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소송으로 이어가는 인권의 기록
<낮은 자를 위한 지혜> 읽고
배여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이사)
내가 아는 단어 중 가장 그럴싸해 보이는 단어의 대표주자를 꼽아보라면 ‘천부인권’을 선택할 것이다. 天賦人權. 하늘에서 인간에게 부여한 권리, 좀 풀어 말하면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권리라는 것인데, 얼핏 보면 굉장히 고상한 느낌이 든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내게 부여되는 권리라니. 현실에서의 인권은 투쟁의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 같은데 말이다.
인권운동은 법률과도 많은 싸움을 벌이고는 하는데 ‘법률’이라고 하니 이 또한 참 고상한 느낌이 든다. 앉아서 법조문을 해석하고, 허점들을 발견하고, 법률논리를 개발하는 등 마치 투쟁의 대상이 수천 수만의 ‘글자’인 것 같은 착각도 든다. 책 <낮은 자를 위한 지혜>는 이러한 착각이 정말 착각이라는 것을, 편견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소송’이란, 위키백과에 따르면 “사실관계나 법률관계에서 대립하는 당사자 사이의 권리나 의무 등에 관한 분쟁을 재판에 의하여 법률적으로 해결하여 구체적인 법률관계를 확정하여 줄 것을 법원에 요구하는 법률적 절차”라고 정의된다. 인권운동에서 이 ‘소송’이 많이 진행되곤 하는데 그 이유는 구체적인 법률관계가 어떤 내용으로 확정되느냐에 따라 인권피해 당사자들에 대한 인권 보장이 법적으로 보장이 되느냐 마느냐 갈리기 때문이다.
인권은 법조문 안에 가둘 수 없는 것이지만, 현실에서 법률로서 보장받는 인권은 매우 중요하다. 법이 사회적 인식을 만들어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익소송을 통해 법률로서 최소한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인간의 권리를 요구한다. 즉, 공익소송은 이 땅의 소수자, 사회적 약자들이 법을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찾는 과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책 <낮은 자를 위한 지혜>는 유현석 공익소송기금으로 진행된 공익소송들의 기록이다. 고 유현석 공익소송기금은 1970년대 남민전 사건, 1980년대 광주 민주화 운동, 1990년대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등에서 굵직한 변론으로 평생을 인권변호사로 헌신하신 고 유현석 변호사가 2004년에 선종한 뒤 유족이 출연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2009년 5월 천주교인권위원회가 출범한 공익소송기금을 말한다. 이 기금으로 수행된 공익소송은 무려 90건이 넘는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이 책의 머리말에서 “공익소송기금 덕분에 묻힐 뻔했던 인간의 소중한 권리가 빛을 볼 수 있었고, 다양한 사연으로 고통받고 있던 소수자·약자들이 조금이나 힘을 낼 수 있었다”고 밝힌다.(6쪽)
이 책은 수용자에 대한 편지검열, 교도소 서신 발송 불허, 수형자의 참정권 보장, 교정시설의 과밀수용, 경찰서 유치장의 개방형 화장실, 유치장 강제 속옷 탈의, 노동자의 알 권리, 조작 간첩단 재심 및 배상, 보안관찰법, 집회의 자유, 노동자에 대한 위치추적, 장애인의 공정한 임용 기회, 트렌스젠더 성별 정정, HIV 감염인의 노동권, 이주민에 대한 차별,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 등 한국 사회에서 뜨겁고 첨예한(했던) 인권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공익소송의 기록이라고 해서 법률적인 쟁점들만을 딱딱하게 나열하지 않는다. 공익소송 사건 당사자들의 삶의 기록은 물론 변호인들의 고뇌, 인권활동가들의 투쟁 과정 등을 함께 기록하여 공익소송을 법률의 틀에만 가두지 않았다.
공익소송의 기록은 법률투쟁의 기록이다. 우리 사회의 소수자와 약자, 인권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공익소송 과정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된다. 또 공익소송의 기록은 연대의 기록이다.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 인권 피해자들과 법률가들의 연대, 그리고 사건과 사건 간의 연대이다. 각기 다른 사건이지만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건드리고 그것을 깨트리려는 시도의 출발점은 같을 것이다.
한편 모든 공익소송을 승소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떤 사안은 승소를, 어떤 사안은 패소를 한다. 책 <낮은 자를 위한 지혜>는 패소한 공익소송에 대한 기록도 함께 담으며 미완의 과제를 남겨둔다.
법은 양날의 검과 같다. 인권을 보장해주고 보호하기도 하지만 인권침해의 무기로 작동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을 법조문 안에서만 해석하고 보장하려는 시도는 매우 위험하다. 어쩌면 공익소송은 법과 제도가 갖는 위험성과 한계를 극복하고, 정의의 실현을 위한 투쟁 방법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인권은 법조문 안에 가둘 수 없다. 공익소송에서 패소를 했다고 하여 사건 당사자들의 주장이 잘못되었다거나, 그들의 인권이 보장받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법률안에 감히 가둘 수 없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은 법정 안팎에서 늘 함께하는 것이니 말이다.
책 <낮은 자를 위한 지혜>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그리고 사회의 잘못된 구조를 툭툭 건드리는 공익소송의 기록을 보시라 권하고 싶다. 이 책의 부제목처럼 ‘오늘의 소수가 내일의 다수를 꿈꾸는’ 공익소송의 기록을 말이다.
“법은 가진 자의 무기가 아니라 낮은 자를 위한 지혜가 되어야 한다.”는 고 유현석 변호사의 생전 말씀은 공익소송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 법이 가진 자의 무기로 작동되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되는 작금의 시대에 이 책을 통해 ‘낮은 자를 위한 지혜’를 모을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