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지어를 착용할 수 없었던 대한민국 유일 경찰서 유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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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지어를 착용할 수 없었던 대한민국 유일 경찰서 유치장
  • 허윤정(천주교인권위원회 이사)
  • 승인 2019.06.04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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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래지어를 착용할 수 없었던 대한민국 유일 공간 경찰서 유치장

 

허윤정 (천주교인권위원회 이사)

 

20088월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이하 국과수’)는 시중에 판매되는 브래지어 4종을 놓고 각각의 제품이 얼마만큼의 힘을 견딜 수 있는지 알아보는 시험을 한다. 시험결과 브래지어 제품별로 최소 54, 최대 83의 무게를 견뎌낼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경찰은 이것 봐라, 브래지어가 이 정도 무게를 견딜 수 있으니 목을 매 자살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경찰은 유치장에 수감하는 여성들에게 자살도구인 브래지어를 벗으라고 강요한다.

경찰이 의뢰한 국과수 시험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2008년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로 시작됐다. 그리고 그해 815일 저녁 서울에서 100번째 촛불집회가 열렸다. 이때 경찰은 색소가 섞인 물대포를 쏘며 사람들을 체포하였다. 이날 집회에서 연행된 여성 31명은 서울 소재 8개 경찰서로 분산 연행됐다.

 

다음날 마포경찰서에 연행된 한 여성이 유치장 수감 시 경찰이 브래지어를 벗을 것을 강요했다고 폭로했다. 여성은 처음에는 거부하였으나, 경찰이 브래지어가 자살 위험 도구로 규정되어 있다면서 계속 벗으라고 요구하여 결국 브래지어를 벗어서 경찰에게 맡겼다. 이때 여성은 한 여름 복장인 얇은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물대포를 맞아 옷이 완전히 젖은 상태였다. 그리고 여성은 곧바로 남성 경찰에게 조사를 받았다. 이어 강남경찰서와 중부경찰서에서도 브래지어 강제 탈의가 있었다는 증언과 언론보도가 잇따랐다. 탈의 절차를 담당했던 여성 경찰은 남성 경찰과 남성 유치인들이 모두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목소리로 브래지어를 벗으라고 요구하였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찰의 브래지어 강제 탈의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빗발쳤다. 그러자 경찰은 여성의 속옷인 브래지어가 목매 자살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하여 국과수에 위와 같은 시험을 의뢰한 것이다.

 

브래지어 강제탈의가 정당한 공권력행사라고 인정한 국가인권위원회 결정

브래지어 강제 탈의를 당한 피해자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했다. 그러자 200810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유치장 수감 시 브래지어 강제탈의조치는 정당한 공권력행사로 적법하다고 결정하였다. 그리고 경찰청장에게 브래지어 탈의요구 시 그 취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탈의한 후 성적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보완조치를 강구하고관련규정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국가인권위원회 2008. 10. 9. , 08진인3135·08진인3140·08진인3141 병합 결정).

 

경찰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등에 업고 유치장 수감 시 브래지어 강제 탈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강제 탈의 후 보완조치조끼를 선택하였다. 그리고 2008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속옷 탈의는 인권침해라는 지적이 나오자 경찰은 제도개선을 약속하였다.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 결정과 달리 위법성을 인정한 법원의 판결

그러나 3년 후 브래지어 강제 탈의 사건이 또다시 발생하였다. 경찰은 2008년 제도개선 약속을 잊은 듯했다. 경찰의 브래지어 탈의는 집회 참여 여성들에게 성적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조치였다. 어떻게든 금지시켜야 했다. 2011810일 나는 2008815일 광우병 집회 당시 브래지어를 탈의당하고 유치장에 수감된 4명의 여성을 소송대리 하여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4명의 여성들은 경찰의 위법· 부당한 공권력 행사를 막겠다는 일념으로 개인적인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소송을 결심한 것이었다. , 이 소송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유현석공익소송기금의 지원으로 3년의 소멸시효가 채 열흘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이루어졌는데 위자료 청구소송 아이디어를 처음 제안하고 실무를 도맡아 준 강성준 활동가가 아니었다면 청구권 소멸로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역시나 재판과정에서도 피고 대한민국은 브래지어가 자살도구로 사용될 위험이 있다면서 탈의 조치가 합법적이었다고 강변했다. 앞서 소개한 국과수 소견을 근거로 끈에 의하여 혈류가 차단되는 압력이 경부에 일정한 기간 지속될 수 있다면 의사(목매어 죽는 것)가 가능하고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몸무게가 56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브래지어에 의한 자살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경찰내부규정인 경찰업무편람에는 브래지어가 자살이나 자해에 이용될 수 있음을 이유로 유치인으로부터 이를 제출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20125, 1심 법원은 경찰업무편람은 국민에게 강제력을 가지는 법규명령이 아니므로, 이 규정으로 국민에게 브래지어 탈의를 강요할 수 없고 법무부 소속 교정시설 내 여성 수용자의 경우 1인당 3(현재는 5개로 늘었다)의 범위 내에서 브래지어 소지가 허용되는데 반하여, 경찰서 유치장 내 여성 수용자의 경우 그와 달리 무조건적으로 브래지어 탈의 후 수감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으며 브래지어를 이용한 자살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더라도(기록에 따르면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은 사례는 없다) 유치인에게 피해가 덜 가는 수단을 강구하지 아니한 채 무조건 브래지어 탈의를 요구하는 것은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한다며 국가배상책임을 인정된다고 판결하였다. 피고 대한민국이 항소·상고했으나 20136월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대법원 2013. 5. 9. 선고 2013200438 위자료사건).

 

브래지어의 안정성을 인정한 경찰

대법원 판결 후 경찰은 경찰업무편람을 개정하여 자살·자해사고 유형에서 브래지어를 삭제했다. 또한 브래지어의 착용(소지)을 원칙적으로 허용하되 자살 등의 우려가 큰 유치인에 한해서 브래지어를 탈의 조치하고 스포츠 브래지어를 지급하라는 지침을 일선에 내렸다. 브래지어 탈의 전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얻어 탈의 조치하되, 유치인이 거부할 경우 강제 탈의를 금지했다.

 

경찰은 브래지어 강제 탈의가 유치장 시설 내의 안전을 고려한 조치라고 강변하지만, 여성 집회 참여자들은 전혀 그렇게 인식하지 않았다. 여성 집회 참여자들은 브래지어를 강제로 벗는 과정을 겪으면서 안전한 느낌이 아니라 불안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여성 집회 참여자들은 경찰의 브래지어 강제 탈의는 여성의 수치심을 건드려서 여성의 집회 참여 자체를 막고자 의도된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용기 있는 여성들과 이들을 후원한 천주교인권위원회는 반인권적인 공권력행사가 없어지기를 희망하면서 싸움을 계속하였고, 노력의 결과, 브래지어 강제 탈의 인권침해 사건은 경찰의 변화를 이끌어내면서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글을 마치며

여성의 속옷인 브래지어뿐만 아니라 티셔츠, 바지 등 겉옷 역시 목매 자살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겉옷을 벗긴 채 유치장에 수용하지는 않는다. 과거 2003~20086월 유치장에서 목매어 자살한 사건은 총 7건인데 브래지어로 자살한 사건은 단 한 건도 없었고, 같은 기간 구치소·교도소도 자살 사고 73건 중 72건이 목매 자살(액사 및 교사)한 사건인데 여성 속옷으로 자살한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2008년 국회제출 자료참조). 그런데 왜 여성의 속옷인 브래지어가 유독 자살도구로 규정되었을까.

 

우리나라 경찰서 내 유치장은 대부분 부채꼴형이다. 유치인을 감시하기 쉽기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 유치장은 구분되어 있으나 시선과 소리가 넘나든다. 게다가 대부분의 유치인보호관(경찰)은 남성이다. 내가 면담한 피해 여성들은 이런 유치장 안에서 공개적으로 브래지어 탈의를 강요받고 브래지어를 벗고 나서 수치심과 무력감 때문에 매우 고통스러웠다고 말하였다. 겉옷을 입었더라도 그 속을 다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온몸이 발가벗겨진 느낌으로 어깨와 허리를 펼 수 없어 조사를 받는 수사관 앞에서 당당히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고 했다.

 

나는 브래지어 강제탈의 피해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동안 만났던 여러 성폭력 피해자들이 떠올랐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강제로 옷이 벗겨지는 상황에서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 브래지어 강제탈의 피해여성들과 성폭력 피해여성들이 느끼는 감정은 결코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공권력은 집회 참여 여성들에게 이런 끔찍한 경험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면 다시는 거리로 나오지 말라고 압박을 가하려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브래지어 강제 탈의 인권침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소송은 유치장내 인권문제를 되짚어보고, 실질적으로 여성들에게만 가해하는 경찰 폭력을 개선하는 뜻 깊은 성과를 거두어서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