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과 인권] 여론재판에 의한 두번의 사형선고
상태바
[사법과 인권] 여론재판에 의한 두번의 사형선고
  • 조희재
  • 승인 2002.09.2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도행
한 가족의 평범한 가장이었던 저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죽였다는 범인으로 몰려 7년 동안 재판을 받아 왔습니다. 그러는 동안 사형, 무죄, 파기환송, 두 번째 무죄, 그리고 검찰의 재상고, 사건발생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과사의 기로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첫 번째 무죄를 받고 무죄석방 되었을 때 저에 대한 기사를 처음 보았습니다. 거의 모두가 구속 당시 저를 범인으로 단정지은 기사들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저희 가족에 대해 편파적이고 왜곡된 기사도 있었습니다. 이를 언론중재위원회에 문제제기하자 '일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더 이상 지킬 명예가 없지 않는가'하면서 오히려 나무랐다는 것에 또 한번 절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2년여에 걸친 오랜 재판 끝에 두 번째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이는 동일한 사건에 대해 사형, 무죄, 파기가 엇갈리던 어려운 사건에 대해 고등법원이 상세한 심리 끝에 내린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사건 초기 언론의 마녀사냥식 흥미위주 보도로 사건이 왜곡되고 그로 인한 지울 수 없는 선입견을 바로잡는데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반증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두 번째 무죄 판결문에서는 "범인이라고 인정하기에는 충분한 증거도 없고 범죄 증명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무죄라고 판단될 소지가 더 많다고 하여 원심의 '사실 오인이 있어 무죄를 선고'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보도태도는 너무나도 가볍게 '의심의 여지'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하고, 심지어는 '핑퐁재판될 듯'이라는 기사제목을 서슴치 않고 내보냈습니다. 마치 소설을 쓰듯 추측하고 흥미위주의 기사로 판결의 의미를 왜곡하였습니다. 저는 '여론재판'에 의해 두 번의 사형선고를 받은 심정입니다. (중략)
언론의 이러한 보도태도로 인한 저의 고통만큼이나 심각한 폐해는 평범한 이웃들인 일반 시민들이 근거 없는 불신과 선입견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언론의 보도태도를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핑퐁재판'이니 '한국판 OJ 심슨 사건'이니 했던 보도내용의 망령이 아직도 의심에 사로잡힌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으로부터 저를 자유롭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언론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러나 언론이 사실에 입각한 판단을 보도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모든 언론이 그러했던 것은 아닙니다. 수만 여 페이지에 이르는 재판기록을 검토하며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노력을 했던 보도도 있었습니다. 또한 이 사건에 대한 보도태도의 심각성을 제기한 비평기사도 있었습니다. 언론사의 관행상 출입기자들이 계속 교체되면
서 재판의 쟁점이나 사건내용에 대해 깊숙이 파고들 수 없다는 제약도 일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성없이 여론몰이 식으로 기사를 쓰는 것은 제 사건을 계기로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원의 재판을 다시금 여론재판하는 잘못된 관행도 바뀌었으면 합니다.
또 다른 제2 제3의 이도행이 만들어지지 않기 바라는 간절한 마음뿐입니다. 감사합니다.
* 지난 9월 13일 열린 "언론피해구제활동을 위한 언론인권센터 후원행사"에서 언론보도 피해사례로 발표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