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인권이 보장되는 군대를 위한 개혁에 적극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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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정부, 인권이 보장되는 군대를 위한 개혁에 적극 나서야
  • 박석진(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상임활동가
  • 승인 2017.09.01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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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권

“...엄마 미안해. 앞으로 살면서 무엇 하나 이겨낼 자신이 없어. 매일 눈을 뜨는데 괴롭고 매순간 모든 게 끝나길 바랄 뿐이야. 그냥 편히 쉬고 싶어...”

 

지난 719, 성남의 국군수도병원에 외진 나왔다가 투신해 사망한 육군 22사단 소속 고필주일병이 몸에 지녔던 수첩에 적힌 메모의 내용이다. 수첩에는 고일병 본인이 군 복무를 하며 당했던 가혹행위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적혀 있었는데 선임병들로부터 지속적으로 폭언과 욕설, 폭행에 시달려 왔음을 짐작하게 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더 중요한 문제는 고일병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1주일 전 쯤 이같은 가혹행위에 대해 부소대장과의 면담을 통해 피해사실을 알렸으나 군 부대는 고일병을 가해자들과 분리시켜야 하는 기본적인 추가 피해 예방 조치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구나 고일병이 외진을 나갔을 당시에는 인솔간부조차 대동시키지 않은 것이 드러남에 따라 군 부대의 기본적인 병사관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고일병이 사망한 직후 이 사건과 관련해 군당국이 취한 태도이다. 사건을 폭로한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고일병이 사망한 이틀 뒤인 지난 721일 정연봉 육군참모차장 주관으로 열린 현안업무 점검회의에서 사건의 진상파악이나 엄정수사, 유가족에 대한 사과 등이 논의된 것이 아니라 주되게는 언론 동향 파악 및 통제 방안이나 유가족에 대한 관리 등이 논의되었다는 점이다. 이같은 군 당국의 태도는 군대 내에서 발생하는 가혹행위 등 인권침해행위를 극복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감추고 축소해야 할 사안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제이다.

 

여전히 축소와 은폐로 일관하는 국방부

 

고일병 사건과 관련한 군 당국의 태도는 지난 20144, 육군 28사단에서 고참들의 가혹행위로 숨진 윤일병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에도 군 당국은 사단 헌병대의 조사를 통해 윤일병에게 가해졌던 극심했던 가혹행위의 대부분을 확인하고 있었음에도 윤일병의 사망이 단순 폭행에 의한 사망이라고 발표하며 윤일병은 관심병사도 아니었으며 부대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새빨간 거짓말을 덧붙이기까지 했다.

 

윤일병의 죽음으로 군대 내의 인권문제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차오르자 국방부는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등을 구성하며 대대적인 개혁에 나설 것을 국민에게 약속했으나 시간이 흐르자 예의 군의 특수성을 내세우며 부정적인 입장으로 선회했다. 윤일병 사건을 계기로 구성된 국회 군 인권 개선 및 병영문화 혁신 특별위원회’(국회 군인권 특위)20154, 6개월간의 조사와 연구과정을 거쳐 군사법원의 폐지와 국방부에서 독립된 군 옴부즈만 제도 도입 등 55개의 개혁과제 정책개선안을 제안했으나 국방부는 지휘권 보장, 군사보안 침해 등을 이유로 거부했다. 이후에도 국회 군인권 특위와 국방부는 여러차례 논의 과정을 거쳤으나 국방부의 부정적인 태도로 난항을 겪었다. 당시 국방부는 인권이라는 단어의 사용에도 알러지적 반응을 보였는데 군인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는 법률 제정안의 제목에 인권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데 반대했으며 군 외부에 설치되는 군 옴부즈만제도 도입에 끝까지 반대하면서 그 명칭과 관련해 군 인권 보호관이 아닌 군 기본권 보호관으로 수정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하였다. 결국 군인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는 법안은 그 명칭이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군인 기본법)으로 수정되었으며 군사법제도 개혁안으로 제안된 군사법원 폐지는 제대로 논의도 되지 못한 채 군사법원 수를 사단급에서 군단급으로 조정해 축소하고 가장 문제가 되었던 지휘관의 관할관제도와 심판관제도에 대해 그 행사범위를 일부 축소한 수준으로 마무리 되었다. 군 옴부즈만제도는 군 인권보호관이라는 명칭으로 앞서 언급한 군인 기본법에 설치 규정을 두긴 하였으나 국방부 외 기관으로 둔다는 문구가 제외되었고 그 설치와 관련해서는 따로 법률을 제정키로 함에 따라 그 실현여부를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촛불을 통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으나 군대 내의 인권문제는 여전히 열악하다. 지난 5월에는 해군본부에서 근무하던 여성 대위가 남성 상관의 지속적인 성폭력을 견디다 못해 자살했으며, 김포공항경찰대에서 목 메 자살한 박모 의경의 몸에서는 구타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멍 자국들이 발견돼 가혹행위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을 낳았다. 최근 노예병 논란까지 불러일으킨 공관병 인권침해 사례는 군대 내의 반인권적 상황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는지를 가늠케 한다.

 

새로운 정부의 출범만으로는 군대 내 반인권적 상황 개선되지 않아

지난 719,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운영 5개년 계획 및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며 군 인권과 관련해 군사법제도 개혁의 일환으로 심판관제도를 폐지하여 공정한 재판을 통해 장병의 인권을 보장하고 국가인권위원회 내에 군인권보호관을 신설할 것임을 약속했다. 아울러 군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무관용 원칙을 엄중히 적용할 것임을 언급하기도 했다.

 

군사법제도 개혁과 관련해 앞서 언급한 국회 군인권 특위가 군사법원 폐지를 제안했었고 시민사회에선 군 옴부즈만을 보다 강력한 감시와 통제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국회 내에 설치해야 한다고 요구했었다. 이 수준에는 못 미친다 하더라도 대통령이 군 인권과 관련한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럼에도 그 추진과정에서 실행부처간의 난맥은 조정돼야 할 듯 하다. 대표적으로 군 옴부즈만제도의 경우, 국방부와 국가인권위원회간의 논의가 시작조차 안되었으며 국방부는 인권위가 주도할 것이라는 입장인데 반해 인권위는 국방부가 책임을 져야한다고 해 양 부처간 책임 떠넘기기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부적절하다.

 

민주주의를 위한 국민적 저항의 결과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지만 그것만으로 군대 내의 반 인권적 문제들이 자동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경험적인 사실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인권상황이 향상됨에 따라 군대 내의 상황도 개선되어 왔다는 것이며 이는 역으로 말하면 이명박, 박근혜정부 하에서 다시 누적된 반인권적 문제들이 군대 내에 완강하게 온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말했듯이 군대 내에서 관행적으로 이어져 온 반인권적 행태들이 이제 우리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각인하고 인권이 보장되는 군대를 향한 보다 강력한 개혁에 나서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