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문사, 이제는 끝내라
상태바
군의문사, 이제는 끝내라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02.09.1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허일병 사건 이후 관련민원 30건 폭주… 유족들의 눈물을 어떻게 닦아줄 것인가
1980년부터 95년까지 15년 동안 군에서 죽은 사람은 자살 3263명, 폭행치사 387명 등 모두 8951명에 이른다(<한겨레> 95년 9월26일치). 이후에도 2000년도 국회 국방위 보고자료에 따르면 해마다 300여명이 죽고, 이 가운데 100여명이 자살한다고 한다. 이런 엄청난 수치를 접하다 보면 지금 우리가 전쟁을 치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걸프전 당시 미군쪽 사망자가 148명, 사고사 121명으로 모두 269명에 지나지 않은 것에 견준다면 이러한 수치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알 수 있다.

최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규명위)를 통해 밝혀진 허원근 일병 사건의 진실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던져주었다. 위원회는 “허 일병이 중대 내 소대장의 진급을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중대본부에서 열린 술자리에서 뒷바라지를 하던 중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린 하사관이 우발적으로 쏜 총에 오른쪽 가슴을 맞아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고 했으나 당시 군 헌병대는 허 일병이 중대장의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해 군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자살했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유족이 “자살하려는 사람이 3발이나 총을 쐈다는 것이 석연치 않다”며 진상규명을 요구했을 때 군 헌병대와 군 검찰이 유족의 편에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으면 진실이 밝혀지는 데 18년의 긴 세월이 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허 일병 유족은 선택받은 경우


허 일병 사건보도 이후 규명위에는 군의문사 관련민원이 30건 이상 접수되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허 일병 사건에 대해 국민적 관심과 분노가 들끓는 것은 비단 타살을 자살로 조작하고 은폐한 군의 반인도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이회창 후보 아들들의 병역비리 사건에서 나타나듯이 이른바 사회 지도층은 마치 이런 현실을 꿰뚫어본 것처럼 온갖 방법을 동원해 자식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았다. 결국 힘 없는 서민의 자식들만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에 가서 고생하고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는 불공평한 현실에 대한 반발일 것이다.

다른 한편 역설적으로 허 일병의 유족은 운이 좋은 경우다. 사고현장과 목격자, 참고인, 각종 사건 관련증거들이 모두 군내에 있고, 수사기록 열람조차 보장되지 않는 조건에서 유족의 힘으로 진실을 규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현실에서 18년간 유족들이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한 것은 “죽은 자식이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만 다시는 아들과 같은 억울한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부모의 마음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래도 규명위 같은 국가기관의 도움으로 진실을 규명할 수 있었다는 것은 민주화운동 관련성이라는 한계에 부딪혀 규명위에 사건을 접수조차 하지 못한 수많은 군의문사 유족들과 비교할 때 선택받은 경우라 할 것이다.

군의문사는 무엇보다 폐쇄적인 군조직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유족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은 자식이 왜?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가다. 즉 사망원인과 사망경위 및 과정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자식을 마음 편히 보내주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유족들이 제기하는 각종 의혹은 뒤로 한 채 ‘타살의 혐의가 없으므로 자살’이라는 군수사기관의 수사결과 발표는 오히려 의혹을 더하고, 국가와 군에 대한 불신만을 키울 뿐이다. 군대에서 죽는 모든 사건이 군의문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수사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하지 않으며 유족들이나 인권단체들이 보기에 객관적으로 명백하게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 오히려 타살 또는 사고사의 가능성이 있는 사건들이 ‘군의문사’ 사건이다. 즉 죽음의 책임을 군에서 회피하기 위해 사망자와 유족에게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해, 제기되는 의혹들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성급히 자살로 결론을 내려 유족들의 분노를 사는 사건들이다.


고소당하는 유족들과 사체 가압류


자식의 죽음이 군의문사 사건이 되는 것만으로도 유족들에게 큰 아픔이지만 고통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허 일병의 유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식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려고 유족들은 국가 주요기관에 진상규명을 호소한다. 국회로, 청와대로, 국방부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민원을 제기해보지만 답변은 사건이 일어난 부대로부터 민원에 대한 회신을 받는다.

이렇게 되면 유족들은 직접 사건현장을 방문해 유족 스스로의 힘으로 진상규명에 나선다. 현장을 방문해 증거를 수집하고 목격자·참고인 등을 만나 진실을 밝히고 싶지만 부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과정에서 때로는 부대쪽의 비협조적 태도로 충돌을 빚기도 한다. 지난 3월 초 12사단에서 죽은 반00 일병의 유족은 폭행·공무집행방해로 군으로부터 고소를 당했고, 지난 7월 23사단에서 죽은 박00 일병의 유족도 무단침입·공무집행방해·통행방해로 고소를 당했다. 유족들이 군으로부터 고소·고발되는 이러한 사태는 유족들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킨다.

상급기관의 재조사를 통해 진상규명을 요청하며 재조사시 믿을 수 있는 법의학자의 재부검을 통해 또 다른 증거를 밝힐 수 있을지 모른다는 실낱 같은 희망을 걸고 유족들은 장례절차를 거부하기도 한다. 자식의 죽음에 대한 진상이 규명되기 전까지는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가족들의 절규에 군에서는 사체인도소송과 가압류라는 법적 절차도 서슴지 않는다. 이제 수사가 마무리되었으니 사체의 보관비용을 가족들이 물라며 유족들을 상대로 국가가 사체인도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99년 9월 논산훈련소에서 일어난 이00 하사의 유족에 대한 사체인도소송과, 김천의료원에 사체를 보관하고 있는 98년 9월 죽은 해군 2함대 소속 김00 중위의 유족과 99년 12월 죽은 해군 2함대 소속 나00 이병 유족에 대한 사체인도소송과 집·자동차·월급에 대한 가압류는 유족의 생활기반까지 뒤흔들어 놓는다.

20년 동안 애지중지 키운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싸늘한 시신이 되어 나타난 걸 보는 부모의 심정을 사람의 언어로는 감히 표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들이 둘인 경우에도 물론 다르지 않다. 98년 9월 죽은 해군 2함대 소속 김00 중위의 동생은 지난해 8월 군에 입대했다. 지난해 11월 5군단에서 죽은 강00 하사의 동생도 현재 군복무 중이다. 그리고 둘째아들의 군 입대를 앞둔 유족들의 마음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만일 둘째마저 형과 같은 전철을 밟는다면 그 고통을 어떻게 감내할 것인가?


단 한건의 성과도 없는 국방부 특조단




사진/ '의문사특별법 개정'을 요구하는 민주화운동정신계승 국민연대의 기자회견. 군의문사 진실규명을 위해서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기간 연장과 권한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겨레 임종진 기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의 죽음과 국가와 군에 대한 분노와 불신으로 몸서리친 유족들은 지친 육신으로 병마와 싸워야 한다. 어머니와 누이가 정신분열증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아야 하고 폐암으로 쓰러진 아버지의 초췌한 모습을 감당해야 한다. 지난 90년 21사단에서 죽은 홍00 이병의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 이후 진상규명을 요구하다 2달 만에 병원에 입원해 1년6개월 동안 폐암과 싸우다 죽었고, 지난해 3월 12사단에서 죽은 김00 이병의 아버지도 지난 6월 아들의 장례를 1년3개월 만에 치른 뒤 사흘 만에 폐암으로 죽었다. 자식의 죽음이 온 가족의 고통과 죽음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인권문제에서 생명권은 매우 중요한 분야다. 하루에 한명씩 군에서 아까운 생명이 죽어간다는 사실이 사회적 이슈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98년 2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일어난 이른바 ‘김훈 중위 사망사건’이 사회문제화되었을 때 군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대거 국방부에 민원을 제기했고, 국방부는 ‘민원제기 사망사고 국방부 특별조사단’(이하 특조단)을 99년 4월에 발족해 재조사에 착수한 바 있다.

80년 이후 99년 9월30일까지 일어난 사망사고 가운데 민원이 접수된 사망사고 166건에 대한 조사를 2001년 9월까지 재조사했다. 특조단은 △유가족의 고충이해와 국방개혁 차원에서 철저한 재조사를 통해 진실규명 △법과 규정의 범위 안에서 유가족 요구수용 △유가족, 유가족이 선임한 변호사·자문위원 등의 수사기록 열람 및 현장접근 보장 △유가족쪽에서 제시한 각종 자료 재조사에 적극 반영 △유가족이 요구시 자문위원·언론인 등 참가하에 조사설명회 또는 공개토론회 실시라는 야심찬 원칙을 밝히며 유족의 편에서 진실규명을 하겠다고 했지만 단 1건도 사건의 내용이 바뀐 것은 없었고(타살의혹이 제기된 민원이 많았음에도) 해석상의 차이로 20여건을 순직처리해 유족들에게 생색만 내며, 기존 수사결과를 기정사실화하고자 했다. 더구나 특조단에서 제시한 원칙들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고, 이에 분노한 유족들이 특조단의 재조사를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사실 특조단에서 밝힌 원칙이 일반 군대 내 사망사고에서 지켜지고 특조단도 원칙대로 재조사를 했으면 군의문사 논쟁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을 것이다.


“데려갈 땐 국방의무! 죽고 나면 나 몰라라!”


‘군의문사진상규명과군폭력근절을위한가족협의회’(이하 군가협)는 무엇보다 국가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20년간 건장하게 키운 자식을 국가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라고 데려갔으니 죽음에 대해 국가가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39조 1항)라고 규정하고 있고, 병역법에서는 “대한민국 국민인 남자는 헌법과 병역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3조 1항)며 한국 남성은 일정 기간 군대에서 복무하도록 되어 있다.

군가협은 각종 집회에서 “데려갈 땐 국방의무! 죽고 나면 나 몰라라!” 한다며 국가와 군을 원망하고 있다. 이는 군 수사기관이 ‘자살’로 결론을 내리면 국가는 유족에게 어떠한 예우와 보상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즉 국가유공자등록 및 예우에 관한 법에서는 ‘자해로 인한 사망’의 경우 유공자가 될 수 없다고 되어 있고, 국립묘지령에도 ‘자해로 인한 사망’의 경우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다고 적시되어 있다. 보훈심사를 담당하는 보훈처도 유족에게 사건에 대해 한마디의 설명도 듣지 않고 ‘자해로 인한 사망’ 규정에 의거 비유공자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설령 자살이라도 사망원인이 직무와의 관련성이 입증되면 유공자로 등록될 수 있다는 최근 행정소송에서의 잇단 사법부의 판결은 보훈관련 법안의 개정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다음으로 군가협은 입증책임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타살의 혐의가 없으므로 자살”이라는 터무니없는 수사결과 발표가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부대 부적응, 가정환경 비관, 이성문제, 금전문제, 성격문제라는 천편일률적인 자살로 짜맞춰진 사망원인을 밝히며 사망자와 유가족에게 더 이상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군수사기관의 주장처럼 “그렇다면 자살이 아님을 유족이 입증하라”는 것은 현실을 도외시한 발언이다. 사고현장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고 (군사시설보호법 7조), 현장에 대한 촬영, 묘사를 금지하고(군사시설보호법 8조), 목격자와 참고인에 대한 녹취 및 진술을 금지하고, 모든 관련증거와 수사기록을 군에서 독점한 상태에서 유족이 자살이 아님을 밝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왜 자살일 수밖에 없는지를 군에서 입증해야 하고, 이를 입증하지 못하면 자살이 아니라는 수사결론을 내려야 한다.


민·관·군 함께 참여하는 조사기구를


마지막으로 군가협은 의혹이 제기된 모든 군의문사 사건에 대해 전면적인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국방부 특조단’과 같이 군만으로 구성되는 특별기구는 반대한다. 허 일병 사건에서 보이듯이 군만으로 구성된 특조단과 같은 기구로는 진실규명을 할 수 없으며 유족의 의혹을 해소할 수 없다. 과거 병역비리조사단처럼 민·관·군이 함께 참여하는 합동조사기구를 구성해 군의문사 사건에 대해 철저히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2001년 국정감사에서 육군본부는 “유가족이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 시민단체의 전문가, 유가족이 위임하는 대표가 포함된 육군본부의 상설기구가 직접 사망사고를 수사하도록 육군본부 직속 상설조사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는 답변을 한 바 있다. 이제 국방부는 군당국에서 국회에서 답변한 이러한 약속을 이행해 한점 의혹 없는 재조사를 단행해 유족들을 위로해야 한다.


남상덕/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한겨레 21 기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