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해고 여승무원과 함께 하는 미사” 강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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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해고 여승무원과 함께 하는 미사” 강론 중에서.
  • 정수용 신부(천주교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장)
  • 승인 2017.09.01 1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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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권

2006년은 아마 ktx 여승무원 분들에게는 잊기 어려운 해일 것 같습니다. ktx 승무원 해고 문제는 바로 그 때,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니 그보다 좀 더 정확하게 본다면 단군이래 최대의 국책사업이라던 ktx 고속열차가 개통된 2004년부터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당시 철도청은 고속열차 개통을 앞두고 여승무원을 모집했습니다. 지상의 스튜어디스라 말하며 준공무원 대우를 약속했고 실제로 엄청난 인원이 몰렸습니다. 351명 모집에 약 4600명이 몰려 131의 경쟁률을 보였고, 대부분 항공사 승무원을 준비하거나 관련 경력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애초 철도청이 이들을 직접 고용하는 것으로 알았던 고용관계는 철도청의 유관단체인 홍익회 소속으로 9개월짜리 비정규직 계약을 맺습니다. 이후에도 철도청의 자회사인 철도유통 소속으로 넘겨지며 다시 1년 짜리 계약직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무언가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철도청이 공기업으로 전환해 철도공사로 바뀌면, 철도공사의 정직원이 될 것이란 약속도 수차례 들었습니다. 철도청에서 면접을 했고, 철도청 소속 열차 팀장에게 업무 지시를 받았기에 당연히 정규직으로 곧 전환될 것을 크게 의심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철도청이 철도공사 코레일로 바뀌고도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고, 아니 오히려 더 열악해졌습니다. 계속해서 그들의 신분은 철도유통 소속이었고 급여와 근무 시간은 더욱 나빠졌습니다. 너무나 억울했고 처음의 약속과 달리 이용만 당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사회초년생이었던 20대 후반의 여승무원들은 처음으로 파업이란 것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2006년 시작한 파업은 오늘까지 햇수로 열두 해를 지속했습니다. 점거농성, 단식, 고공농성, 항의방문, 심지어 쇠사슬로 자신의 몸을 묶어가며 정부와 국회, 철도공사와 언론 등에 호소했고 부당한 노동환경을 고발했습니다. 그 때마다 공권력 투입과 경찰연행이 반복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측의 압박과 회유가 계속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 누군가는 떠나갔으나 동료들을 버릴 수 없었고, 나의 주장이 틀린 것이 아니었기에 자리를 지킨 280명은 결국 20065월 해고되어 오늘도 해고 여승무원이란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2006년 이후 희망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철도청 소속을 약속 받았고, 일을 시키는 매뉴얼과과 근로 조건도 모두 철도청이 정하는 대로 했으니 정규직 직원이었음을 인정받으려 근로자의 소속 신분을 명확히 확인해달라는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냈습니다. 또다시 진행되었던 기나긴 싸움 끝에 280명이었던 조합원 대부분이 떠나고 2008, 마지막까지 남은 34명의 조합원의 결정이었습니다. 그리고 20108월과 201181심과 2심은 모두 ktx 해고 여승무원 손을 들어줍니다. 이들은 철도청, 그러니까 지금은 철도공사의 소속이며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것과 상급심에서 확정 될 때까지 임금을 지급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철도공사는 판결에 따라 이들에게 임금을 지급했으나 한편 대법원에 상고합니다. 그리고 2015년 대법원에서 거짓말처럼 판결이 뒤집혔습니다. 승무원의 업무는 안전 업무가 아닌 서비스 업무만 담당하기에 외주 위탁이 가능하고 그렇기 때문에 본사 정규직이 아닌 하청 소속 비정규직도 가능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1000명 정도 타고 다니는 ktx 열차에서 안전업무를 하는 사람은 철도공사 소속 정규직 1명 뿐이고 여승무원은 누가 쓰러져도, 혹은 사고가 발생해도 안전 업무는 본업무가 아니기에 정규직 직원과 구분된 서비스만 한다는 지극히 편협한 판결이 나온 것입니다. 이 판결은 2015년 최악의 판결로 뽑혔지만, 그렇다고 판결이 뒤집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제 ktx 여승무원들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바로 1,2심 승소 이후 받았던 급여와 소송비용을 철도공사에 물어주어야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금액이 1인당 자그마치 8640만원이고 이 비용은 지금 이 순간에도 월 약 100만원이 넘는 이자가 붙고 있어 현재 1억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대법원 패소 이후, 반환금에 대한 심리적 압박으로 한 여승무원은 세 살난 자녀를 두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가슴 아픈 일도 일어났습니다. 이제 남은 33명의 조합원들은 이번 정부에서는 어떻게 해서라도 이 문제를 올바로 알리고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열 두해 동안 끌어온 정당한 목소리를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오랜 기간 병을 앓아온 한 여인을 치유해 주십니다. 공교롭게도 복음에 등장하는 여인이 투병해온 햇수 열 두해와 ktx 해고 여승무원들이 이 싸움을 계속해온 12년이 일치합니다. 복음에 등장하는 여인도 무수히 많은 방법을 찾았을 것입니다. 혈루증이라는 병의 특성상 드러내 놓고 치료하기도 쉽지 않았고 피가 생명을 뜻하기에 그러한 피를 흘리는 것을 부정한 것으로 간주한 유대사회에서 그녀는 부정한 사람, 저주받은 사람으로 취급 당하며 차별 속에 살아야하는 약자 중에 약자였습니다. 그러한 그녀는 용기를 내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고 그녀의 간절함은 단순히 병의 치유 뿐 아니라 여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는 구원에 대한 선취도 이루게 됩니다.

 

280명의 해고, 12년의 지루한 싸움, 33명의 마지막 조합원, 그리고 40... 복음을 보며 혈루증을 앓던 여인에게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이렇게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을텐데, 과연 ktx 여승무원들에게 이렇게 긴 시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오게 한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어떻게 4100일 동안 멈추지 않고 탐욕스런 자본과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워올 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개인적 억울함이나,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고자 했음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얼마든지 다른 길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그보다 ktx 여승무원들은 이 시대가 겪고 있던 간접고용의 문제, 비정규직의 문제, 여성노동의 문제, 그래서 부당한 해고와 정당하지 못한 노동환경을 고발하고 개선해야겠다는 신념이 이들을 버틸 수 있게 해주었던 것입니다. 나 스스로 떳떳하게 양심을 지키고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공동선을 이루겠다는 간절함이 20대 꽃다운 청춘을 바치게 했을 것입니다.

 

복음에서 용기를 내어 믿음을 간직한 여인에게 예수님은 구원을 약속하십니다. 이제 신념을 지켜온 그들. 비용 절감이라며 비정규직을 남발하고 간접고용으로 노동의 가치를 훼손한 불공정함에 온 몸으로 맞서온 그들에게도 구원이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여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 하신 예수님 복음의 힘이 하루빨리 ktx 여승무원들에게도 선포되길 다함께 기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KTX개통 10년에 즈음하여 철도노조 코레일관광개발지부 KTX 승무원들이 코레일의 장시간 노동 강요와 폭압적 노무관리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10년간의 간접고용에 의한 주55시간을 초과하는 장시간근무,처벌과 감시만을 앞세운 강압적 노무관리로 인한 인권침해 행위 중단을 요구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코레일은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2006KTX승무원들의 직접고용을 권고 받았지만 수용하지 않았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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