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와 소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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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와 소인배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01.0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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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잡지 야곱의 사다리 2월호 김형태 변호사
군자와 소인배

경향잡지 - 야곱의 사다리 2월호 김형태(변호사)

군국주의 일본에서 이런 노래가 유행했답니다. ꡒ바다에 가면 물에 잠긴 주검, 산에 가면 풀 속에 묻힌 주검….ꡓ 일본제국과 천황을 위해 바다에서 산에서 주검이 되자는 선동조의 노래입니다.
허리우드나 홍콩의 폭력영화에서도 죽음은 밥 한끼 먹는 것만큼이나 간단하고 하찮아 보입니다.
요즈음 아침부터 저녁까지 주검들을 봅니다. 비록 사진을 통해서지만 볼 때마다 때로는 눈으로 때로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립니다. 지난 시절 민주화운동을 하다 공권력의 개입으로 스러져간 죽음의 원인을 밝히라는 특별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일을 하느라 연초부터 수많은 죽음들을 가지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씨름을 합니다.
사람들은 잘 살아보려고 사회를 이루었습니다. 작게는 부부로 이루어진 가정에서부터 여기에 기초한 친족, 지역사회, 각종 이익집단, 그리고 국가. 잘 살아보려고 만든 조직들이 거꾸로 그 구성원인 사람들을 괴롭히고, ꡒ바다에 가면 물에 잠긴 주검, 산에 가면 풀 속에 묻힌 주검ꡓ 하는 식의 노래까지 만들어가며 죽으라고 꼬드깁니다. 심지어는 물고문 전기고문으로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부부싸움, 친구간의 다툼, 집단 안의 알력, 그리고 국가간의 전쟁에 이르기까지 그 원인은 똑같습니다.
경찰이 물고문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또 쉽게 단죄하지만 사실 아침에 밥상머리에서 일어나는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도 그 근본원인은 같습니다. 이익의 대립 또는 생각의 차이.
어느 다툼이고 그 근본은 내가 너보다 더 가지겠다거나 아니면 내 생각, 내 방식이 옳다는 자기 주장에서 나옵니다. ꡒ나는 이익에 관해서는 초연해.ꡓ 하는 이들일수록 더 무서운 독선으로 남을 힘들게 합니다. 도덕군자며 종교인들이 흔히 그렇습니다.
명나라 때 선사 감산 스님은 노자의 「약기지(弱其志)」를 해석하면서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ꡒ소인배들은 닭이 울자마자 일어나 부지런히 이익을 도모하고 군자는 닭 우는 소리에 일어나 부지런히 명예를 꾀한다.ꡓ
군자나 소인배나 똑같습니다. 이익이며 자기 견해만을 꾀하니 그렇습니다. 그러지 말라. 뜻을 약하게 해라[弱其志]. 더 쉽게 말해 네 주장을 죽이라셨습니다. 내가, 우리가, 우리 인류가, 자신의 이익과 자기 생각을 꺾을 줄 모르는 한, 산이며 바다에는 주검이 가득하고 부부간, 모녀간의 싸움은 그칠 날이 없을 겝니다.
연초에 유언장을 써보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이익 따라가고 내 뜻 내세웠던 소인배이며 군자인 나는 이렇게 참회했습니다.
ꡒO형, 눈 덮인 북한산 문수봉에 둥근 달이 걸렸습니다. 산도 달도 말이 없습니다. 수십 년을 지껄여댄 말이면 너무도 충분합니다. 한번 일어났다 이제 흩어져야 하는 구름 신세에 또 무슨 마지막 말이 필요할 것입니까. 주절주절, 이 마지막 말은 아직도 ꡐ나ꡑ를 놓지 못하고 해대는 구차스런 변명일 뿐입니다. 저 산이며 달처럼 그저 조용히 갈 일입니다. 하지만 쌀이고 고기고, 어찌됐든 남의 목숨 먹어야 겨우 지탱되는 것이 이 ꡐ존재ꡑ 자체의 가련함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도 이렇게 중얼거림을 불쌍히 여겨주시기 바랍니다.
O형, 뒤돌아보면 이 짧은 인생에 청할 용서가 너무 많습니다. 검은 색 골판지 표지에 묶은 누런 시험지에 선생님으로부터 색연필로 별을 그려 받던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그간 수도 없이 치러온 시험에서, 여러 모습의 경쟁에서 내 발 아래 치인 친구들이 그 얼마입니까. 초등학교 2학년 1학기 때 반장 녀석은 잣대를 들고 책상 위로 뛰어다니며 아이들에게 군림했었지요. 그때 ꡐ정의의 사도ꡑ로 나선 덕에 2학기 선거에서 압도적 표차로 반장이 된 날, 나는 신발주머니 휘두르며 어머니께 승전보를 알리러 뛰어갔지요. 이제 돌아보면 나에게, 아이들에게 나쁜 반장으로 찍혀 투표에 진 그 친구가 느꼈을 좌절감과 슬픔 앞에서 마구 우쭐댔던 내 꼬락서니가 참으로 슬픕니다.
요 몇 년 전에는 내가 몸담아온 이른바 인권운동판에서 한 후배를 모질게 대했고 파업유도 특검 때는 선배에게 그리했었어요.
그 후배일로 인해 많은 내 이웃 식구들이 나에 대한 칭찬을 거두었고, 그 때문에 큰 고통을 겪었지만 한편, 사람들의 칭찬에 해해거리고 비난에 슬퍼할 일이 아니라고 한 수 배웠지요. 어찌되었든 나를 위해서가 아니고 그 후배 자신을 위해서 이제는 마음이 편해지기를 빌 뿐입니다. 파업을 유도했던 검사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그때 내 소신을 꼭 그런 모진 방법으로 표현했어야 했는지.원칙은 원칙이고 생각과 입장이 다른 이들에게도 웃음을 보내지 못한 것은 두고 후회가 됩니다.
O형, 시간과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이 ꡐ나ꡑ라는 ꡐ존재ꡑ 자체로 고통받은 이는 누구보다도 내 가까이 있던 부모 처자, 친구들이겠지요. 새벽 산책 나가다 골목에서 마주친 술 취한 아들의 정신없는 모습에 가슴 철렁했을 늙으신 아버지. 비틀거리며 어디 길 건너다 차에 치이지 않았을까, 걱정으로 꼬박 밤을 세웠을 처에게는 몇 생의 다른 삶을 통해서도 그 고통을 다 기워갚지 못할 것입니다.
O형, 예수며 노자, 석가모니 부처님 같은 스승님들 따라 길 나선 지 오래, 이제 그 길의 끝에 섰습니다. 스승님 제자들의 숫자를 다 더하면 전 인구수보다 많다는 이땅이지만 저마다 살았을 제도, 복 받고 이승을 떠나서도 극락정토, 천당에서 이 ꡐ나ꡑ란 존재가 영원히 이어지길 바라니 세상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ꡐ존재ꡑ에게는 존재하는 것 자체가 최대의 목표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참 슬픈 일입니다.
수십 년 전 어느 날 밤 어머니 아버지가 나눈 사랑으로 시작된 ꡐ나ꡑ도 이 존재의 한계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으나 바야흐로 이제 그 슬픔의 문턱을 넘어설 때가 되었습니다. 본래 이 내 몸뚱이도 저 햇빛이며 곡식이며 물고기의 그것을 빼앗아 잠시 맡아가지고 있던 것이요, 이 주절거리는 생각이며 지식이란 것도 ꡐ내ꡑ 것이랄 것이 어디 따로 없습니다. 모두 언젠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이요, 과거에 누군가 했던 것들입니다.
이제 다 돌려주겠습니다. 이 내 몸은 흙이 되고 물이 되고 공기가 되어 저 산의 밤나무를 키우고, 내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끄적대고 지껄였던 생각들은 이 밤 어느 침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랑 행위를 통해 태어날 어느 아이에게서 다시 재현될 겁니다. 이 한계의 슬픔에 묶여 지내던 존재 ꡐ나ꡑ가 사라지면 거기는 천국도 지옥도 해탈도 없고 ꡐ더 큰 나ꡑ의 품일 것입니다.
O형, 엊그제 징그럽다고 눌러 죽인 바퀴벌레와 나의 위로를 바라던 이들에게 내가 용서를 구하더라고 전해주십시오.ꡓ

<인권위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