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내 여성 현존: 비선 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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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내 여성 현존: 비선 실세?
  • 최혜영 수녀 (성심수녀회, 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
  • 승인 2016.12.01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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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쇄신 연속기고④

 

유난히 청명하고 아름답던 가을날 아침, 사제로서 평생 정의롭게 살고자 노력하셨던 한 노사제의 장례미사에 참석했습니다. 제대 위에는 여러 분들의 주교님과 원로 사제들이 배석하셨고, 신자석 중앙에는 장백의를 갖춰 입으신 후배 신부님들이 가득 자리를 메우고 선배 신부님의 마지막 길을 기도로 배웅하였습니다. 아름다운 성가와 장엄한 의식, 주교님들의 감동어린 강론과 따듯한 고별사, 보통 사람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부러움을 살 만한 성대한 장례식이었기에 주위에서 너무 멋있다.”, “신부님들은 좋겠다.” 등의 속삭임이 들렸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왠지 외면적인 의례(?) 같은 느낌이 들어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미사가 끝나면서 상주이신 주교님께서 장례미사에 참석해 주신 손님들께 일일이 감사인사를 하시는데, 참석해 주신 동창 신부님들께는 세례명까지 붙여 길게 치하를 하시면서, 정작 신부님을 삼십년간 모셨고 마지막 십여 년 병수발 하느라 고생한 식복사 자매에 대한 감사의 말씀은 한 마디도 없었던 것입니다. 신부님의 속사정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그 자매를 잘 알고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제나 저제나 그녀의 이름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끝내 아무 언급이 없어 의아했던 것입니다. 실수로 빠뜨린 것이면 모르지만, 교회 관례상 식복사에 대한 언급을 피한 것이라면 미안하고 민망하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도 이처럼 헌신적으로 한 사제를 위해 희생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상을 줄 만한 일일 텐데 교회가 한 개인에게 너무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닐까 두고두고 마음이 쓰였습니다.

 

한 자리에 있었던 친구들이 후일담을 나누면서 학생회 지도하신 것은 이력서에 안 들어가는 건가?”, “신부님께는 우리가 중요한 사람들이었던 것 같은데 알고 보니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네.” “우리는 그러려니 하지만 식복사 자매에게는 너무 한 거 아니야? 그 자매 없었으면 누가 신부님을 그만큼 돌볼 수 있었겠어...” 등등 그야말로 뒷담화(?)를 나누며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그 때 누군가가 요즈음 세태에 빗대어 우리는 비선이야?” 하자 그렇지, 어디나 비선이 중요하다구. 비선이 실세잖아.”라고 해서 웃으며 일단락을 지었습니다.

 

저는 왠지 이천 년 가부장제 교회의 실상을 보는 것 같아 끝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다시금 성경 안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될 수 있었던 것은 도저히 이들을 빼고는 이야기가 진전되지 않는 시점에서 그나마 빙산의 일각처럼 남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였습니다. 역사는 이렇게 남아서 흘러가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성경 안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될 수 있었던 것은 도저히 이들을 빼고는 이야기가 진전되지 않는 시점에서 그나마 빙산의 일각처럼 남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였습니다.

 

지난 111일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스웨덴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여성사제 탄생이 영원히 불가능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그렇다고 답하여 많은 이들이 크게 실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무리 개방적이고 파격적인 행보를 하고 계시는 교황님이지만 전임자들이 문헌으로 못 박은 내용을 섣불리 거스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바오로 6세 교황의 1976여성 교역 사제직 불허 선언에 이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남성에게만 유보된 사제 서품에 관하여(1994.5.22.),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여성 서품을 시도하는 범죄에 관한 일반 교령(2007.12.19.)까지 발표된 바 있으니 말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흐름을 잘 간파해서인지 여성 사제 서품에 대한 태도1995한국 천주교 여성신자 실태 및 의식조사에서보다 2013여성신자들의 건강한 신양생활을 위한 설문조사에서 뒷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본당 내 의사결정 과정에 더 많은 여성이 참여하기를 바라면서도, 여성 사제나 여성 성체분배 같은 문제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이 더 많이 나타났고 교회 내 성차별 문제에도 별로 관심을 두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성들이 사회와 교회의 여러 분야에서 객체가 아니라 완전한 참여자 곧 주체임을 느낄 수 있도록, 이 주제를 연구하기 위한 새로운 기준과 방식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여성입니다. 교회라는 단어 앞에 여성 정관사가 붙습니다. 교회의 여성성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불어오는지, 2015년 교황청 문화평희회가 여성문화- 평등과 차이란 주제로 총회를 열고 총회에서 논의되었던 내용이 여성문화, 평등과 차이(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 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6)라는 책자로 출간되었습니다. 이 안에는 네 가지 의제, 양성평등과 성차 사이에서 균형 모색”, “상징적 코드로서 생육성’(generativity)”, “문화와 생물학 측면에서 바라본 여성의 몸”, “여성과 종교, 도피인가 아니면 교회 생활에 참여하는 새로운 형태인가?” 등에 대한 논의가 꽤 심도 있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이 총회 참석자들에게 여성들이 사회와 교회의 여러 분야에서 객체가 아니라 완전한 참여자 곧 주체임을 느낄 수 있도록, 이 주제를 연구하기 위한 새로운 기준과 방식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여성입니다. 교회라는 단어 앞에 여성 정관사가 붙습니다. 교회의 여성성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위의 책, 13)라고 말씀하십니다. 비록 교회의 전통적인 노선을 바꿀 수는 없어도 가톨릭 교회에서 여성이 지니는 의미를 강조하고 싶으시다는 원의는 분명하게 전달이 됩니다. 이어서 201682일 교황께서는 <여성 부제직 연구 위원회>를 개진하도록 촉구하고 위원 6명을 임명하셨습니다. 이 위원회가 어떤 연구 결과를 내놓을지 모르겠지만, “교회 내 여성 현존이 비선 실세로 존속할 것인지 투명하고 당당하게 자리 잡아 갈 것인지는 교회 모든 구성원의 관심과 노력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 최혜영 수녀 (성심수녀회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