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록위마(指鹿爲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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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록위마(指鹿爲馬)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19.12.09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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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록위마(指鹿爲馬)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진시황제가 죽자 측근 환관인 조고는 태자 부소를 죽이고 어린 호해를 세워 2세 황제로 삼았다. 조고는 호해를 조종하여 경쟁자들을 죽이고 조정의 실권을 장악했다. 그러자 역심이 생긴 조고는 중신들 가운데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을 가려내기 위해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폐하, 말을 바치오니 거두어 주시오소서.」 「승상은 농담도 잘 하시오. 사슴을 가지고 말이라고 하다니(指鹿爲馬)'……. 어떻소? 그대들 눈에도 말로 보이오?왕이 웃으며 좌우의 신하들을 둘러보았다. 잠자코 있는 사람보다 그렇다고 긍정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아니다라고 부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조고는 부정한 사람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죄를 씌워 죽여 버렸다. 그 후 궁중에는 조고의 말에 반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거짓이 진실이 될 수 있고, 진실을 말한 자들이 처벌받을 수 있다. 경순감독이 만든 영화 지록위마는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영화는 사건 자체보다 질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들을 쫓는다. “우리는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언론을 통해서 알게 된 통합진보당에 대한 생각은 진짜 당신의 생각이었을까?” ‘이석기내란음모부터 통합진보당해산까지 우리가 품었던 질문에 대한 질문이다. 그리고 영화는 질문의 끝에서 다시 되묻는다. 한국사회는 왜 침묵했는지, 혹시 말을 보고 사슴이라 말해야하는 두려움에 주저하며 스스로를 검열했던 것은 아닌가 말이다.

1950년대 미국에서 활동하는 공산주의자들의 명단을 가지고 있다는 조지프 레이먼드 매카시(Joseph Raymond McCarthy)  상원의원 발언으로 시작된 마녀사냥의 광풍이 21세기 한국에서도 똑같이 벌어졌다. 20138월 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과 함께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을 압도적 다수로 통과시켰다. 그로부터 1년 뒤 20148월 서울고등법원은 내란죄를 저지르기 위한 구체적인 합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 판단하고 원심을 깨고 내란음모 혐의는 무죄로 판단하고 내란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인정했다. 이석기 의원에게 징역 9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하고, 나머지 피고인들에게도 1심보다 형을 낮춰 징역 2~5년을 선고하였다. 이후 2015122일 대법원이 이 판결을 확정하였다. 2013114일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청구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20141219일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및 소속 국회의원 전원 의원직 상실을 결정했다.

내란음모 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이어지는 시기는 나는 종북 빨갱이가 아니다라고 선언하고 너는 종북 빨갱이가 아닌가?” 하고 묻는 야만의 사회였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빨갱이의 위협보다, ‘종북빨갱이를 확인하는 사회가 문제였다. 생각하고 말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회가 훨씬 더 위험하다. 사법기관에서 사실관계가 다루어지기 전부터 의도된 소문을 정치적으로 유포시키고 수많은 시민을 예비범죄자로 간주하며 사생활을 파괴하는 도청의 자유를 누리는 정보기관을 둔, 사회가 더욱 위험하다. 확정되지 않은 피의사실을 함부로 공개하고 객관성과 공정성이라는 기본 가치를 지킬 줄 모르는 언론이 존재하는 사회가 더욱 위험하다. 의회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적법한 절차를 요구할 능력조차 상실한 악의적이거나 무능력한 정당을 둔 사회가 더욱 위험하다.

당시 우리가 직면한 위험은 내란음모에 따른 체제의 위기가 아니라 내란음모를 핑계로 사상과 양심과 생각과 표현과 결사와 행동의 모든 자유를 빼앗긴 것이었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글을 쓰고 말을 하는 모든 이들이 북한이석기통합진보당에 대한 생각을 밝히지 않고 입장 발표하길 두려워했다. “나는 이석기와 통합진보당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이라는 서두 없이 말하지 못했고 글은 써지지 않았다.

이석기경기동부연합으로 지칭되는 이들을 대하는 사회적 태도는 정말 합당한지 묻지 않았다. 끊임없이 언론에 노출되는 이들은 종북빨갱이에서부터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인사들이라는 표현으로 공공의 적이 되었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자신의 행위로써 법정에 서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법원의 판결이 있기 전까지 모두 무죄로 추정 받을 권리가 있다. 이것은 인류가 인권의 기본토대를 구축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싸워온 소중한 자산이다. 이러한 것을 모두 무너뜨릴 만큼 한국사회에서 이석기경기동부연합의 단죄가 급했던 것일까. 이를 처단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모두 실종되었다. 설령 비밀스런 회합과 비밀스런 모임과 위험한 발언이 존재했다고 한들 그것이 타인의 존재를 증오할 만큼 혐오스러운 일이었는가. ‘혐오의 밑바탕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힘은 차별이며 다른 것에 대한 분리와 배제를 낳게 한다.

나와 다른 생각에 대한 분노와 학대는 나치와 같은 독재정치에 힘을 실어주며 말하지 못하게 하는 이성과 합리의 죽음을 불러온다. 수많은 역사 속에서 그것을 경험했다. 이러한 혐오의 징표가 어떠한 정치인과 정치그룹에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는 이미 가난하고 힘없는 사회적 약자와 다른 존재들의 불편한 행동에 대해서 분리배제를 명령하고 있다. 여전히 이석기통합진보당에게 가해지는 것은 이와 같은 혐오행동또는 솎아내기와 무엇이 다른가. 그들에게 가해지는 뭇매가 서로 생각이 다른 동료 학생을 국정원에 신고하는 현실에 이르게 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5년 뒤 탱크와 총으로 무장한 군대가 계엄령을 준비하고 구체적 동선까지 고려한 계획이 밝혀졌지만, 어떤 언론에서도 5년전 보도보다 충격적이게 다뤄지지 않았다. 마치 내란음모에 관한 한 이석기또는 통합진보당보다 강한 실체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새로운 정부에서도 여전히 성역처럼 존재하는 이석기내란음모 사건과 통합진보당해산은 단한명의 양심수도 석방하지 않은 사실로 증명되고 있다. 아무도 말하지 않고 변명하지 않는 이 현상을 우리는 뭐라고 이야기할까? 영화는 묻고 있다. 당신은 말을 사슴이라 말하고 있지 않는가?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펀딩플랫폼 텀블벅(https://www.tumblbug.com)에서 대국민사상검증 프로젝트 <애국자게임2-지록위마>을 런칭했다. 신개념 배티 개봉이라는 방식이다. 관객이 배급지원도 하고, 영화티켓도 동시에 구매하여 극장을 사전대관형태로 개봉하는 새로운 독립영화배급 방식이다. <지록위마>와 독립영화인들의 새로운 시도 모두를 응원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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