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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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00.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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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잡지 야곱의 사다리 3월호 김형태(변호사)
피쏘

경향잡지 - 야곱의 사다리 3월호 김형태(변호사)

다시 봄입니다.
ꡐ제비 앞장세우고 봄이 봄이 와요ꡑ. 동무들과 한 목소리로 노래부르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이제 앞장설 제비는 없어도 다시 돌아오는 봄이 너무 반갑습니다.
전에는 천지간에 흰 눈이 가득하고 얼음 꽝꽝 어는 겨울이 그저 좋았는데 언제부터인가 봄이 점점 좋아집니다. 개나리 진달래가 온 산을 물들이는 음력 이월도 좋고, 벌 나비 꽃을 희롱하는 춘향이의 춘삼월도 좋고, 송홧가루 날리는 윤사월도 좋지만은 아직 언 땅 찬바람 속에서 밝은 빛이 먼 하늘 가득히 차오르는 입춘 무렵이 참 좋습니다.
엊그제 ꡐ입춘대길(立春大吉)ꡑ이라는 글귀를 대문에 붙였습니다. 농민운동하다 국회의원도 해보고 빨갱이로 몰려 감옥에도 갔다 온 분이 써주신 글입니다. 나무대문이 아니고 철대문인 것이 좀 아쉽지만 척 붙여놓고 보니 골목 안이 훤합니다.

장자도 이 봄의 기운을 빌려 깨달음을 얻었을까. 「소요유」(消搖遊)에 이리 썼습니다. ꡒ아지랑이랑 티끌이랑 살아있는 것들이 서로 숨을 나눈다. 하늘의 저 푸른 빛은 제 빛깔일까. 그 멂이 끝간 데가 없어서 푸른 것일까.ꡓ 아지랑이를 들판의 말[野馬]이라 한 비유가 멋집니다.
이제 이 땅도 조금 있으면 얼음이 풀리고 들판의 말 아지랑이가 이 천지간의 산 것들과 숨결을 나누며 저 파란 하늘 태허(太虛)를 향해 피어오를 것입니다. 살아있는 만물들이 태허이신 아버지를 향해 숨결을 나누는 봄 들판은 그야말로 ꡐ존재ꡑ의 잔치판입니다. 소유와 경쟁의 싸움판이 아닌 존재의 잔치판. 아버지께서는 어떤 이름도 소유하기를 마다하시고 ꡒI am that I am.ꡓ(나는 존재다.)라고만 모세에게 이르시지 않았습니까. ꡐ산 것ꡑ인 우리 인간들도 다른 만물들과 숨결을 나누며 존재 자체이신 그분께로 나아갑니다. 최신 생물학에 따르면, 우리 몸은 그 구성원자들의 98퍼센트가 해마다 교체됩니다. 5000여 종의 단백질 하나하나가 내 몸 밖의 다른 것들과 서로 맞바꾸기를 몇천 번을 한답니다.
쉽게 말해 내가 숨쉬는 공기와 먹고 마시는 물과 밥과 생선과 고기를 통해 단백질을 교환한다니 내 몸을 나만의 것이라 부를 수가 없습니다. 생선의 살이 내 살이요 내 살이 똥오줌으로 곡식의 낟알이 됩니다. 저 산과 들의 풀과 나무, 심지어는 바닷속 조류, 광합성을 하는 세균이 내뿜는 산소를 내가 마시니 장자가 말한 대로 살아있는 것들이 서로 숨을 나눕니다.

이 존재의 새 봄에 무서운 사진을 보았습니다. 어느 시골집 안방 문 위에 걸어둔 사진들처럼 빛이 바랜 순박한 이들의 사진. 때는 1951년 4월 어느 봄날이고 헐벗은 산야를 등뒤로 머리를 박박 깎은 노인이며 다양한 연령층의 솜바지 입은 촌사람들 너댓 그리고 삽을 들고 서있는 촌아낙, 그 옆의 군인, 그들의 얼굴에는 미소까지 머금어 마치 무슨 기념 촬영이라도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의 사진이 하나. 그리고 다음 사진에는 웃고 있던 촌사람들이 느닷없이, 스스로 판 흙구덩이 속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모습. 마지막 사진은 그들을 향한 군인들의 총격. 얼마 전 미국 정부가 공개한 비밀문서와 사진들입니다.
그 사진을 실은 잡지사의 기자는 지난 1월 중순 대구 부근 한 광산 갱도에서 가득 메워진 수백 수천의 유골을 찾았습니다. 대전형무소 5000명, 거제도 700명, 제주 섯알오름 200명, 충북 영동 300명, 남원, 거창, 산청, 함양, 다랑쉬…. 군인, 경찰, 미군에 의한 학살 현장의 지명이 거기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대전형무소에서 이번에는 퇴각하던 인민군에 의해 죽은 1300명. 이 기사와 처형 사진, 인골 무더기 사진 들을 보며 자꾸 구역질이 나왔습니다.
10여 년 전 김지하 시인은 이미 사진을 보지 않고도 비밀문서를 보지 않고도 시인의 감수성으로 느끼고 썼습니다.
ꡒ5년 전 내가 무릉계에 갔을 때 삼화사 너럭바위 입구에서부터 내 귀를 때리며 심장을 조이며 내 뇌수 전체를 뒤흔드는 총소리, 포탄소리, 비행기 폭음소리, 아우성 소리, 그중에도 견딜 수 없었던 그 어버이를 부르는 아이들 울음소리, 그리고 이상하게 떨리던 여인들의 귀곡성, 귀곡성, 귀곡성의 끝없는 환청, 머리 뒤를 잡아끄는 보이지 않는 손길들, 다리를 잡아당기는 물과 바위와 잡초들의 기괴한 엉킴. 숯처럼 마치 썩어가는 시체처럼 거무칙칙한 절벽에서 빛나는 음산한 햇빛… 나는 질려버렸다.ꡓ 그래서 그는 그 원한을 풀어주려 이런 시를 썼습니다.
ꡒ두타산은 일곱 개의 피복창이 있었다고 하더라 / 오십 개의 우물터가 있었다고 하더라 / 오천 명이 한날 한시에 총 맞아 죽었다고 하더라 / 피쏘 한복판에 물 못 들어가는 큰 구멍 하나 있다 하더라 / 그 구멍 속에 한 여자가 발 거꾸로 해 지금도 떠있다 하더라….ꡓ
비밀 해제 사진 속에 삽 들고 웃고 서있는 저 촌아낙이 그 구멍 속에 발 거꾸로 해 지금도 떠있는 것일까. 곧 죽을 줄 모르고 웃고들 있던 저 촌부들 사진은 왜 50년 동안 비밀의 어두움 속에 숨겨두었던 것일까. 저 군인은 왜 저 박박 깎은 노인네 옆에서 저다지도 환히 웃고 있는 것일까. 여자가 발 거꾸로 떠있는 피쏘는 이땅에 또 얼마나 있는 것일까. 이 증오와 원한은 그저 사오십 년 전의 옛일일 뿐 이제는 서로 더불어 살아가는 상생의 시대가 되었는가. 사진을 들여다보면 물음에 물음이 꼬리를 잇습니다. 그리고 이 물음은 너와 나 모두에게 던져질 물음이요 거기에 속시원한 답을 찾아내야 할 책임이 너와 나 모두에게 있습니다. 그러하지 않는 한 저 사진 속의 촌부들은 우리 앞길을 저주하는 중음신으로 떠돌 것이요 우리와 우리 자손 역시 저 피의 역사를 반복할 것입니다.
아직도 북한과 화해를 말하면 좌익 빨갱이요 선거 때만 되면 사람의 됨됨이와 생각은 제쳐놓고 경상도 사람인지 전라도 사람인지를 따지는 세상입니다.
이념과 지역을 중심으로 한 편가르기와 증오가 남아있는 한 저 총살 사진은 언젠가는 다시 되풀이될 현재 진행형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를 꾸짖으셨습니다. ꡒꡐ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조상들이 예언자들을 죽이는 데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ꡑ고 떠들어댄다. 이것은 너희가 예언자를 죽인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것을 스스로 실토하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일을 마저 하여라ꡓ(마태 23,30-32).
저 들풀과 숨결을 나누고 물고기와 살을 나누어야 겨우 살아갈 수 있는 우리가 어찌 물고기와 쌀과 형제들을 나와 종이 다르다고 이념과 고향이 다르다고 차별하고 미워하고 죽일 것입니까. 스승님, 저희가 그렇게 되지 않게 하여지이다.

<인권위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