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요일, 난민, 이주민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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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일요일, 난민, 이주민을 “말”하다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19.10.08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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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일요일, 난민, 이주민을 하다

황필규(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한국의 경우 비록 난민법 제정으로 난민인정절차와 난민 보호가 일부 개선되었지만, 경제력, GDP, 인구, 국토면적 대비 난민에 대한 보호의 정도가 전세계적으로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는 난민인정/보호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재정비하고 필요한 예산과 인력을 적절히 배분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20174, 국제앰네스티의 대통령 후보자들에 대한 난민 인권 관련 질의에 관하여 문재인 후보가 답변한 내용입니다. 이러한 방향의 긍정적 변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고 믿고 싶습니다.

 

난민이 한국을 접하는 현장

이른 아침, 며칠 전 인터뷰 한 내용이 포함된 인터넷언론사 기사가 이메일로 도착합니다.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서 하루 난민신청 접수 수를 50~60건으로 제한하여 난민신청자들은 새벽부터 줄을 섭니다. “인력과 예산의 한계로 무제한 신청 받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신청을 원활하게 소화할 수 없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신청자 수를 제한하는 방식은 의도와 무관하게 난민신청자의 신청권을 박탈합니다. 여러 변수를 진지하게 고민했는지 의문입니다. 무엇보다 난민신청 통계의 추이를 봤을 때 예상되는 난민신청 수에 훨씬 못 미치는 수의 접수만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난민신청은 기본적으로 한국어나 영어로만 가능합니다. “어느 나라든 외국인이 언어 어려움 없이 법적 서비스에 접근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난민 협약국으로 난민신청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영어 중심으로 신청을 진행하는 건) 한국어, 영어를 잘하는 사람만 난민신청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거나 운이 좋아서 돈이 많아서 통역을 구할 수 있는 사람만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난민심사 자체가 당사자의 구체적인 진술에 주로 의존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난민심사의 특수성에 비추어 언어적인 걸림돌은 난민신청권의 유명무실화로 이어집니다.

난민신청을 접수하는 자리에서 담당공무원이 난민신청자에게 박해 사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묻기도 하고 박해 사유의 사실 여부를 큰소리로 따지기도 합니다. “신청은 접수 단계지 심사 단계가 아닙니다. 이름과 연락처만 확인하면 되고필요한 서류 구비 여부만 확인하면 됩니다. “신청은 박해받고 있다는 주장만으로 가능합니다. 미비한 서류도 추후 제출하거나 (이후 단계인) 심사를 통해 보완하면 됩니다.” “소송과 비교해보면 (이 상황은) 소장 접수 담당 직원이 소장 내용에 대해 틀렸다고 지적하는 꼴일 수 있습니다. 난민법은 난민신청 시 신청서, 신분증, 신청을 뒷받침할 자료 제출만을 규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난민법은 또한 난민신청자 등의 주소·성명·나이 등 인적사항 등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난민신청자의 특정 인적사항이 사실상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 공개적으로 이야기되는 상황은 제17조 취지에 직·간접적으로 위반됩니다.” “난민의 인적사항 비밀유지는 난민 보호에 있어서 최소한의 원칙입니다. 난민을 보호하라고 했더니 난민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형국입니다.”

 

난민, 이주민을 향한

오전 10시가 지나고, 몇주 전 녹화를 한 내용이 일부 포함된 에 관한 라디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방송됩니다. 몇 년전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서 한국 인권상황에 대한 심의가 있을 때, 정부는 한국이 단일민족국가로서 순혈”(pure blood)주의국가이기 때문에 혼혈”(mixed blood)이 거의 없어 인종차별문제가 거의 없다는 언급을 해 전 세계를 경악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정부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의식하건 의식하지 않건 차별과 혐오의 언어를 일상생활에서 너무도 많이 사용합니다. “다문화, 이리 와서 이 문제를 풀어봐”, “어이 불법, 일 좀 제대로 해”, “일본애들은 그것이 문제야.”학교에서 사업장에서, 호칭에서부터 존칭 등의 방식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인식은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언어들은 이주민, 난민에게 깊은 상처와 열등한 존재로서의 자기 규정을 강요합니다.

90년대부터 이주민들이 산업연수생제, 국제결혼 등을 통해, 그리고 난민들이 난민협약과 관련 법령에 기초해 한국으로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 후에 법과 제도라는 측면에서는 비록 많이 미흡하기는 하지만 점점 개선되어 온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의, 그리고 국민들의 인식은 후퇴하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인권은 사람의 권리이고 사람을 사람으로, 권리를 권리로 제대로 인식하고 존중할 때 인권이 보장될 가능성이 열립니다. “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는 평범한 진리가 이주민, 난민을 대할 때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난민의 역사, 한국을 넘어

오후에는 네팔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회의의 난민 인권 관련 세션에 스카이프를 통해 참여하여 발표합니다. 일본 교수의 사회로 뉴질랜드 전 판사와 필리핀 판사도 역시 인터넷을 통해 발표자로 참여합니다. 90년대 중반 한국 난민협약을 가입하고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하면서 난민들의 난민신청이 가능해졌습니다. 하지만 그 후 10년 동안은 대다수의 국민의 난민제도의 존재 자체를 전혀 모르는 무관심과 무지의 시대였습니다. 2005년을 전후해 국회와 국가인권위에서 관련 공청회가 열리고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난민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이 조금씩 이루어지면 난민법이 제정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점진적인 발전의 시대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는 시리아 난민들에 대한 인천공항 불법구금상황, 제주에서의 예멘난민들의 난민신청상황을 거치면서 후퇴와 반동의 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한국은 국가의 성립과 그 존립, 국가의 지도자, 국민의 보호를 국제적인 난민 보호에 의존해왔습니다. 일제의 박해를 피해 수많은 이들이 중국행을 택했고 이들 중 일부가 임시정부를 만들었습니다. 유엔한국재건기구 등이 한국전쟁 당시 약 10년간 국내실향민을 위한 구호활동을 펼쳤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적 난민이었고, 문재인 대통령도 국내실향민이었습니다. ‘한국 국민인 다수의 탈북자들이 난민으로 보호받고 있고 그 국제적 보호의 필요성은 앞으로도 커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난민문제는 결코 일국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도 고립된 접근이 아니라 한국의 위상에 걸맞는 난민보호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지역 차원, 그리고 국제적인 차원에서 난민보호의 의무분담, 역할분담을 어떻게 이루어나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면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동안 한국은 형식적인 난민 법제만이 존재했다. 국가적인 난민 정책이 수립되어야 하고 박해의 위험에 처한 난민들을 제대로 보호하기 위해 많은 점들이 개선되어야 한다. 예멘 난민 상황으로 비롯된 공포와 편견이 이를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박해에 대한 두려움을 지닌 이들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삼는 것처럼 비인간적이고 비인도적인 것도 없다. 인권이 문제가 되는 때는 권력이 불편해하고 다수가 싫어할 때다. 결국 그 문제의 해결은 누군가의 용기와 행동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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