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공공성과 인권] 엘리트 교육은 영혼을 잠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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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공공성과 인권] 엘리트 교육은 영혼을 잠식한다
  • 김하늬 (민주노동자연대)
  • 승인 2008.08.25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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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30일에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있었다. 처음으로 서울 시민이 직선으로 교육감을 뽑는 자리였다. 다음번엔 지방선거 때 광역단위 교육감도 함께 뽑는다고 하니, 이번 선거에서 당선된 공정택 교육감은 2010년 6월까지 약 1년 10개월의 임기를 갖게 된다.
이제 막 임기를 시작했으니 격려와 응원을 해줘야 할 텐데, 그보다는 먼저 깊은 우려가 드는 것은 왜일까? 특히 ‘국제중 설립’ 방침을 발표하는 것을 보면서, 우려했던 것이 현실로 다가왔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국제중학교, 그리고 들썩이는 학원가

서울시 교육청은 지난 8월 14일 서울에 두 개의 국제중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연달아서 학생 선발 방법, 운영 방법 등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협의도 채 마치기 전에 입시 요강부터 발표하는 것을 보면 공정택 교육감의 의지가 매우 강한 모양이다.
이에 못지않게 강한 의지가 엿보이는 곳이 바로 강남 학원가이다. 벌써부터 국제중학교 설명회를 개최하면서 학부모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두 개의 국제중에서 해마다 320명의 학생을 선발하는데 여기에 수만 명이 몰릴 것으로 예상한다 하니, 사교육계에서 이 어마어마한 시장을 놓칠 리가 없겠다.
이런 현상은 국제중을 설립하겠다고 할 때부터 예상된 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교육청에서는 초등학교 공교육만 잘 받아도 입학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조기 유학이나 사교육의 수요를 공교육이 흡수해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반대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약 6개월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는 “공교육만 잘 받아도 영어를 잘 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이른바 ‘영어 몰입식 교육’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런 말들이 나올 때마다 강남의 학원가는 춤을 췄고 학부모들은 불안해했으며 가난 서민들은 좌절했다. 인수위의 말대로라면 그 반대여야 할텐데 말이다. 그리고 대통령 취임 100일 만에 사교육비가 약 16%나 올랐다.

▲ 첫 직선 서울시교육감으로 당선된 공정택 씨 [출처] <민중의소리>


경쟁이 학력을 높인다는 거짓말

지난 서울시 교육감 선거 때도 모든 후보가 사교육비를 낮추겠다고 했다. 공정택 당시 후보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왜 정부나 교육청에서 사교육비 절감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사교육은 더욱 팽창하는 걸까? 거기에는 바로 ‘경쟁’이라는 것이 놓여 있다. 학벌 사회, 대학 입시를 향한 경쟁, 그리고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성적’이라는 기준, 그 기준을 향한 줄세우기가 사라지지 않는 한 사교육비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심오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다들 자기 아이 좋은 대학 보내려고 열심히 학원에 보내는 것 아닌가? 국제중학교 설명회에 학부모들이 몰리는 이유도 비슷한 것이겠다.
그런데 가끔 신문 한 구석을 장식하는 기사가 있다. 전국의 평준화 지역과 비평준화 지역 학생들의 성적 비교를 하면 늘 평준화 지역 아이들의 성적이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교육도 서열화도 없고 교사가 쪽지시험을 보겠다고 하면 학생들 절반이 결석을 하기도 한다는 핀란드 같은 나라에서 늘 최고 수준의 학업성취도를 보인다고 한다. 무작정 경쟁을 시킨다고 해서 학력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왜 그럴까? 교육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비평준화 지역에서 상위권의 소수 학생들은 높은 성적을 거둘 수 있지만, 그 밖의 학생들은 좌절과 포기를 먼저 배운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업 욕구가 오히려 사라진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결코 경쟁력이나 학력이 낮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잉학력’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이들도 많다.

아이들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얼마 전 한 학원 강사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수업 시간에 북극성을 찾아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수많은 아이들 중 한 아이만 손을 들었다고 한다. 그 아이들에게 참고서에 나와 있는 그림을 보면서 계절에 따라 보이는 별자리를 가르치고 외우라고 하면서 절망감을 느꼈다고 한다. 아무리 참고서를 외운다 한들 별에 대한 호기심과 학업 욕구는 점점 사라질 뿐이라고 말했다.
연예인의 생일과 취미 등을 희한하게도 전부 기억하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그런 열정으로 공부를 하라’고 꾸짖는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열정을 공부에서도 발휘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 아이들에게 연예인은 늘 관심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니 기억력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 아이도 그 많은 것들을 기억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책상 앞에 붙들려 있다고 해서 교과서의 수많은 내용이 아이들에게 그런 호기심과 열정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참고서의 별자리 그림이 아니라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만끽해 볼 수 있는 시간이다. 또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아니라 친구들과 어울리고 많은 것들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공부하고 싶은 것을 발견하고 열정을 키울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자기 스스로 배우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

영재만 말고, 모두가 스스로 당당할 수 있길

‘경쟁’이라는 것과 늘 함께 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엘리트 위주의 교육’이다. 서울시 교육청에서 국제중 설립을 발표하는 것과 비슷한 시기에 중앙정부의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영재교육 상위 1%로 확대’ 방안을 발표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경쟁을 한다는 것은 어떤 기준에 도달해야 한다는 과제가 전제된다. 그 과제가 바로 높은 성적이고, 그것을 성취한 학생들을 ‘영재’ 또는 ‘엘리트’라고 한다.
이는 상위 1%의 학생들에게는 충분한 교육기회가 주어진다는 의미에서 좋을 수 있다(물론 그 학생이 진정으로 그것을 배우고 싶어한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그리고 부모의 경제력이 고스란히 자녀의 성적으로 연결되는 조건에서 상위 1%의 부자들에게도 좋은 소식일 수 있다. 하지만 99%의 부모와 아이들에게는 박탈감과 소외감을 키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엘리트 위주의 교육을 강화하는 데에는 깊은 철학적 바탕이 있는 것 같다. ‘1%의 인재가 전체를 먹여 살린다’고 하는 엘리트주의 말이다. 그러니 키울 놈만 키우자는 논리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특목고, 특성화중학교, 학교․학생 서열화도 모두 그런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기에 모든 사람이 스스로 자기 몫을 하면서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 그런 사람들이 서로 평등하고 조화롭게 어우러져 사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것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 하나하나가 소중하다는,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가 말이다.

이제 선택해야 한다. 대학 입시 끝나고 나면 쓸모없어질 경쟁력을 키울 것인지, 당당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키울 것인지 말이다.