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돼지열병 이후에 오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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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돼지열병 이후에 오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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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2.09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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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돼지열병 이후에 오는 것들

정은정 <대한민국 치킨전> 저자, 농촌사회학자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한지 두 달이 지났다. 다행히 14곳의 양돈농가의 확진 판정을 받은 뒤에는 1010일 이후 새로운 발생 소식은 들리지 않아 조심스럽게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종식된 것은 아닌지 조심스러운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야생 멧돼지 사체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검출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엄중한 상황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돼지 폐사율이 100퍼센트에 육박한다. 바이러스 유형도 24가지나 되기 때문에 백신도 아직 개발 단계에 머물고 있다. 예방은 오로지 방역이지만 사람과 물류가 실시간으로 오고 가는 세계화 시대에 완벽한 방역이란 처음부터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다음 방법은 공격적 살처분으로 확산을 막는 일인데 이는 후유증을 남긴다. 바이러스 잔존 기간이 길어서 돼지를 살처분하고 돼지를 다시 넣어 기를 수 있는 재입식 시기가 한없이 늦춰지거나 폐업을 하게 되는 일은 축주들에게 가장 큰 고통이다. 이는 한 사람이 직업을 잃는 일이고 한 가족의 생계가 위기에 빠지는 일이다. 몇 푼의 정부 보상금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돼지는 축산업의 전유물이 아니다. 돼지는 식품산업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햄이나 소시지를 비롯해 다양한 가공식품의 기초 원료다. 여기에 한국의 외식 자영업도 돼지에 매달리는 삶을 산다. 노동 안정성이 떨어지는 한국에서 적은 자본으로 진입하는 분야가 외식 자영업이다. 전체 자영업에서 외식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20% 정도, 그 사람들 상당수가 돼지에 매달린 삶을 산다. 거리에 즐비한 고깃집과 식당들의 메뉴에서 돼지를 빼놓고 팔 수 있는 음식이 얼마나 될까. 사람이 돼지를 먹지만 돼지가 사람을 먹여 살리는 세상이기도 하다.

이렇게 인간과 가까운 돼지 38963만 마리가 이번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한꺼번에 살처분 되었다. 선제적인 조치로 정부가 나서 돼지를 수매해 도축장으로 실려 간 돼지도 47577 마리다. 파주시, 김포시, 연천군에서는 모든 돼지를 강제 수매하고 아예 지역에 양돈장을 비우는 방식을 선택했다. 초강수를 둔 셈이고 덕분인지 국내 최대 양돈 밀집지역인 충남까지 퍼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또 가슴을 쓸어내리는 중이다.

구제역이나 조류인플루엔자(AI) 같은 가축전염병이 발생하면 그때마다 많은 가축들이 죽어나가는 일이 되풀이된다. 2000년부터 2015년까지 구제역으로 죽은 소와 돼지, 염소 등은 387만여 마리이고, 구제역이 가장 극심했던 2010년 겨울부터 2011년 초봄까지 한 계절에만 347만마리가 죽어나갔다. 2003년부터 2017년까지 약 7천만마리의 닭과 오리가 살처분 되었다. 먹기 위해 기르고 어차피 도축장으로 끌려 들어갈 운명을 가진 가축들이지만 한꺼번에 이렇게 죽어나는 일은 동물은 물론이고 사람과 지역사회에 큰 충격을 준다.

축산업은 기르는 일(양축)만큼이나 효율적으로 잘 죽이는(도축) 일이 핵심이다. 저 두 요소가 효율적으로 잘 맞물려야만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체제가 갖춰진다. 도축장은 자동차 공장의 풍경과 흡사하다.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에 맞추기 위해 가축을 규격에 맞춰 기르고 출하하여 처리 속도를 높인다. 가축들을 효율적으로 집산시키기 위해 사료공급기지와 생산기지(축사), 그리고 도축장과의 거리를 좁히는 방법으로 산업지도가 그려진다. 하여 가축전염병에 걸린 농장들이 바짝 붙어 있어 살처분 대상에 가축들이 더 많이 포함되어 더 많이 죽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단순히 공장식 축산의 문제가 아니고 공간과 지역의 관점에서 축산업을 분석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축산업은 이주노동자의 노동에 기댄다. 양축도 도축도 모두 이주노동자들 손으로 이뤄진다. 피와 살덩어리를 다루는 육가공업체의 노동도 이주노동자들이 떠받친다. 심지어 가축전염병 사태가 벌어지고 자신이 일하던 농장이 문을 닫게 되면 가축 살처분 업체에서 일을 하기도 한다. 축사의 악취와 해충, 지하수 오염과 같은 축산업의 폐해를 겪는 이들은 농촌 주민들이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대다수 소비자는 기르는 일도 죽이는 일도 하지 않는다. 그저 비닐랩을 벗기면 미트패드(핏물흡수지)위에 정갈하게 손질된 고기를 사서 맛있게 먹으면 그뿐.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긴급행동지침(SOP)’200여 쪽이 넘는 매우 꼼꼼한 안내서이지만 문제는 현장에서 얼마나 면밀하게 적용 되는가다. 냉혹한 말이지만 구제역 사태를 통해 가축 살처분의 경험이 축적되어 이번 아프리카돼지열병 살처분의 매뉴얼도 수립되었고 방역체계도 좀 더 섬세해진 면이 있다.

물론 동물복지에 기반한 인도적 살처분에 대한 명시도 분명하다. 다만 살처분 반경거리를 어떻게 정하느냐의 문제가 늘 논란으로 남는다. 바이러스 확산속도가 빠르고 업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비해 가급적 재빠르고 광범위하게 살처분 반경을 정하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차악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더해 병에 걸리지도 않은 가축들까지 반경 안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고하게 죽이는 일은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그만큼 동물복지에 대한 요구도 많아졌고 동물권 운동은 비약적으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동물권 운동 진영과 축산업계는 진지하게 대화를 나눌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유는 동물이 먼저냐, 인간이 먼저냐, 라는 합의 불가능한 의제를 설정했기 때문이다. 축산업계에서는 국민들에게 양질의 단백질을 제공하는 생산자들을 탐욕으로 가득 찬 공장식축산의 주범으로 몰며 생산자들을 범죄자 취급한다는 것에 분노한다. 동물권 운동에서는 축산업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간 무시되어 왔던 동물해방 문제가 더욱 급진화 되어야 하고, 과도한 육식문화에 대한 폐해를 널리 알리고자 한다. 한 쪽은 더 먹여야 하고 한 쪽은 먹지 말아야 하니 과연 합의점이라는 것이 찾아질 리가 있을까. 아프리카돼지열병의 바이러스 감염원이 야생멧돼지일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멧돼지포획 문제를 두고도 양측 진영은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살처분 현장에서 이를 감당하던 사람들의 문제도 심각하다. 살처분 과정에서 가축을 죽이고 매몰하는 작업은 그 자체로 위험하다. 육중한 대가축을 다루다 보니 부상도 잦고 가축방역사가 쇠뿔에 받혀 목숨을 잃는 일도 있었다. 짧은 시간 안에 가축들을 대량 살처분하다 보니 현장은 매우 열악하다. 구제역 사태 때 세 명의 공무원이 과로사하고, 살처분 현장에 있었던 작업자와 축주들이 심리적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하여 대부분의 지자체는 전문적인 방역업체나 용역업체에 살처분을 위탁하고 있다.

이제 가축전염병은 사회적재난이라는 문제제기가 계속 있어왔고, 국가인권위원에서는 201712<가축매몰(살처분)참여자 트라우마 조사>라는 인권상황실태 조사보고서를 내놓았다. 살처분 긴급행동지침(SOP)에도 살처분 등 참여자를 대상으로 예방교육 및 심리지원항목을 명시해 두었다. 살처분의 작업자들 중 30% 정도가 이주노동자이고 이들을 대상으로 통역과 번역을 통해 안전교육과 심리지원을 하라고 명시하는 등 행동지침서 자체로만 본다면 인권과 동물복지까지 아우르는 잘 만든 지침서다. 하지만 권고 수준의 명시가 과연 지켜질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공공영역의 바깥에 외주업체에 임시로, 계절노동으로 흐릿하게 고용된 일용직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들에게까지 예방교육과 심리지원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을까.

돌이켜 보면 인권은 늘 농촌농업 앞에서 멈춰 서곤 했다. 결혼이주여성과 농수축산 분야의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은 입국하는 순간 버려지다시피 한다. 농촌의 폐쇄성과 보수성으로 뭉뚱그리기엔 농촌의 인권 문제는 개선 속도를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진공상태인 경우가 태반이다. 공간의 관점에서 보자면 도시는 농촌을 쥐어짜고, 농촌은 한국보다 더 나약한 나라의 시민들을 쥐어짜고, 그들은 동물을 쥐어짜 고기들을 길러온 셈이다. 이러나저러나 피를 보고 살을 취하는 일이 축산업이고 대량살육을 통해 가끔 그 실체가 드러날 뿐이었다. 늦었다고 말할 때가 가장 늦은 때라는 뼈아픈 자각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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