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북한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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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북한산에서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01.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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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잡지 야곱의 사다리 3월호 김형태 변호사
겨울 북한산에서

경향잡지 - 야곱의 사다리 3월호 김형태(변호사)

지난 겨울은 눈 산을 헤맸습니다. 하루 걸러 내린 눈이 무릎까지 쌓인 이 계곡 저 봉우리를 헤매 다녔습니다.
해질 무렵 적막강산 어느 골짝 눈 속에 홀로 앉아 저녁예불 범종소리를 들었습니다. ꡐ뭇 중생들이 번뇌에서 벗어나지이다.ꡑ 기원을 담은 저 종소리를 눈 덮인 산 속을 날아다니는 까마귀들과 내가 같이 들었습니다. 저 까마귀는 먹이를 찾아 잿빛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이 하늘이 주신 제 본성이요, 나는 산속에 앉아 내 돌아가는 곳 어디인고 찾음이 하늘 주신 사람의 본성입니다. 天命之謂性(천명지위성). 「중용」의 공자님 말씀대로 아버지께서 주신 것이 본성이라.
삼긴 대로의 이 모습이 당신이 주신 것이니 주제넘게 나를 버리려고 발버둥칠 일도 아닙니다. 날 때 되었으니 났고 먹을 때 되었으니 먹고 사랑할 때 되었으니 사랑하고 이제 갈 때 되면 부르시는 대로 조용히 가면 될 일입니다. 이를 ꡐ순명ꡑ이라고 거창하게 이름붙이는 것은 건방진 일입니다.
순명이라니? 순명 안하고 달리 다른 길이 있습니까. 아버지 앞에 감히 순명 어쩌고 떠벌리는 일 자체가 인간들이 짓는 가소로운 일입니다.
순명이라 이름붙이니 순명 안하는 자가 나타나고 그래서 그를 단죄하고 가르칩니다. 아버지 앞에서 누가 감히 순명하는지 않는지를 판단할 것입니까. 성(聖)과 속(俗)을 나누고 주일과 평일을 나누고 기도하는 시간과 돈 버는 시간을 나누고 성인과 죄인을 나누는 이 그 누구입니까. 밥 먹고 똥싸고 일하고 사랑하는 일 모두가 아버지 주신 천명(天命)이요, 어디 달리 따로 시간을 내어 사막에 가서 천명을 받을 일도 아닙니다.
이 못나고 잘난, 삼긴 모습 그대로 아버지 자녀요, 이 괴롭고 기쁜 세상 모습 그대로 아버지 지으신 세계입니다. 이를 알기만 하면 그것으로 족할 뿐입니다. 공자님은 「역경」에서 이리 탄식하셨습니다. ꡐ百姓日用而不知(백성일용이부지)ꡑ 백성들이 날마다 이를 사용하면서도 이를 모른다.
이 모습 그대로 아버지의 자녀이고 그래서 날마다 아버지의 사랑 속에 사는데도 우리는 이를 모릅니다.
내 눈앞에 눈 쌓인 나무들이 빼곡하고 까마귀 소리 내 귀에 가득하고 범종소리 내 마음을 채웁니다.
ꡐ萬物竝作 吾以觀其復(만물병작 오이관기복)ꡑ 온갖 만물이 내 눈앞에 가득하지만 나는 그것이 돌아감을 보고.
ꡐ夫物芸芸 各歸其根(부물운운 각귀기근)ꡑ 저 만물이 무성하지만 각기 그 뿌리로 돌아간다.
내 눈앞에 눈 쌓인 나무들이 빼곡하고 까마귀 소리 내 귀에 가득하고 범종소리 내 마음을 채우지만, 나도 저 눈도 나무도 까마귀도 종소리도 모두 근본이신 아버지께로 돌아가니, 그 근본 앞에 별스런 차별이며 분별이 있을 리 없습니다.
북서쪽 골짜기에는 바람에 눈이 몰려 허벅지까지 쑥쑥 빠졌습니다. 간신히 발자국 하나 쫓아가다 그만 그 발자국도 사라져버렸습니다. 이 사람이 어디로 간 걸까. 되돌아갔나 아니면 근본으로 돌아갔나. 별수없이 어림짐작으로 새 길을 내며 눈 속을 나아갑니다.
얼음 두텁게 쌓인 돌 틈 사이로 단풍나무 하나가 올라와 있고 그 가지에는 지난 가을 시든 잎새 몇이 삭풍 속에 떨고 있습니다. 떨고 있다? 저 잎새는 제가 떨고 있단 생각도 없이 그저 저리 있을 뿐인데 지켜보는 내가 주제넘게 떨고 있다느니 어쩌니 하며 판단을 내리고 생각의 잣대를 들이댑니다. 세상 모든 일을 제 중심으로 보는 못된 버릇은 이 까마귀 떼 떠도는 눈 천지 속에서도 여전합니다. 아, 그렇지만 이래도 이 못난 모습이라도 나는 당신의 자녀요 이런 생각을 내가 못해도 못 깨달아도 나는 여전히 아버지의 품안에 있습니다. 아버지의 품안에 있기 때문에 ꡐ내ꡑ가 즐거운 것이 아니고, 그저 그냥 그렇게 나는 당신 품에 있습니다.
동장대에 이르니 해는 건너편 의상봉 아래 걸려 막 사라지려 합니다.
나는 이 산속에 홀로 앉아 저 해를 바라보며 ꡐ各歸其根(각귀기근)이라. 뿌리로 돌아간다, 해가 진다.ꡑ며 쓸쓸해 하지만 저 의상봉 너머 지평선 아래 동네에 사는 중국 사람이며 태국 사람들은 희망에 찬 아침해라느니 어쩌고 하며 좋아할 테니 하늘 아래 절대(絶對)는 없습니다. ꡐ사기꾼 너는 절대로 안돼. 빨갱이 생각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어. 죄인은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어.ꡑ라고 누가 감히 외칠 것입니까.
완전히 어둠이 내린 산골짝을 미끄러지고 넘어져가며 내려오다가, 내가 겪은 수많은 죽음들을 생각하며 ꡒ부디 편히 가시라. 원한도 기쁨도 다 흩어버리고 아버지 품에 계시라. 아니 계시는 것을 넘어서서 아버지와 하나 되시라. 아니 하나가 된다거나 무엇이 될 ꡐ나ꡑ가 따로 없으리라.ꡓ 빌었습니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시가지는 아파트며 집이며 길이며 차량 불빛으로 휘황찬란합니다.
아까 눈 속에 주저앉아 듣던 예불 종소리와 바위틈에서 밤이나 낮이나 가지에 매달려 흔들리던 마른 잎새는 이제 내가 저 아래로 내려가도 여기서 여전할 것입니다. 저 아래 중학생 아들 녀석의 등짝은 날로 넓어져 때 밀어주기 그럴 듯해지고, 꼭 그만큼씩 늙으신 아버지의 몸과 마음은 날로 자그마해져 갈 터입니다. 처는 왜 혼자 밤중에 눈 산을 돌아다니느냐고 걱정 어린 핀잔을 줄 테고 한없이 큰소리 뻥뻥 치는 나의 숨은 잘못을 아는 이들은 나를 욕하고 비웃을 것입니다.
그래도 나는 엘리야를 만나고도 산을 내려가신 예수님을 따라 이 눈 덮인 산을 내려갑니다.

<인권위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