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가 버려질 때 무엇이 살아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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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버려질 때 무엇이 살아남을까
  •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 승인 2016.12.01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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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화된 헌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갈 싸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8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정무직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하고 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8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정무직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열흘 후 발행 예정인 글을 청탁받고나니 난감했다. 요즘 같은 시국에 열흘이란 열 달처럼 느껴진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불이 붙은 10월 마지막 주부터 지나온 한 달의 시간도 그랬다. 하루의 시작과 끝 사이에 판세가 흔들렸다. 박근혜가 개헌 카드를 내민 날 저녁 JTBC가 최순실의 태블릿 피시를 공개하면서 어정쩡한 야당의 입장들은 무색해졌다. 추미애가 영수회담을 제의한 날 저녁에는 추미애 스스로 제의를 철회했다. 박근혜의 대국민 담화에 언론은 귀를 쫑긋 세웠지만 그날 저녁이면 어김없이 더욱 큰 분노가 패러디의 향연으로 펼쳐졌다.

 

열흘 후면 나는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되고 어떤 이야기가 하고 싶어질까? 잠시 헤아려보다가 결국 한두 달 전 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박근혜 당선 이후 사회에 각인된 죽음의 기억들로부터, 우리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이 정권을 깨야 한다는 절박함에 보탤 것도 덜어낼 것도 없다. 다만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지는 여전히 궁금하다. 막장 드라마보다 막장 같은 세계에 어떤 에피소드가 새겨질지 궁금한 것은 아니다. 박근혜가 대통령씩이나 할 수 있었던 시스템에서 박근혜가 버려질 때 무엇이 살아남을까. 우리가 살아남을까, 이 죽음의 질서가 살아남을까.

 

박근혜는 버려지겠지만

 

▲ '혼외아들' 의혹을 받고 있던 채동욱 검찰총장이 9월 13일 전격 사의를 표명한 뒤 서초동 대검찰청사를 떠나고 있다. 채 총장의 '혼외아들' 의혹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방해하기 위한 청와대-법무부-특정언론의 합작품이라는 의혹이 일고 있다. ⓒ남소연

 

 

돌아보면 이 시스템에서 사람 날리는 일이야 일도 아니었다. 박근혜 취임 첫 해, 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건 수사에 의욕을 보였던 채동욱 검찰총장이 날아갔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 황교안이었고 혼외자식문제를 제기한 것이 조선일보였다. 취임 이듬해, 세월호 참사 당시 통영함 출동 명령을 내렸다가 상부에 제지당한 해군참모총장은 비리 누명을 쓰고 보직 해임되었다. 2015년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드러난 행정부의 월권을 바로잡기 위해 국회법 개정을 추진하던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새누리당에서 팽 당했다. 2016년 우병우를 건드려 청와대를 흔들어보려던 조선일보는 김진태가 대우조선해양 관련 비리 의혹을 제기한 후 송희영 주필을 정리했다. 날아간 사람들이 아쉬워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이렇게 사람 날리는 일이 일도 아닐 수 있음은, 시스템을 움직이는 힘이 언제나 합리가 아니었다는 충분한 증거다. 국정원의 매캐한 냄새도 기억해야 한다.

 

합리 따위의 말이 낯 부끄러울 정도로 기괴한 장면에 빠짐없이 출연하는 박근혜를 날리는 것 역시 이제 일도 아닐 것이다.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박근혜에게는 유보되었던 모든 것에 빗장이 풀리고 있다. 박근혜는 물러나라는 국민의 의지가 날이 갈수록 선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그를 대통령 자리에 앉혔던 자들에게 쓸모도 제공하지 못한다. 새누리당에 최순실 모르는 사람이 어딨냐는 말이나 20대 총선 비례대표 공천에 관여했다는 의혹이나, 어느 것도 고백이 아니다. 어느 편에 선을 대고 줄을 설지에 대한 판단의 전향을 보여줄 뿐이다. “우주의 기운은 박근혜를 버렸고, 그는 완전히 비정상이 되었고, 권력을 탐내는 정치인들에게 탄핵은 대박이 되었으니, 박근혜를 날리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결과다. 박근혜를 위협하는 자들을 향했던 칼날은 분명히 방향을 바꾸었다.

 

박근혜가 고개를 숙이며 검찰 조사에도 응하겠다던 자세를 바꿔, 버티기로 작정했을 때 그 배경은 자신감이 아니라 불안이다. 이승만은 망명할 미국이라도 있었지만 박근혜는 사드 배치를 성사시킨들 받아주기 난감할 지경이 되어버렸다. 퇴진을 하려면 이 있어야 할 텐데 그조차 없는 박근혜에게는 선택지가 없는 것이다. 이정현이나 김진태처럼 수준 이하인 자들을 제외한다면 박근혜를 대놓고 지켜주려는 세력은 없다. 그러나 박근혜가 버티는 시간을 벌어주는 자들이 있다. 박근혜만 도려내고 시스템을 원상복귀 시키고 싶어 하는 세력들은 노심초사 국민의 눈치를 보고 있다. 치정을 고발하되 실정은 옹호하며 의혹은 유포하되 의문은 봉쇄한다. 그래서 촛불은 추켜세우지만 들불은 경계한다.

 

시스템을 지키려는 자들

 

▲ 23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로비에서 사진기자들이 국방부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조인식 비공개방침에 항의, 카메라를 내려놓고 취재를 거부하고 있다. 항의하는 사진기자들 사이로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일본대사가 조인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국방부는 협정조인식 사진을 제공키로 했으나 사진기자들의 공개요구에 반발, 나승룡 대변인실 공보과장은 '사진 제공도 하지마'라는 등의 발언을 서슴지 않는 등 기자들의 공분을 샀다. ⓒ 연합뉴스

 

한민구 국방부장관은 끝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에 서명을 했다. 평화를 위한 실익도 없을 뿐더러, -일 파트너의 들러리를 서느라 한반도 평화를 자진 반납하는 협정이다. 정부는 이런 이유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까지 모욕했다. 진심 어린 사과 한 마디 받아내지 못하고 잘못에 대한 책임 한 번 따끔하게 묻지 못한 채 위안부 관련 야합을 했다. 장본인인 윤병세 외교통상부 장관도 자리에 남아 있다. 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했다는 조윤선 문화체육부 장관도 꿋꿋하다. 이준식 교육부 장관도 마찬가지다. 역사 왜곡과 밀실 추진으로 문제됐던 국정 교과서를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정 대통령을 위한 교과서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법무부장관이나 민정수석이 사의를 표명한 이유가 간언일 리는 없다. 박근혜가 날아갈 때 덜 다치려고 미리 발을 빼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의 7시간에 정윤회라는 이름을 슬쩍 들이민 장본인이기도 하거니와 지금 광장에서 울려퍼지는 하야라는 말을 내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국정화 역사교과서는 최순실 교과서가 아니니 추진되어야 하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저지하려는 야당에 정신 나간짓을 한다며 호통을 치고 있다. 이제 촛불의 열기를 식히려고 그만하면충분하다고 훈계하고 있다. 검찰은 박근혜를 피의자로 확정했다. 청와대의 사상누각발언에 발끈한 검찰은 녹음파일 10초만 공개해도 끝장이라며 청와대를 몰아붙이고 있다. 그런 검찰이 발표한 최순실 등의 공소사실에 재벌들은 청와대에 삥 뜯긴 피해자로 사뿐히 자리 잡았다. 최순실 쪽으로 수십억 원 보내고 이재용 승계의 길을 닦은 삼성이 피해자일 리 만무하다. 수천억 원의 손실을 입은 국민연금 가입자인 국민이야말로 피해자다.

 

김무성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탄핵 추진에 나서겠다는 소식까지 있으니 열흘 후면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에 가닥이 잡힐 것이다. 그러나 여태껏 어정쩡한 태도를 보여온 야당이 국민을 위무하리라는 기대는 들지 않는다. 여소야대 국회까지 되고도 세월호 특별법 하나 지키지 못했고 백남기 농민을 죽인 강신명 전 경찰청장 한 명 끌어내리지 못했다. 박근혜가 밀어붙였던 각종 악법을 번번이 통과시켜주고서도 변명으로만 일관했던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이 실정의 책임을 통감하며 탄핵에 나서는 것일까? 내가 보기에 그들은 자신의 권력욕이 충분치 못했음을 반성할 뿐이다. 그러니 그들은 실정을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실정의 책임을 박근혜에게 몰아주는 것에 더욱 관심이 있다. 특검이 임명되고 수사가 개시될 때, 예정된 재벌 총수 청문회가 펼쳐질 때, 국회가 국민의 뜻을 받들 자세가 됐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길가에 버려진 우리

 

▲ 스크린도어 수리작업 도중 사망한 19세 청년 비정규직노동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이 31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사고현장에 국화꽃을 놓거나, 추모쪽지를 붙이며 고인을 추모하고 근본적인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 권우성

 

 

이쯤에서 나는 화가 나고 분통이 터진다. 안간힘을 다해 살아온 우리의 삶을 위로하며 사과하는 자가 여전히 없기 때문이다. 월급 통장에 200만 원만 들어와도 살만하다 되뇌며 우리는 살아왔다. 먹고 살려고 돈이 더 필요하면 내 몸을 혹사시키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늙어서 굶을 걱정이라도 덜어보려고 가입한 국민연금을 빼앗아가는 것은 이다지도 쉬웠는데 우리의 삶은 이리도 험난했다. 최저임금 얼마 올리는 일은 기를 써도 쉽지 않았지만, 기업이 임금체계를 바꿔서 임금을 뭉텅 깎는 일은 갈수록 쉬워졌다. 일자리를 구하는 건 하늘에 별따기였지만 기업이 노동자를 해고하는 건 갈수록 식은 죽 먹기가 됐다. 노동조합에라도 기대려면 폭행과 집요한 괴롭힘을 감수해야 했고 노동청도 법원도 노동자에게는 등을 돌렸다.

 

목숨을 부지하는 것만도 행운이었다. 여객선이 침몰하는데 정부는 구조하기는커녕 수장시켰다. 그것도 부족해 진상규명을 방해하려고 수단방법 가리지 않으며 피해자들을 두 번 죽였다. 집회시위에 나섰다고 물대포에 맞아 사람이 죽었는데 사과는커녕 부검 운운하는 나라였다. 여자라서 죽어야 했던 사건을 정신장애인이라 죽인 사건이라 둘러대며 혐오 돌려막기로 일관하던 나라였다. 정부가 사이다라며 확대시킨 파견 일을 하다가 실명하는 것도 우리였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악착같이 일하다가 스크린도어에 끼어 죽는 것도 우리였다. 용광로에 빠져 죽고 반도체를 만들다 죽어가고 에어컨 실외기를 고치다 추락해도 기업은 국가를 믿고 뻔뻔했다. 가습기살균제가 사람을 죽였지만 정부는 기업을 안심시키며 참사를 키워왔고 메르스가 사람들에게 퍼져갔지만 정부는 병원을 걱정하며 사태를 악화시켰다. 박근혜가 헌정을 중단시켰다고들 하지만, 도대체 이런 나라에 헌정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박근혜가 헌법을 우습게 만들기 전에 이미 대한민국의 권력담합구조는 헌법을 우스운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출처 없이 통용되는 사회적 관용어일 뿐인 경영권을 초헌법적 권리로 떠받들었고, 차별금지법이 반인권악법이라는 주장을 하며 평등권을 길가에 내버렸다. 삶에 대한 우리의 권리는 간절했으나 자리를 찾지 못하고 허공을 맴돌았다. 헌정 중단이라 일컬어지는 추상적 사태는 이미 우리의 구체적 삶이었다. 디테일이 더해지고 있을 뿐이다. 온 국민이 옥시 불매운동을 하던 때 청와대는 옥시가 만든 소화제를 구입하고 있었다. 온 국민이 세월호 소식을 듣고 마음 졸이며 속보에 귀 기울일 때 대통령은 약에 물 탄 듯 물에 약 탄 듯 분간 못하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대통령과의 독대를 앞두고 기업들은 현안 자료를 준비했고 독대 이후 현안들은 하나둘 풀려갔다. 우리들의 현안은 누구도 풀어주지 않았다. 그러니 정국의 해법은 시스템으로부터 지킬 것이 아직 남아있는 자들의 몫일 것이다. 거침없이 새로운 시간을 열어가는 광장은 해법을 찾기보다 새로운 법을 세우고 있다.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이 글의 마감 초치기를 하면서 사무실 식구들과 함께 먹을 밥을 지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콩비지의 냄새를 맡아보고 고사리와 숙주나물을 썰어 넣어 전을 부쳤다. 비지 같은 삶도 소중히 여기고 가꾸며 우리는 살아왔다. 가진 것 하나 없어도 소중한 사람을 기쁘게 할 방법을 열 개쯤은 아는 게 우리가 살아온 방식이다. 순탄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차별과 혐오와 폭력과 착취가 일상으로 침습해 이미 우리를 흔들고 있었다. 그러니 흔들리는 것은 두렵지 않다. 크게 흔들릴수록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만 똑똑히 보면 된다. 다행히 저들이 망쳐놓은 세계 속에서도 우리의 삶은 빛을 잃지 않았다. 저들은 지금 광장에서 촛불을 보겠지만 우리는 들불처럼 이어져온 우리의 삶이 만나 찬란하게 빛나는 다른 세계를 엿보고 있다. 이 세계의 발목을 잡는 과거를 털어내기 위해 우리는 차라리 우리의 일상을 크게 한 번 멈출 것이다.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이 말은 아마 쌍용차 노동자 누군가에게서 처음 들었던 것 같다. “우리는 지지 않는다.” 밀양 할매들은 초고압 송전탑이 다 들어선 후에도 패배를 허락하지 않았다. 누구 하나 우리들의 현안을 풀어주지 않았으나 우리는 스스로 그리고 함께 살아왔다. 싸움이지 않고서는 삶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었던 우리. 죽음을 무릅써야 간신히 살아남았던 우리. 우리의 싸움에 최후 통첩이란 없다. 죽음의 질서를 넘어설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므로. 함께 싸운다는 것은 같은 수를 던지는 것이 아니다. 수를 던지고 나서 결과를 함께 감수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다시 함께 다음 수를 던질 수 있다. 그게 우리가 꾸준히 살아왔고 살아갈 방식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가득 찬 지금이 바로 진짜 민주주의가 열리는 시간이다. 이 시간의 끝이 무엇일지 예측하는 것보다 이 시간에 함께 휘말려있는 우리를 직시하는 것이 소중하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고 지켜야 할 것을 지킨다면, 박근혜가 버려질 때 우리는 살아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