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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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천년에
  • 김덕진
  • 승인 2000.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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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잡지 야곱의 사다리 1월호 김형태 변호사
새천년에

경향잡지 - 야곱의 사다리 2000년 1월호 김형태(변호사)

When I find myself in times of trouble
내가 괴로움에 빠져있을 때

Mother Mary Comes to me
어머니 마리아께서 내게 오셨지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그리고는 지혜의 말씀을 주셨어 자연스럽게 존재하라고

And in my hour of darkness
내가 캄캄한 암흑 속에 있을 때

She is standing right in front of me
그분은 내 앞에 바로 서계셨어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그리곤 해주신 지혜의 말씀 그냥 존재하라고

엊그제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다가 아버지께로부터 한 말씀 들었습니다. 동양철학을 전공한 김용옥이란 이가 나와서 노자 강의를 하다 말고는 느닷없이 팝송을 불러 대는 것이었습니다. 저 유명한 영국의 비틀즈라는 그룹의 ‘렛 잇 비(Let it be)’라는 노래였습니다. ‘그냥 존재해라.’고 직역할 수 있을까. 아무튼 번역하기에 쉽지 않은 문장, Let it be. 그분은 노자의 중심사상인 ‘자연’이란 말을 ‘Let it be’라는 노래를 직접 불러가며 설명을 했습니다. '자연’은 산과 들, 나무, 짐승, 돌처럼 사람에 대비되는 어떤 물건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본래의 성품대로 그렇게 존재한다.’는 뜻이라고 풀이했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억지로 인위적으로 하지 않는 것, 그냥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 우리가 괴로움과 암흑에서 벗어나는 길은 바로 이것이라고 성모 마리아께서 지혜의 말씀을 주셨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어머니 마리아께서는 날마다 전세계 수많은 사람이 부르고 있는 이 노래 속에서 우리에게 지혜의 말씀을 주십니다. ‘그냥 존재하라.’고. 선과 악을, 지혜로움과 어리석음을, 귀함과 비천함을 분별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존재하라. 아버지께서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던 이 세계가 이렇게 괴로움과 암흑 속에 빠져든 것은 바로 아담이 선과 악을 구별할 줄 알면서부터라고 창세기에 이미 써있습니다. 벌거벗은 몸이 아버지께서 주신 본래의 모습인데도 이를 부끄러워하고 옷을 만들어 입으니 자연을 떠나 인위가 시작되었습니다.
지난달에 히말라야산 기슭을 왔다갔다 했었습니다. 안나푸르나 봉우리가 눈앞에 보이는 3200미터 고지에 올라 옷을 모조리 벗고 알몸으로 안나푸르나를 향해 절을 올렸습니다. 그때 나는 아버지께서 주신 본래 모습대로‘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주신 모습 그대로를 떠나니 눈물의 씨앗이요, 모진 고난의 시작입니다. 옷 점잖게 차려입고 외모와 마음을 남 보기 좋게 꾸미고 가장하니 남보다 잘나 보이는 속임수가 시작됩니다.

중용(中庸)도 첫머리에서 그리 가르칩니다.
天命之謂性(천명지위성)이요(아버지께서 주신 것을 본성이라 하고)
率性之謂道(율성지위도)요(이 본성을 따르는 것이 도요)
修道之謂敎(수도지위교)라(도를 닦는 것을 가르침이라 한다).

새로운 천년이 시작된다고 온통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그러나 시끄러운 것은 뭔가 속임수요 우리의 넋을 빼놓는 여우의 잔꾀입니다. 저 동해에 떠오르는 해는 아버지께서 보시기 좋았던 그날 아침부터 이제까지 수십억 번을 저리 떠올랐는데 2000년 1월 1일 아침의 해가 무어 그리 특별하다고 바닷가로 떼지어 몰려가고 수천만 원짜리 호텔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는지 알 수 없습니다. 무엇이고 사람의 손을 타면, 인위가 되면 괴로움이 시작됩니다. 지난 1000년 동안을 따져보아도 그렇습니다. 가장 잔혹하고 길었던 전쟁은 대부분 종교분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너희들은 모두 아버지의 자녀이니 서로 사랑하고 한 몸이 되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둘러싸고 서로 자기가 정통이요 너는 이단이라며 죽이고 죽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본 모습을 버리고 사람들이 제 머리로 선악이니 진리를 구별하는 데서 괴로움과 암흑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 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는 우리에게 타이르십니다.
Let it be, 아버지께서 주신 본 모습대로 그냥 존재하여라. 네 작은 머리로 힘써 무엇을 판단하고 분별하고 무엇이 옳다 주장하지 말고 그냥 존재하여라. 모든 존재 자체는 사랑이니. 지난 100년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공산주의의 시작과 몰락입니다. 본래 공산주의란 생각은 돈 많은 사람이 없는 이를 착취하지 말고 다 같이 평등하게 살자는 데 있습니다.
그 목표는 지극히 아름답고 이상적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조건 자체가 이기적이어서 이를 용납하지 못하는데도 인위적으로 가진 이의 재산을 빼앗고 분배를 공평히 하려다 보니 생산성은 극도로 떨어지고 새로운 지배계급이 생겨나 결국 100년이 못 가서 끝장이 나고 말았습니다. 계급을 없애겠다는 생각도 그것을 인위적으로 고집하는 순간에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말았습니다. 마치 자신만이 아버지의 진정한 자녀요, 스승님의 진정한 제자라고 고집하여 분란이 끊이지 않았던 저 종교전쟁 시대와 꼭 같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본성을 떠나 자기를 내세워 무엇을 주장하고 도모하고 획책하는 것은 모두 고통의 시작일 뿐입니다. 노자는 사람들이 현명한 것을 숭상하다 보니 서로 저 잘났다고 싸우고, 얻기 어려운 물건을 귀히 여기다 보니 도둑질을 한다고 했고, 제대로 행하는 사람은 그 흔적도 남기지 않고, 제대로 말하는 사람은 시비를 판별하여 꾸짖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가르침을 주신 지 2000년, 사람들에게는 그 어느 성인에게서도 선한 것, 현명한 것, 아름다운 것을 구할 것이 없습니다. 제가 옳다고, 제가 선하다고, 제가 세상을 구한다고 ‘자기’를 내세우고 주장하고 판단하다가 너와 나 모두를 괴로움 속에 빠뜨리게 한 것이 지난 2000년의 세월입니다. 저와 남을, 삼라만상을 나쁘다느니 모자란다느니 탓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불쌍해 하고 같이 울어주기를 앞서가신 스승님처럼 할 때 새 천년은 아버지께서 만드신 첫 세상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오늘 나는 노래방에 갈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신 노래를 이웃들과 신나게 불러제낄 것입니다. 내가 괴로움과 암흑 속에 있을 때 어머니 마리아께서 내게 오셨지. 그리고는 지혜의 말씀을 하셨어.

Let it be
자연스럽게 존재하라고.’

<인권위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