 바람이 된다.

한번 환기시키고 지나가는 바람 말고, 자꾸 수시로 여기저기에서 불어나는 크고 작은 바람이 필요하다. 듣기에 몇 번 귀찮고 불편한 말들로 끝나버릴 것이 아니라, 계속 이야기해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평등한 집회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은 어느 쪽이 선심쓰는 정도의 일이 아니라, 보다 큰 결집과 풍요한 의미의 집회를 위해 필사적으로 일궈나가야만 하는 일이다.

 

 

▲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의 <평등과 연대를 위한 집회시위 행동> 캠페인 웹자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