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역언론들이 범한 또 하나의 '역사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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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역언론들이 범한 또 하나의 '역사범죄'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02.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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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조작사건 축소보도로 일관
누구나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해장국집 등 음식점에 가보면 '우리집이 몇십년 됐네' 하는 식이다. 옷집이나 책방 등에 가봐도 마찬가지고, 기업이나 금융기관들의 경우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기란 마찬가지다.

신문사들의 경우도 다를 바 없다. '창간 몇십주년이 됐네' 하는 식으로, 연륜과 깊이를 자랑하기 일쑤다. 그러나 역사는 무서운 것이다. 역사가 오래된 것이 자랑일 수도 있으나, 더없이 무거운 짐일 수도 있다. 특히 언론의 경우는 그러하다.

"나는 부역시대의 기자였다"

언론계 생활을 40년 가까이 한 손광식 본지고문(전 경향신문 국장.상무, 문화일보 사장)은 자신을 일컬어 "부역시대의 기자였다"고 말한다. 기자 시절에 해야할 말, 써야할 기사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는 뼈저린 자성의 소리다.

이런 자성은 듣는이들을 숙연케 한다. 굳이 기자가 아닐지라도 어두운 시대를 살아온 이라면 누구도 '부역시대의 굴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손 고문의 논법을 빌면, "한국의 언론은 부역시대의 언론"이었다. 물론 87년 민주화 항쟁 등에서 언론은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70~80년대 대다수 한국언론은 부역시대를 살았다. 특히 동아.조선 투위 사태이후의 한국언론은 '부역언론'이었다.

이같은 부역시대에 한국언론이 범한 치명적 역사적 과오중 하나가 다름아닌 74~75년의 '인혁당' 사건보도다. 지금 내로라하는 신문들은 당시 인혁당 사건을 "남한 전복을 위한 대표적 빨갱이 사건"으로 보도했다. 정부의 발표 그대로를 앵무새처럼 읊은 것이다.

이 사건의 조작성을 폭로한 김지하 시인의 '양심선언' 등이 있었고, 앰네스티 등 국제인권단체 및 외국언론의 숱한 보도에도 불구하고 유독 한국언론은 중앙정보부의 앵무새였다. 인혁당 사건은 박정희 대통령 말기의 철권통치를 존속시키기 위한 대표적 정치공작이었고, 사법살인이었다. 하지만 부역시대의 언론은 침묵을 선택했다.

그로부터 27년여가 지난 2002년 9월12일 오후, 정부 공식기관인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인혁당 사건은 중앙정보부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리고 십수 시간 뒤인 13일 아침, 신문들이 발행됐다.

9개 신문중 7개 신문의 인색한 인혁당 보도

13일자 신문들의 1면 톱기사들부터 살펴보자.

조선일보: '투기과열지구 아파트 재산세, 내년 최고 50% 오른다'
중앙일보: '부시, 이라크에 최후통첩'
동아일보: '혈우병 10여명 에이즈 감염'
한국일보: '서울.수도권 아파트 441개 단지, 기준시가 평균 17% 인상'
경향신문: '강남 등 투기지역 아파트 재산세 23~50% 오른다'
국민일보: '투기과열 서울.수도권 441개 아파트단지, 기준시가 평균 4700만원 인상'
세계일보: '금강산 관광회담 결렬'

혹시나 1면에 일단기사로라도 '인혁당 조작' 보도가 있었는지를 살펴보았다. 몇번이고 다시 뒤적여 보아도 한 줄도 찾아볼 길 없었다. 이들 신문은 '인혁당' 관련기사를 대부분 사회면에 처리했다.

또 혹시나 하는 심정은 이들 신문의 사설면을 들여다보았다. 역시 이들 신문은 약속이나 한듯 이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9개 종합 조간지 중에서 단 두 신문만은 달랐다.

한겨레신문은 '인혁당사건, 중정이 조작'이라는 제목으로 이를 1면 톱기사로 다뤘다. 이어 '정치권, 의문사규명 묵살하나'라는 연속기사도 실었다.
대한매일신문도 '인혁당재건위 사건, 중앙정보부서 조작'이라는 제목으로 이를 1면 톱으로 다루었다.

이들 신문은 사설로도 이 문제를 다루었다.
한겨레신문은 '고문조작과 국회가 해야 할 일'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의문사진상규명위의 활동 시한을 연장할 필요가 커졌다고 주장했다.
대한매일신문은 ''인혁당 사건 진상 재조사하라'는 제목의 사설과, 이와는 별도로 '의문사 의문으로 남길텐가'라는 데스크 칼럼까지 실었다.

부역 언론들이 범한 '역사 범죄'

신문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는 신문사의 자유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앞으로 뽑게 마련이다. 이런 기준에서 본다면 13일자 신문제작 태도를 뭐라할 것도 없어보인다.

그러나 '인혁당' 사건의 경우만은 다르다. 신문사의 편집 자유 운운하면 넘어갈 수 있는 그런 사안이 아니다.

인혁당 사건은 박정희정권의 가장 추악한 정치범죄였다. 당시 대다수 기자들은 이 사건의 조작성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게 당시 언론계에 재직했던 선배 언론인들의 일치된 견해다. 그러나 대다수 언론은 침묵했다. 언필칭 '부역시대'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각 언론들은 예외없이 "신문보도로 억울한 피해를 보는이가 한 사람도 없도록 하겠다"는 대독자 약속을 하고 있다. 마땅히 해야 할 약속이고,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이다.

그렇다면 사건 당시 인혁당 연루자들을 '빨갱이'라고 했던 보도는 어떻게 해야 하나.

무고한 8명이 '북한에서 남파한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또한 수많은 이들이 15~20년간 옥살이를 해야했고, 그중 한사람은 옥사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가족들은? 지난 27년간 '빨갱이 마누라' '빨갱이 자식'이라고 불리며 온갖 고초와 고난을 치뤄야 했다.

27년여가 지나서야 유가족들의 끈질긴 싸움으로 비로소 이들은 빨갱이라는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을 중정 발표대로 앵무새처럼 빨갱이라고 보도했던 언론들은 어떠해야 하나. 중정에게 책임이 있지, 우리에게는 없다고 할 수 있나. 진실이 아님을 알고도 중정 앵무새 노릇을 한 잘못이 언론에게는 정말 없나.

그동안 '부역언론의 필봉'에 의해 모욕당하고 고통받은 고인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손톱만한 죄의식, 책임의식이라도 느낀다면 한국의 신문들은 이를 1면에 대서특필하고, 인혁당 사건이 얼마나 악의적으로 조작된 사건이었나를 몇개면에 걸쳐 도배했어야 마땅했다.

아울러 사설 정도가 아니라 1면 사고(社告)를 통해 고인과 그들의 유족,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언필칭 한국의 유서있는 언론임을 자부하는 신문들일수록 이번에 자신이 범한 '역사 범죄'를 외면했다. 사과하지 않았다. 마지못해 실으면서도 가능한한 안 보이는 곳으로 숨기려 했다. 또하나의 '역사 범죄'를 저지른 셈이다.

앞으로 한국 신문들은 창간 몇주년 운운하지 말라. 이런 모습을 되풀이해 보이는 한, 한국 신문에게 역사란 자랑거리보다 치욕거리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박태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