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100분토론 (의문사 규정, 중단해야 하나)를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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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100분토론 (의문사 규정, 중단해야 하나)를 보고서..
  • 조희재
  • 승인 2002.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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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준 (경희대 법학부 교수, 천주교인권위원회 위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의 활동에 대해 반대하는 자들은 말한다. 현행법상의 구제절차로 해결하면 될 것이기 때문에, 별도의 위원회는 필요하지 않다고. 그렇다면 어떤 기관에서 의문사진상규명을 위한 조사를 해야겠는가? 우리나라의 수사기관은 하나 같이 의문사에 깊숙이 관여되어 있는 가해기관들 뿐이다. 그 가해기관들이 지금에 와서는 공정한 수사를 할 것이라고 국민들은 믿으란 말인가?
진상규명활동에 반대하는 자들은 위원회의 활동이 위헌이라고 주장한다. 위원회의 결정이 실제로 법원의 판결과 같기 때문에, 사법부의 독립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또한 가해자로 결정된 자들게 항소나 재심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한다. 하지만 위원회의 결정은 형사처벌이나 민사상의 손해배상을 종국적으로 명하는 법원의 판결과는 전혀 그 성격이 다르다. 진실을 규명하는 것만이 그 목적일 뿐, 가해자에게 형사처벌이나 손해
배상을 명하지 않는다. 다만 위원회의 결정은 합리적인 근거에 기초해야 한다. 위원회의 결정에는 판결로서의 효력(旣判力)이 없기 때문에, 가해자로 발표된 이들이 위원회의 결정에 합리적 근거가 없다고 믿는다면, 이것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여 법원의 판결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론자들은 위원회의 결정이 자의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자의적인 것인가? 헌법재판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위원회의 위원들은 각 사건에 대해 심의하고 심사숙고 끝에 결정을 내린다. 그 결정은 합리적인 근거에 기초한 일정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판단은 주관적이다.
다만, 그 판단이 얼마만큼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에 기초한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위원회의 결정에 대한 종국적 판단은 누가 해야겠는가? 우리 국민이 한다. 이를 위해 위원회는 최종보고서와 함께 일체의 조사자료를 국민들 앞에 공개해야 할 것이다.
반대론자들은 15년에 지나지 않는 형사소송상의 공소시효의 배제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이 보다 훨씬 그 시효기간이 긴 민사소송을 통해 구제를 받으라 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법률지식에 근거한 주장이다. 현행법상 민사소송상의 소멸시효는 가해행위가 있었던 날로부터 최장 10년을 넘지 못한다(민법 제766조 제2항 및 예산회계법 제96조 참조).
또한 위원회에서 가해자로 발표한 이들이 진정 양심선언자들과의 대질을 원한다면, 이들은 오히려 각종 시효를 배제하자는 요청에 동참해야 할 것이고, 당당하게 법원에 나서서 진술에 응해야 마땅하다. 민사소송상의 소멸시효를 배제하는 것은 현행법상으로도 가능하다. 소멸시효의 완성은 피고의 항변의 사유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피고가 이를 이유로 항변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피고가 항변하지 않으면, 법원은 위원회의 결정과 무관하게 사건을 심리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론자들은 군사독재시절에 적법절차가 있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상규명을 해야 하는 지금 시점에 이러한 적법절차가 갖추어져 있느냐가 중요한 것인데, 현행법상으로는 이러한 적법한 절차가 있으니 이에 따르면 그만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소위 적법한 구제절차는 군사독재시절에도 형식상 존재했고, 지금도 변함없이 존재한다. 의문사의 문제가 보여 주듯이 형식적인 삼권분립이나 형식적인 법치주의 또는 형식적인 구제절차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이러한 고민이 없이, 현행법의 틀만을 고수하자는 반대론자들이 진정 의도하는 바는 무엇인가?
반대론자들은 국가기관이 가해자로 결정되었을 때에 그 국가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실추를 어떻게 막을 것이냐고 우려한다. 하지만 과거의 이들 국가기관이 군사독재시절 온갖 범법행위의 주체였음을 국민들은 이미 알고 있다. 밝혀지지 않은 것은 이들 기관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 범법행위를 저질렀는가 하는 점이다. 바로 이것을 밝히는 것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과제인 것이
다. 지금에 와서라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 국정원은 과거와 같이 조작간첩사건이나 만들어내고, 무고한 시민을 고문하여 죽이던 중앙정보부 또는 정치공작이나 일삼던 안기부가 아니다. 우리 경찰이나 군도 이제는 과거처럼 무고한 시민을 사망케 하고서, 이를 은폐하기 위해 자살이나 사고사로 위장하여 발표하던 그런 곳이 아니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 이들 국가기관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만 한다. 의문사진상규명 활동에 비협조적으로 대처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적극적으로 나서서 과거의 범죄사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서, 잘못을 솔직하게 시인하고, 바로 잡아야 만이 국민의 실추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론자들이 주장하는 '현행법체계의 틀'과 소위 '적법절차' 등의 슬로건은 실상은 법률적인 논의와 무관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 주제의 100분 토론은 100년이 걸려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고 한 어느 시청자의 의견이 생각난다. 이 토론이 시청자들에게 그렇게 비춰진 까닭은 이것이 실제로는 법률적인 논쟁이 아니라, '인권의 보호'라는 하나의 가치관과 이와 배치되는 반대론자들의 숨겨진 다른 가치관의 대립이었기 때문이다. 가치관은
양보되기 어렵다. 그래서 가치관의 논쟁에서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법과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법학을 가르친다. 학생들의 대부분은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법조인이 되기를 희망한다. 나는 그들의 장래희망에 맞춰, 사법시험에서 요구되는 법률적인 형식논리를 가르친다. 그 논리의 전제는 객관성이기 때문에, 주관적인 사고나 가치판단의 문제는 교과과정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법조인이 된 후 이들은 곧 알게 될 것이다. 법률적 형식논리는
실제로는 자기가 추구하고 비호하고자 하는 일정한 주관적 가치관을 관철시키기 위한 훌륭한 무기라는 사실을.
객관성이란 단지 포장된 겉허울로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은 이미 그 무기가 자신으로부터 떼어낼라야 떼어낼 수 없는 자기 자신의 일부가 되어 버렸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 나는 아직 순수한 이들 젊은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